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창희 Nov 16. 2019

처음과 끝을 알고 난 이후의 연애, 그 차이와 반복

<가장 보통의 연애>

전셋집까지 얻고 결혼 직전에 여자친구에게 파혼을 당한 재훈은 술에 의존하며 폐인처림 지낸다. 대표와의 친분 때문에 작은 광고제작사에서 팀장을 맡게 되었다고 동료들이 수군거리긴 해도 밤낮으로 술에 의지해서 폐인처럼 사는 것과 달리 직장에서의 존재감은 상당하고 성실히 일하는 편이다. 그러던 차에 재훈이 일하고 있는 광고제작사에 경력직 신입사원 선영이 들어 온다. 선영은 첫 회식 때부터 헤어진 남자친구가 회식 자리에까지 찾아와 진상을 부리는 통에 가뜩이나 말이 많은 작은 광고제작사에서 다른 직원들의 뒷담화 대상이 된다.      


김한결 감독의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는 이미 연애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그래서 조심스러운 성인들이 연애를 바라보는 태도를 다룬다. 물론, 그 태도에 대한 논쟁 자체가 일종의 썸이고 연애로 이어지기 전의 과정이라는 점에서 연애 그 자체를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하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재훈(김래원 분)은 연애와 결혼의 진정성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반면, 선영(공효진 분)은 이에 대해 냉소적이다. 선영이 각각의 연애가 주는 고단함과 피로함이 주는 반복적인 패턴 때문에 관계를 진전시키는 데 주저하는 반면 재훈은 마음이 가는 데로 선영에게 이끌린다. 재훈은 전 여친인 수정(손여은 분)에게나 선영에게나 밀땅을 하기보다는 할 말이 있으면 전화나 카톡을 계속하면서 자신의 진심을 피력하려고 한다. 좋게 말해 진실한 마음이 있는 스타일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찌질하다. 이러한 태도 자체가 여성에게 위협감을 줄 수 있음은 물론이다. 서로에게 어느 정도 이성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둘은 회사 전체 회식이 있던 날 우발적으로 결정적인 밤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망설이는 선영의 태도 때문에 그만 없었던 일이 되어 버리고 만다. 물론, 완전히 없었던 일이 되기는 불가능하지만. 선영의 태도는 아마도 이 영화의 제목에 영향을 주었을 언니네 이발관 5집에 수록 되어 있는 <가장 보통의 존재>의 다음과 같은 가사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 이런 큰일이다 너를 마음에 둔게. 이런 이런 큰일이다 나를 너에게 준게.” 선영은 재훈과의 관계를 두고 다시 좌고우면한다.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고 109분이 지루할 새 없이 흘러간다. 서사가 재훈과 선영의 관계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각 인물들의 대사들은 우리가 연애에 대해 얼마나 많은 편견 속에서 살아가는 지를 잘 보여준다. 뒷말이 많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작은 조직 구성원들이 겪을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비교적 생생하게 잘 묘사되어 있다. 아마도 조직 생활을 하면서 근거 없는 오해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면 후반부 선영이 술자리에서 직원들에게 일갈하는 장면에서 통쾌함을 느꼈을 것이다. 재훈과 선영이 술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도록 성적인 대화를 크게 하는 것은 아마도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샐리가 해리에게 오르가즘에 대해 남들이 다 들리도록 설명하는 장면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효과적이긴 했으나 그 장면의 횟수를 조금 줄였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동진이 <이동진, 김중혁의 영화당> ‘로맨틱 코미디의 새로운 고전들’에서 얘기한 것처럼 로맨틱 코미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우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김래원은 느와르보다는 약간은 멍청해 보이지만 사람 좋고 거짓말 못하는 연애 파트너 역할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맞춤한 캐스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효진은 이제 대한민국에서 로맨틱 코미디를 대표하는 배우가 된 것 같다. 재훈과 선영이 이어지는 마지막 순간 입모양 만으로 ‘보고 싶었어’를 속삭이는 장면은 공효진이 아닌 다른 배우가 했더라면 그만큼 인상적이지 않았을 것 같다.      

감독의 선택이긴 했을 것이나 아쉬웠던 점은 영화의 제목이나 다루고 있는 소재를 감안 할 때 어쩔 수 없이 재훈이 남성의 전형, 선영이 여성의 전형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는데, 선영을 상대적으로 훨씬 더 계산적인 캐릭터로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남성들도 연애 그리고 결혼 앞에서 충분히 계산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재훈이 가진 매력은 다른 인물보다 상대적으로 덜 계산적이라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팔짱 끼고 볼 일만은 아니다 싶다.       


<가장 보통의 연애>는 여지없이 해핑엔딩이다. 그래서 또 좋았다. 로맨틱 영화를 보면서까지 사색에 잠길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시작과 끝을 수십번, 수백번 경험해 보더라도 연애는 영원히 당사자에게는 미지의 영역이다. 그래서 그 차이와 반복을 변주하는 로맨스는 앞으로도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블이 만든 만신전, 팬들에 의해 빛나는 성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