2025년 11월 3일 – 2025년 11월 9일 주간
두 번째 주간 달리기에 관한 글이다. 이 공간에는 달리기를 구실로 내 일상과 관련된 얘기도 두루두루 다루어 볼 생각이다. 이번 주는 나름대로 특수한 한주였다. 1년간 상당히 큰 역할을 해야 했던 학회 집행부 임기가 끝나는 주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그게 다는 아니었지만 그걸로도 족하다는 뜻이다.
이번 주 달리기는 오늘 시도한 LSD에서 20km를 채우지 못한 것을 제외하면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 80km 이상을 뛰었고 10km 최고 페이스(5:21)도 경신했다. 이번 주에 뛰면서 생각한 것은 ‘명상으로서의 달리기’였다. 달리기와 관련하여 명사로 알려진 많은 이들이 한 얘기이기 때문에 특정한 레퍼런스를 인용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달리기가 갖는 장점 중 하나는 타인과의 비교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불필요하다는 것이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달리기에서 가장 큰 준거는 이전의 자신이다. 어제의 나 혹은 그 이전의 내가 결정적인 가늠자가 된다. 나도 그렇고 대부분의 달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록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한다. 거리든 페이스든 혹은 다른 무엇이든. 중요한 건 달리기를 즐길 수 있느냐 여부다. 달리는 과정이 즐겁지 않다면 달리기를 지속하기 어렵다. 달리는 과정이 즐겁기 위해서는 달리기를 통해 일상이 주는 부담에서 달릴 때라도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상이 관조의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위의 사실을 체험으로, 독서로 그리고 미디어를 통해 깨닫기는 했는데, 아직 쉽지 않은 일이다. 5분대 페이스로 10km를 달리는 일이 내게는 아직 상당히 버겁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혹 4-5km 지점에서 페이스에 적응이 되었을 때 보름달이 보이고 단풍나무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그때 명상이 시작되는 드문 순간이 찾아온다. 그 순간을 늘리고 싶은데 그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다.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일요일은 오전에 LSD를 하고 오후에는 글을 쓰고 책을 보고, 오후나 저녁에는 영화 한 편을 보는 루틴을 유지하고 싶다. 지난주에는 윤가은 감독이 연출한 <세계의 주인>을 봤고, 오늘은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연출한 <부고니아>를 보러 간다. 쉽지 않겠지만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일에서 완전히 벗어난 날도 필요하다.
지난번 글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차우진의 <관점을 파는 일>을 다 읽었다. 이 책과 차우진에 관해서는 몇 차례 더 글을 쓸 일이 있겠지만 간단한 인상평만 메모 차원에서 적어두면 이제 ‘관심’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는 지났고 ‘관점’과 ‘맥락’에 집중해야 할 때다. 화제를 주도하는 것은 여전히 몇몇 텐트폴 콘텐츠지만 개인의 일상에서는 수십만 혹은 수만의 구독자를 가지고 있는 채널이 더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울러, 텐트폴 콘텐츠의 영향도 맥락을 배제하고 양적인 성과만 따지게 되면 할 얘기가 별로 없다. 나 같은 연구자가 해야 할 일이 결국 관점을 보태는 일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해 준 책이 <관점을 파는 일>이었다.
크리스틴 로젠의 <경험의 멸종>을 읽기 시작했다. 미디어를 통해 매개된 경험이 실제 경험이 가진 가치를 갉아 먹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책 같은데 아직 도입부만 읽었기 때문에 좀 더 읽어야 문맥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주에는 디지털 경험이 어떻게 실제 경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써 봐도 재밌을 것 같다. 스마트 워치의 도입과 달리기 간의 관계가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올해 마지막일 수도 있는 단풍 사진을 찍었다. 가을 없이 겨울을 맞이한 느낌이지만 가을의 정취를 아주 느낄 수 없는 2025년은 아니었다는 기록을 남겨 두기 위한 사진이 될 것 같다. 다음 주에 다시 추워진다고 하는데 그래도 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