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언서 시대의 SNS 윤리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를 본 사람이라면 친구(親舊)라는 단어가 친할 ‘친’에 예 ‘구’로 이루어진 단어라는 것을 금방 기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중언부언이지만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을 뜻하는 말이 친구이다. 이는 같이 공유한 경험이 많은 사이가 바로 친구라는 인연임을 말해준다. 그런데 오래된 친구일수록 흔히 겪게 되는 경험 중 하나는 특정한 사건에 대해 전혀 다르게 기억하거나 해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90년대 중후반부터 우리나라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은희경이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내놓은 장편소설 『빛의 과거』는 김유경과 김희진이라는 40년 지기 친구들이 서로가 서로에 대해 어떻게 오해하고 있었는지에 관한 소설이라고 봐도 좋다. 물론, 이 짧은 문장으로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미학적 가치를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이 소설이 한 개인의 기억이 어떻게 자의적으로 편집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트렌드 코리아 2020』(김난도 외 지음, 서울: 미래의 창)에서 꼽은 2020 키워드 중 하나는 멀티 페르소나이고, 2019년의 키워드 중 하나는 인플루언서(influencer)이다. 인플루언서라는 용어가 널리 회자 된지는 몇 년 되지 않지만 사실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신문과 방송이 널리 퍼지면서 의견지도자(opinion leader)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방송의 보급률이 높지 않았던 시절에도 방송의 영향력이 크다고 평가했던 근거 중 하나는 방송을 본 의견지도자들이 주변에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의견지도자와 인플루언서가 다른 점은 인플루언서는 SNS를 통해 주변인을 넘어서 광범위한 익명의 다수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러 가지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도 SNS 때문이다. 수재나 E. 플로레스(Suzana E. Flores)는 『페이스북 심리학』(안진희 역, 서울: 책세상)에서 SNS를 통해 드러나는 우리의 자아에 대해 진정한 자아가 아닌 연기하는 자아에 가깝다고 평가한다. 현대인들은 가정 내에서 직장에서 혹은 다른 공간에서 여러 가지 자아정체성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SNS와 같은 온라인 공간에서는 자신을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편집하는 것이 훨씬 더 수월하다. 이 때문에 SNS를 이용하는 많은 이용자들이 자신을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편집해서 드러낸다. 이 자아의 정체성은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나의 정체성과 완전히 일치할 수 없다.
SNS를 통해 나의 의견을 널리 알리고, 현실세계와는 조금 다른 나의 모습을 타인에게 공유하는 것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다. 이것이 초래하는 문제는 오프라인 세계보다 더욱 편하고 거칠게 나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가능하고 이렇게 전달된 의견이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타인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도 함께 공유한 기억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왜곡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 현실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일인데, SNS 상에서 전달된 의견이 나의 의도보다 조금 더 거칠게 혹은 더욱 심하게는 완전히 왜곡되게 전달되는 것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SNS에 남긴 말이 언제 어떻게 유통될지 모르는 환경에서 자신을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엄정한 판단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SNS 페르소나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SNS를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SNS를 통해 드러나는 정체성이 중요해졌다. 이 정체성이 중요해진 만큼 내가 남긴 흔적이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도 중요해 졌다.
미디어의 본질은 현실을 편집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어떠한 매체도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수용자에게 전달할 수 없다. 또한, 같은 내용을 보여주더라도 수용자는 이를 자신의 관점에서 다시 해석하기 때문에 내가 생산한 메시지가 어떠한 파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서 자체적으로 판단하는 일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 질 것이다. 『빛의 과거』에서 김유경은 김희진을 이해하는 데 40여년이 걸렸다. 그만큼 기억은 불완전한 것이다. 자신이 SNS 상에 남겨 놓은 말이 어떻게 유통되어 어떻게 회자될 지 모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는 나 자신과 타인 모두를 위한 일이며, 이를 편집의 윤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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