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서울: 사회평론
가까운 이를 잃어 본 이들은 알 것이다. 그를 추도하는 장례식장에서 가서 그의 영정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이 어떤 일인지를. 장례식장으로 들어가 그의 영정 사진에 인사를 하는 그 순간은 살아 숨 쉬고 나를 알아 봐주던 이가 이제 내 머릿속 불완전한 기억에 의존하여 추억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순간이다. 김영민이라는 영정이라는 비유를 통해 재현이 가지고 있는 속성에 대해 촌철살인한다. “향불 너머의 영정 사진이라는 재현물(representation)은 두 가지를 동시에 말한다. 이제 이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 그리고 이 사진을 보는 당신은 그를 상기해야 한다는 것. 부재를 인정할 때에야 비로소 받아들이게 도는 어떤 현존이 거기에 있다(216쪽).”
재현물로서의 영정 사진. 잔인한 비유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재현의 속성에 대해 적확한 비유를 들기도 어려울 것 같다. 살아생전의 한 개인은 재현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만 만남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재현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가령, 트럼프라는 정치인은 지금도 각종 미디어에서 재현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자신의 정치행위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재현될 수 있다. 하지만 공자라는 인물은 시대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변주되어 재현되겠지만 자신이 거기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사자(死者)가 된다는 것은 능동적인 주체에서 재현이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관조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자에 대한 각자의 재현 방식은 재현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경험과 입장에 따라 판이하게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주어진 현실을 객관적으로 재현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현은 실증이 아니다. 재현은 드러내는 동시에 감춘다(214쪽).”
김영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재현 행위는 해당 대상을 그대로 구현할 수는 없음을 인정한 상태에서 그 대상을 ‘대신’하고자 하는 것이다(220쪽).”그러므로 어떤 대상을 재현하고자 할 때 특히, 자신의 일기장이 아닌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간에 공개적으로 남길 때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윤리에 입각하여 접근해야 한다. 자신이 생략할 수밖에 없는 어떤 부분이 나쁜 재현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선별의 과장 자체가 재현이 가진 한계이자 미학일 수 있다. “재현은 실증이 아니다. 재현은 드러내는 동시에 감춘다(2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