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서울: 어크로스.
김영민(2018)의『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읽고 떠 올린 한 줄 평은 “비관주의라는 실용주의, 관조의 대상으로서 삶”이었다. “이러한 시절에 아침을 열 때는 공동체와 나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19쪽).”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갖는 이점 중 하나로 저자는 (정치인들이 말하는) 가짜 희망에 농락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든다. 정치인들이 말하는 희망 말고도 인생에 헛된 희망이 많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동의할 수밖에 없는 문장이었다.
죽음은 인간이 언제가 대면해야 할 필연적인 귀결이다. 죽음이 닥치기까지 인간은 상처 입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간은 성장하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태어나고, 자라고, 상처 입고, 그러다가 결국 자기 주변 사람의 죽음을 알게 된다. 인간의 유한함을 알게 되는 이러한 성장 과정은 무시무시한 것이지만, 그 과정을 통해 확장된 시야는 삶이라는 이름의 전함을 관조할 수 있게 해준다. 그 관조 속에서 상처 입은 삶조차 비로소 심미적인 향유의 대상이 된다. 이 아름다움의 향유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시야의 확대와 상처의 존재다(「성장이란 무엇인가」, 37쪽).”
“태어난 이상, 성장할 수밖에 없고, 성장 과정에서 상처는 불가피하다. 제대로 된 성장은 보다 넓은 시야와 거리를 선물하기에, 우리는 상처를 입어도 그 상처를 응시할 수 있게 된다. 상처는 언젠가는 피 흘리기를 그치고 심미적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성장이,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구원의 약속이다(「성장이란 무엇인가」, 37쪽).”
이 때문에 예술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 개개인의 고양된 삶의 형식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박식하고, 로맨틱하고, 예술적인 살인마: 한니발 렉터」, 291쪽).
연말연시에 읽기 좋은 책이다. 이제 2019년도 다 끝나간다.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새해를 기다려야 할 때이다. 물론 이 책에 따르면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 같은 것은 없다. “연말의 나로 하여금 올 한 해가 불행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없다」, 25쪽))”이 보다 실용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