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창희 Sep 12. 2019

문화 분석을 위한 도구로서의 정신분석학:『라캉 읽기』

#라캉 #숀호머 #문화분석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

내가 ’라캉‘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들은 것은 2000년대 초반이었다. 그때 국내에 라캉과 관련하여 읽을 수 있는 책으로 기억되는 것은 권택영, 민승기, 이미선이 번역하고 편집한 『욕망 이론』정도 였다. 학부 때는 그 책을 읽다가 중간에 포기했던 것 같고, 대학원 때 세미나에서 다 읽기는 했으나 어렴풋하게 남아 있는 기억은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욕망, 결핍,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 등의 단어들이 떠오르지만 그 책에서 읽은 것인지 다른 책에서 읽어서 머릿속에 남아 있는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라캉의 책은 이상하리만큼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향이 있다. 주저인 『에크리』가 올해 번역되어 나왔으니 그 중요성에 비해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물론 어려워서 일 것이나 그렇다면 지젝은, 들뢰즈는, 랑시에르(그래 랑시에르의 책들은 상대적으로 짧기는 하지)는? 이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 바디우 관련 책을 읽다가 라캉과 관련된 개론서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고른 책이 이 책이다. 언제 샀는지 기억나지 않을만큼 오래되었는데, 아마도 족히 10년은 되었지 싶다. 뒷면에 소개되어있는 것처럼 이상적 개론서인지에 대해 내가 판단할 능력은 없으나 라캉의 난해한 이론을 이 정도로 소개해 내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확신을 갖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잘 알려진 것처럼 라캉의 이론은 무의식을 발견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구조주의를 접목한 데 있다. 저자인 숀 호머가 정리한 바에 따르면 라캉주의 정신분석한은 무의식과 언어 사이에 주체성이 접점의 역할을 했으며 성차를 무의석적 수준에서 구축되는 것으로 이해하는데 기여했다.            


라캉주의 정신분석학은 주체성이 무의식과 언어에 연결되는 접점의 역할을
했으며, 또한 성차를 무의식적 수준에서 구축되는 것으로
이해하는데 기여했다(14쪽).     


이 책에서는 라캉의 중심 개념들을 '상상계', '상징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팔루스의 의미','무의식의 주체', '실재계', '성차'라는 6가지 개념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으며, 라캉 이후에서는 지젝을 비롯하여 라캉에게 영향을 받은 이론가들과 영화를 비롯하여 라캉주의 정신분석함으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 영역들을 소개한다. 이 책의 특징은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이를 요약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책들에서는 이러한 요약 자체가 거부감을 느끼게 해주나 라캉의 난해함과 그 개념들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상당히 유용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숀 호머의 『라캉 읽기』(서울: 은행나무)를 다 읽고 난다고 해도 어려운 라캉의 개념들이 명확해진다고 보기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길 헤매일 때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지도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나에게 라캉의 정신분석학이 20여년 간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이유는 그의 이론이 임상의 영역을 넘어서 문화 현상을 분석하는데 유용한 도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음의 숀호머의 설명은 이러한 확신을 더욱 강화시켜 준다.   


무의식과 인간 욕망은 우리가 재현하는 것들 내부로 스며들어 우리의 문화 심부에 영속적으로 불안정하고 분열된 상태를 생성한다. 이 공간을 열어두고,
이데올로기에 의해 통합된 조화롭고 갈등이 없는 주체 또는 사회로 폐쇄되는 것에 저항하기 위하여 그리고 욕망이 문화적 텍스트들을 통하여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들을 분석하기 위하여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지속적으로
이론적인 적절성과 가치를 부여받게 될 것이다(242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