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5일 – 2026년 1월 11일 주간
본격적으로 새해가 시작된 느낌이다. 정신없이 바빴던 연말에 비해서는 다소 여유가 있지만 챙겨야 할 일들이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시기다. 이번 주 달리기는 오랜만에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토요일에 거리주를 뛰면서 몇 가지 느낀 것이 있다. 간만에 영상의 기온에서 뛰면서 다소 춥더라도 영하가 아니라는 것 자체가 뛰기에 좋은 조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바람이 맞은 편에서 불 때는 아주 편안한 느낌은 아니었는데, 바람의 도움을 받으면서 뛸 때는 가볍게 뛰었다. 20km를 소화할 때 대체로 후반부가 힘들었는데, 토요일은 후반부가 가벼웠다. 21.24km에서 반환점으로 삼은 한남 나들목이 나와서 달리기를 멈추었다. 좀 더 뛸걸이라는 아쉬움도 없지 않았지만 대체로 만족스러운 달리기였다. 다음 주에는 23km를 소화해 보는 것이 목표다.
겨울에는 템포런이나 지속주를 뛸 때도 빌드업런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도 깨달았던 주였다. 조깅 페이스로 뛰고자 마음먹었던 8일은 결과적으로 빌드업런이 되고 말았다. 랩을 보면 첫 1km를 5:50 페이스로 뛰었는데 10km 대의 페이스는 5:16 페이스로 마쳤다. 조깅 페이스를 올려보고자 했던 것이 페이스가 빨라지면서 빌드업런이 되었는데, 이참에 지속주를 소화하자는 심정으로 빌드업런 식으로 뛰었다. 남은 겨울에 지속주는 빌드업런으로 소화해 볼 생각이다. 뛰다 보면 계획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트레드밀에서 뛰는 것에도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트레드밀은 추운 겨울에는 확실한 장점이 있다. 다만, 여전히 트레드밀에서 빨리 뛰는 것은 부담스럽다. 맥박도 맥박이지만 속도 조절에 대한 유혹(속도를 낮추고 싶다는)이 밖에서 뛸 때보다 더 크다. 다음 주부터는 트레드밀에서 템포런을 시도해 볼 생각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회에 참가하는 것에 회의적이었는데 이번 주에 3월 22일에 열리는 ‘제26회 인천국제하프마라톤 대회’ 하프 코스와 4월 5일에 열리는 ‘2026 군산 새만금 마라톤 대회’ 10km 코스에 참가 신청했다. 군산 대회는 시스템 문제인지 신청이 어려웠고(하프가 없어서 10km 코스에 참가 신청했다), 인천 대회는 걱정한 것에 비해서는 무난하게 신청했다. 대회에 대한 소감은 당연하게도 다녀와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주는 달리기와 글쓰기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아마도 이 주제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몇 차례 더 쓸 기회가 있을 것 같은데, 이번 주에 이 테마에 대해 몇 마디 써 보고자 마음먹게 된 것은 임경선의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들> 때문이다.
임경선은 중년에 접어들게 되면서 내가 가장 신뢰하고 좋아하는 에세이스트다. 작가로서의 임경선은 소설가이기도 하지만 나에게 임경선은 ‘압도적으로’ 에세이스트로서의 정체성이 강하게 느껴진다. 임경선의 출발이 에세이였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임경선의 소설 보다 에세이를 훨씬 좋아하기 때문에 에세이스트로서의 임경선의 정체성을 내가 더 강렬하게 인식하고 있을 수도 있다(임경선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임경선의 소설도 대부분 사서 읽는 편이다).
임경선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호하면서도 독자의 감수성을 충분히 자극해 주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모든 책을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문장 중 하나는 <태도에 관하여>에 있는 다음의 문장이다. “인간적인 공정함과 낭만적인 관대함을 최선을 다해 양립해나가고 싶다.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더 나아질 것이다(90-91쪽).” 나는 이 문장에 에세이 작가로서 임경선이 지향하는 태도 혹은 자연인 임경선이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태도가 잘 드러나 있다고 생각한다. 사안에 대해서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므로 어떤 판단이던 간에 감수성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임경선이 견지하고 있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임경선이 글쓰기에 관한 책을 냈다. 제목도 임경선답다.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들>이라니 어떤 책인지 바로 느낌이 오고 다른 상상력이 개입될 여지가 크지 않다. “일찍이 나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을 뜯어말리면서 ‘그래도 글을 쓰지 않고는 못 견딜 것 같으면 나와 더불어 가늘고 길게 망하자’고 썼는데 여전히 진심이다. 미리 말해두지만 글쓰기에는 성공도 영광도 없다. 그러나 분명 ‘망해도 상관없다’고 느끼게 해주는 정직한 기쁨이 있다. 이 책은 다름 아닌 그 부조리한 세계에 매료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8-9쪽).”
촌철과도 같은 위의 문장에 동의하지 않기란 어렵다. 나 역시 어려서부터 글쓰기란 부조리한 세계에 매료되어 여기까지 온 사람이기 때문이다(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여전하고 과연 그 고민이 끝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글쓰기가 나에게 가진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온전히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 의지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자신뿐이다(18쪽).” 물론, 내가 먹고사는 일 때문에 쓰는 글의 상당수는 동료들의 도움 없이는 쓸 수 없는 글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런 종류의 글이라든지 정기적 혹은 비정기적으로 쓰는 칼럼 외부 기고문, 언제 다시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단행본과 같은 종류의 글쓰기는 온전히 본인이 해내야 한다.
나는 ‘온전히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지점에서 달리기가 글쓰기와 닮아있다고 느낀다. 물론, 글쓰기나 달리기나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고, 도움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두 행위다 완성과 성장은 결국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서 공명한다. 인간은 고립과 외로움을 본질적으로 싫어하는 존재지만 어떤 종류의 인간은 온전히 혼자 있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글쓰기와 달리기는 온전히 혼자일 수 있는 영역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닮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