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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Sep 22. 2019

넷플릭스라는 메타포,
투자라는 딜레마

#OTT #넷플릭스 #콘텐츠투자 

OTT 확산으로 인한 산업적 변화와 문화적 제도의 변화     


2016년 넷플릭스가 국내에 진출했다. 넷플릭스가 국내에 진출할 당시 전망은 다채로웠다. 단기적으로 많은 가입자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많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유료방송에 대한 지불의사가 높지 않은 국가이다. 유료방송 월 이용요금과 넷플릭스 월 이용요금이 비슷한 상황에서 유료 월정액을 내고 넷플릭스를 보는 가입자가 많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는 어려웠다.      


변화는 입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닐슨코리안클릭의 조사에 따르면 2019년 7월 기준으로 넷플릭스 국내 가입자는 185만 수준이다(박창영, 2019. 8. 29 재인용). 적은 가입자가 아니다. 하지만 변화는 단순히 가입자 수의 증감 차원으로 볼 수 없다. 시장으로 국한시켜 봐도 유료방송 플랫폼 시장의 변화는 물론이고, 종합 미디어 그룹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국내 이통사들의 포트폴리오 변화, 제작 요소 시장의 변화, 망중립성, 망이용대가에 대한 새로운 기준 설정과 같은 복합적인 형태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 글은 OTT 서비스의 등장과 확산이 콘텐츠 투자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중심으로 다루고자 한다. 엄밀한 분석이라기보다는 현재의 상황을 진단해 보는 차원이다. 하지만 단순히 산업적인 차원으로만 OTT의 등장과 확산, 글로벌화의 영향을 국한시킬 수 없다. 산업적인 변화는 이용자가 미디어를 어떻게 소비하는지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코리 바커(Cory Barker)와 마이크 비아트로스키(Myc Wiatrowski)가 저술하고 편집한 『넷플릭스의 시대』(임종수 (역), 이하 이 책을 인용할 경우에는 각 장의 저자와 제목을 인용할 것이다.)에서 넷플릭스로 인한 변화를 ‘문화적 제도’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것도 이 때문이다.     


빈지(binge)라는 용어는 이제 넷플릭스를 상징하는 용어가 된 듯하다. 『넷플릭스의 시대』, 「과잉의 용어들: 넷플릭스 시대, 서사극적 시청으로서 몰아보기」에서 조이미 베이커(Djoymi Baker)는 ‘알코올에 흠뻑 취한다’, ‘과도하게 소비한다’등의 빈지의 어원을 소개하면서 ‘과잉과 방임(73쪽)’의 측면에서 빈지의 의미를 조명한다. 과잉과 방임은 이용자들의 생활패턴을 바꾸고 넷플릭스와 같이 무수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을 이용하는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새로운 문화적 제도를 창출하는 것이다. 편성이라는 배분과 흐름을 창출해 내는 다양한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결과적으로 이것이 방송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냈다고 보는 레이먼드 윌리엄스(Williams, 1974/1996) 식으로 얘기해 보자면 넷플릭스와 같은 OTT는 ‘몰아보기’라는 새로운 문화적 제도를 만들어 냈고 이것이 다양한 변화를 추동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OTT가 창출한 변화를 ‘몰아보기’라는 행위 하나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뒤에서 다시 얘기하겠지만 넷플릭스라는 것이 일종의 메타포가 되어 버렸듯이 빈지라는 것도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다시 산업적 관점으로 돌아와 보자. 왜 문화적 제도의 변화가 산업적 변화와 연관되는가? 산업적 관점에서 OTT 시장에서 중요한 쟁점 중 하나는 OTT가 기존 유료방송 시장을 대체해 나가는 것인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나가는 것인지이다. 몰아보기라는 시청행위는 기존의 방송 이용시간을 OTT 이용이 대신한다는 것보다는 이용자가 별도의 시간을 할애하여 새로운 매체를 이용하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넷플릭스에게 빈지라는 용어는 단순히 새로운 이용행태를 창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투자의 관점에서도 빈지라는 용어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데 기여하고 있다. 


빈지한 투자(binge-spending)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토드 스팽글러(Spangler 2019, 1. 18)는 넷플릭스의 콘텐츠 투자를 빈지한 투자(binge-spending)라고 표현한다. 이 기사에서는 2018년에 120억 달러를 콘텐츠에 투자한 넷플릭스가 2019년에는 150억 달러를 콘텐츠에 투자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Spangler 2019, 1. 18). 넷플릭스가 콘텐츠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이어나가자 일부에서는 언제까지 이와 같은 투자가 가능하겠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디즈니가 OTT 시장에 진입하여 콘텐츠를 제공하지 않게 될 경우 넷플릭스의 콘텐츠 투자 규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OTT 시장에서의 경쟁이 치열해지게 될 경우 가입자 확대는 과거보다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가입자 유지 및 확대를 위한 투자는 불가피한데 실패에 대한 위험성은 커지는 구조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국내로 돌아와 보자. 국내에서 콘텐츠 제작비, 특히 드라마 제작비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방송산업에서 제작비는 비용이다. 아직까지 방송산업은 성장하는 산업이기 때문에 제작비가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방송산업의 매출 규모는 2009년 8.9조로 GDP 대비 0.73%를 차지했는데, 18년말 기준으로 17.3조원 GDP 대비해서도 0.91%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니까 방송산업 자체는 성장하고 있거나 적어도 시장의 규모가 유지되고 있는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방송통신위원회, 2019 재인용).            


2000년대 초반에는 사극이 아닌 드라마의 편당 제작비가 회당 1억 정도로 추정된다. 한류 드라마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대장금>의 편당제작비가 1억 3,000만원 정도였다고 한다. <겨울연가> 이후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시장에서 국내 드라마의 경쟁력이 입증되면서 드라마 제작비는 계속 상승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지상파 내부 규정에 따른 단가와 드라마 제작비가 분리되고 드라마를 외주제작사에서 제작하게 되면서 드라마 제작비는 급격하게 상승한다. 이 과정에서 상승한 대표적인 비용이 출연료와 작가료이다. 2007년에 방영된 <태왕사신기>에서 배용준의 출연료는 회당 2억 5천억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2000년대 초반 드라마 회당 제작비의 2.5배 정도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는 물론 극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여기서 언급한 제작비 관련 통계는 「드라마 제작 비용의 증가와 조달: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378535&cid=42219&categoryId=58232」에서 인용한 것이다.).      


작가료도 2010년 전후로 크게 상승해서 A급 작가들은 회당 5,000만원 수준의 작가료를 받을 수 있는 작가들이 나타나게 된다. 가령, <도깨비>, <태양의 후예>의 김은숙 작가 같은 경우 회당 작가료가 5,000만원에서 8,000만원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송중기나 이승기 같은 스타들이 받는 회당 출연료는 1억에서 2억 사이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김윤지, 2017. 5. 5; 정준화, 2019. 8. 12). 경쟁력 있는 인적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드라마의 가치가 높아지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작가료, 출연료는 높아지게 되었다. 중국시장에서 우리나라 방송 제작인력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출연료, 작가료 상승의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이제 투자를 받기 위해서라도 고액의 인건비가 소요되는 인기 스타, 스타작가를 영입해야 하니까 이 비용은 줄어들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국내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크게 높아졌다. 수출할 수 있는 수준의 드라마가 아니라면 국내 시청자들의 이목을 잡아끄는 것도 쉽지 않다. 9월 20일 부터 SBS에서 방영된 <배가본드>의 전체 제작비 250억 정도 들었다고 보도되었다(김경학, 2019. 9. 22). 총 16부작인 <배가본드>의 평균 제작비는 회당 15억 정도인 것이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킹덤>의 회당 제작비는 20억원이었다(주성철, 2019. 2. 8). 넷플릭스가 현지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은 반드시 현지에서만 유통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자신들이 서비스하고 있는 전 지역에서 어느 정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글로벌한 경쟁력을 갖추는 한편 국내에서 시청자들에게 소구할 수 있는 드라마를 제작하려면 회당 제작비가 15억에서 20억 정도를 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편당 170억원 이상 투자한 <왕좌의 게임>(김우영, 2019. 4. 15)과 비교할 수준은 아니지만 국내 사업자의 제작비 규모를 고려하면 상당한 금액이라고 할 수 있다.            


                                                               < 국내 주요 사업자 제작비 추이 >

                출처: 방송통신위원회(2019)     


2018년 기준 국내 PP의 사업자당 평균 제작비는 114억이다(방송통신위원회, 2018). 이는 <배가본드> 제작비 1/2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현장에서 제작하는 PD에게 자문을 구한 결과 평균 시청률 5% 이상을 목표로 하는 예능의 편당 제작비는 1억 정도라고 한다. 물론, 현장에서 제작하시는 분의 경험에 근거한 것이라 모든 프로그램에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은 아니다. 주1회 방영한다고 했을 때 경쟁력 있는 예능 프로그램 2편을 제작하면 사업자당 평균 제작비에 수렴하는 것이다.          


국내 OTT 시장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상파3가 함께 운영했던 푹과 SKT의 OTT 서비스 옥수수를 통합한 웨이브가 런칭했다. 웨이브는 콘텐츠 투자에 3,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CJ ENM과 JTBC는 티빙을 기반으로 통합 OTT 플랫폼을 런칭하겠다고 밝혔다(이경탁, 2019. 9. 17). ENM과 JTBC 모두 콘텐츠 기반 사업자인 만큼 콘텐츠 투자를 어떻게 할지가 관건으로 보인다. 웨이브나 티빙이나 향후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투자비를 투입해야 할 것이다. 또한, 넷플릭스 뿐 아니라 디즈니도 국내에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OTT 사업자들은 글로벌 사업자들과 이용자 경쟁에 앞서 콘텐츠 수급 경쟁을 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이미 웨이브가 콘텐츠 제작을 협상하던 일부 외주제작사가 넷플릭스와 작업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는 보도가 난 적도 있다(김문기, 2019. 7. 24). 이는 경쟁력 있는 콘텐츠 수급을 위한 경쟁이 치열해 질 것임을 시사한다. 


넷플릭스라는 메타포를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왜 OTT, 투자와 혁신 얘기가 나오면 넷플릭스가 거론되는 것일까? 유튜브도 있고 아마존도 있다. 그리고 콘텐츠 산업 전통의 강자 디즈니도 곧 OTT 시장에 뛰어들 것이다. 넷플릭스의 가입자 증가폭도 둔화되고 있고, 콘텐츠 투자 부담은 계속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OTT 하면 넷플릭스를 떠올리는 것은 기존의 레거시 사업자가 아닌 기업이 투자와 혁신을 통해 신화적인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우라를 더해 주는 것은 데이터 기반 맞춤형 서비스와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를 통해 이 자리까지 왔다는 것이다. 이제 ‘넷플릭스’라는 이름은 투자와 혁신을 통해 성공신화를 이뤄낸 것을 상징하는 메타포가 된 듯하다. 중요한 것은 이 메타포를 어떻게 읽어낼지 하는 부분이다. 이 글의 결론은 이것이 무척 어렵다는 것뿐이다.     


중국과 같은 글로벌 시장을 개척한다고 해도 협소한 국내 시장을 고려할 때 기존의 방송콘텐츠 사업자든 새로운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웨이브든 CJ ENM, JTBC든 무작정 투자를 늘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다. 데이터 분석을 통한 콘텐츠 제작 등 여러 가지 형식적 실험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이다.      


글로벌 사업자를 규제해 달라는 요구는 계속될 것이다. 국익에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기 어렵다. 이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OTT라는 영역은 국내 사업자든 글로벌 사업자들이든 규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레이먼드 윌리엄스(Williams, 1974/1996)가 방송이라는 제도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한 이유 중 하나는 애초에 그 제도를 만드는데 동참한 주체 중 하나가 정부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긍정적으로 보면 정부가 필요에 따라 그것이 국익이던 공익성이건 명분에 따라 어느 정도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OTT라는 영역은 애초에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장이 아니다. 이 장은 사업자, 이용자, 정부가 같이 만들어가는 시장이다. 기존의 방송 시장과 비교하면 훨씬 복잡도와 민감성이 높은 영역이다. 제프리 파커(Geoffrey G. Parker), 마셜 밴 앨스타인(Marshall W. Van Alstyne), 상지트 폴 초더리(Sangeet Paul Choudary)가 『플랫폼 레볼루션』에서 혁신을 통해 구축된 생태계 기존의 틀 내에서 책임성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한 이유 중 하나는 현실적으로 규제를 통해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Parker, Van Alstyne & Choudary, 2016/2017).     


앞으로 더욱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사업자들 입장에서 경쟁력을 강화 혹은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투자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리스크가 큰 영상시장에서 과도한 투자는 위험할 수밖에 없다. 영상시장에서 투자가 갖는 딜레마적인 속성은 더욱 크게 부각 될 것이다. 시장이라는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는 이용자들이 만들어가는 문화적 제도와 결합 되어 있는데 그 복잡성이 높아져서 시장을 전망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선택지가 늘어난 이용자들은 즐거울지도 모른다. 결국 그들이 만들어가는 문화적 제도가 시장을 바꾸어 나갈 것이다. 문제는 거기에 어떻게 적응해 나갈 것이냐 하는 점이다.  

    

참고문헌     

김경학 (2019. 9. 22). SBS 금토극 ‘배가본드’ 10% 시청률로 순항 중.『경향신문』.

김문기 (2019. 7. 24). [단독] 넷플릭스 '가로채기'로 韓OTT '웨이브' 콘텐츠 확보 난항: SKT-지상파3사, 통합법인 9월께 출범…공정위 승인 남아.『아이뉴스24』.

김우영 (2019. 4. 15). ‘왕좌의 게임’ 시즌8, 편당 제작비 170억원 이상.『헤럴드 경제』.

김윤지 (2017. 5. 5). ‘백상’ 대상 김은숙, 명실공히 넘버원 스타작가.『이데일리』.

방송통신위원회 (2019).『방송사업자 재산상황 공표집』. 과천: 방송통신위원회. 

박창영 (2019. 8. 29). 넷플릭스 국내이용자 185만…1년새 4배↑.『매일경제』.

이경탁 (2019. 9. 17) CJ ENM-JTBC, OTT 합작법인 출범…SKT-지상파 ‘웨이브’에 ‘맞불’.『조선비즈』. 

정준화 (2019. 8. 12). “스태프는 박봉인데”...천정부지 배우 출연료.『이데일리』.

주성철 (2019. 2. 8). [주성철 편집장] <킹덤> 특집에 부쳐.『시네21』. 

Baker., C. & Wiatrowski, M. (Eds) (2017). The age of netflix: Critical essays on streaming media, digital delivery and instant access. 임종수 (역) (2019).『넷플릭스의 시대』. 부천: 팬덤북스.

Spangler (2019, 1. 18). Netflix ppent $12 nillion on content in 2018. analysts expect that to grow to $15 billion this year. Variety.

Williams, R. (1974). Television: Technology and Cultural Form. 박효숙 (역) (1996).『텔레비전론』. 서울: 현대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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