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구속이 많은 사회다. 반면, 안전망은 그다지 두텁지 않다. 그런데 그 구속의 대부분은 법적으로 제도화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자발적으로 빠져나올 수 있으나 그 구속을 박차고 나올 용기를 가지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한다. 결혼 적령기가 되어 결혼을 한다. 애를 낳는다. 안전망을 보장해 주는 것은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 이외에는 찾기 어렵다. 직장을 그만두면 매달 들어오는 월급 뿐 아니라 의료보험과 같은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도 상실하게 된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악습의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는 제도이다. 양가 부모를 만나고 결혼식장을 잡고 신혼여행을 가고 애를 낳는 이 모든 과정에서 의외로 당사자들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이다. 장강명은 자신의 방식대로 결혼했고 그 결혼생활을 잘 유지하고 있다(적어도 『5년 만에 신혼여행』의 작가의 말이 씌어진 2016년 여름까지는).
건설회사를 그만두고 기자를 준비하면서 장강명은 집을 나온다. 드디어 애완동물의 신세를 탈피한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문장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인간은 자기 인생을 걸고 도박을 하는 순간부터 어른이 된다. 그러지 못하는 인간은 영원히 애완동물이다(37쪽).” IMF를 거친 후 대한민국 청년들의 취업은 어려워지고 부동산 가격은 급등한다. 부모로부터 독립하기가 어려워진다. 결혼 후에야 독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결혼 과정에서 부모에게 도움을 받게 되면 상당 부분 부모에게 삶이 종속되게 된다.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사는 것이 전적으로 자신의 의사에 기반한 것이라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이 애완동물의 처지에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장강명은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인센티브를 뿌리치고 스스로 독립을 하고, 안정된 직장을 때려치우고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와이프에게 부모 봉양의 부담을 전혀 주지 않고 살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나는 이러한 삶의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용기와 성실성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용기에 대해서는 부연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 장강명처럼 전업작가로 살아가면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장강명과 같은 성실함이 필수적인 것 같다. 나는 그 성실함이 프로의식처럼 느껴진다.
『5년 만에 신혼여행』은 보라카이에 관한 여행담이지만 그 전에 한국사회와 같이 관습이 거의 법처럼 작동하는 국가에서 한 인간이 자주성을 어떻게 지키고 살아가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점이 내게는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유머가 많은 재기발랄한 책이기도 하다. 소파에 누워 키득거리며 읽기에도 좋은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5년 만에 신혼여행』이 자신의 처지에 갑갑함을 느끼며 삶의 구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성인들에게 자신들만의 허구를 창조하고 그 안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하는 제안에 가깝게 느껴진다. “나는 허구에 대해서 생각했다. 때로는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해방이라는 명목으로, 때로는 삶의 의미라는 구실을 내세워 다가오는 허구들. 나는 그 허구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쉴 새 없이 허구를 만들어내고 그 허구 속에서만 살 수 있는 존재다. 심지는 나는 그 일로 돈을 벌려 하고 있다. 허구는 익사에 대한 공포와 수면 위로 탈출할 수 있다는 믿음이며, 바닷물이자 산소통 그 자체다. 어떤 허구에는 다른 허구로 맞서고, 어떤 허구에는 타협하며, 어떤 허구는 이용하고, 어떤 허구에는 의존할 수밖에 없다(237쪽).”
인간이 이처럼 자신이 만든 허구 속에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면 타인과 규범이 만들어 낸 허구가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 낸 허구 속에서 살아가는 편이 보다 행복하지 않을까? 행복하지는 않더라도 그쪽이 보다 후회 없이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