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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Sep 21. 2019

‘비틀즈’없는 세상에서는 살 수 없다. <예스터데이>

#영화<예스터데이> #비틀즈 #취향  

어느 날 갑자기 모두가 알 던 것을 나만 알게 된다면? 영화 <예스터데이>는 이 설정에서 시작된다. 가수 지망생 잭 말릭은 전세계가 정전되었던 12초 사이에 재수 없게도 버스에 치어 이빨 두 개를 잃는 불운을 맞이하게 된다. 잭이 퇴원하고 잭의 쾌유를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잭의 매니저이자 유일한 팬이라고 할 수 있는 엘리는 잭에게 기타를 선물해준다. 잭은 기념으로 친구들에게 예스터데이를 들려주는데, 예상외의 반응에 몹시 놀란다. 친구들이 잭에게 네가 만든 노래가 너무 좋다는 반응을 보인 것. 그 12초 사이에 비틀즈는 지구 상에 존재하지 않은 그룹이 된 것이다. 마치 타노스가 핑거 스냅으로 비틀즈를 없애 달라고 주문한 것처럼. 



잭은 비틀즈의 노래들로 사람들을 감탄시키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잭은 본인역을 맡은 에드 시런에게 천재라는 칭송까지 받는다. 네가 모차르트라면 나는 살리에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비틀즈의 노래를 자기가 작곡한 노래로 둔갑시켰으니 말이다.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비틀즈의 노래로 천재 소리를 듣게 된 잭이 그에 대한 죄책감과 엘리와의 관계 때문에 괴로워하던 와중에 잭을 찾아온 두 사람과 잭이 대면하던 순간이었다. 그 둘은 영화 중간중간 비틀즈의 존재를 아는 것으로 암시되는데 그 두 사람이 어떻게 비틀즈를 기억하고 있는지는 영화만 보고는 알 수 없다. 이 둘이 잭을 비난하고 잭이 궁지에 몰릴 것이라고 예측했다면 오산. 이 둘은 오히려 음악적 재능이 있는 당신이 비틀즈의 노래들을 들려줘서 다행이라고 하며 고맙다고 한다. 잭은 뛸 듯이 기뻐하며, 자신 외에 비틀즈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취향이란 내가 감각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나눌 때의 희열은 내가 가진 취향을 더욱 강화하고 그것을 지속하도록 만든다. 비틀즈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비틀즈의 음악이지만 비틀즈의 음악을 함께 듣고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타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괴로운 일이 될 수도 있다. 취향은 그렇게 함께 공유되는 것이고 그렇게 공유된 감각은 레이먼드 윌리엄즈의 용어를 빌려 말하면 감정의 구조로 형성된다. 비틀즈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없는 이유는 비틀즈 음악을 들을 수 없는 공허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나눌 수 없는 타인이 없어져서 이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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