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해의 감수성과 콘텍스트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

김영민 (2019).『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사회평론

by 노창희

김영민의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논어에 관한 책이다. 김영민은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어떻게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부터 다룬다. 문제는 그 어떻게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다음의 문장을 읽고 크게 공감했지만 김영민이 얘기하는 감수성이 무엇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답하기가 무척 곤란할 것이 분명하다.


“텍스트 정밀 독해의 관건은 정식화된 절차를 적용할 줄 아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독해를 할 수 있는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 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22쪽).”


그 감수성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독서가 필요하다라는 것이 감수성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일 것 같다. 이 답변조차도 불완전한 미완의 답변일 수밖에 없다.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수반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부터는 각자의 영역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궁색한 답변이 될 것이다. 텍스트의 세계는 넓고 모든 텍스트를 읽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자신의 기준에 맞춰 텍스트를 대하다면 자신만의 감수성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내자신에게 하는 채찍질이기도 하다.


텍스트를 읽는 독해의 감수성이 필요한 이유는 소설, 시, 영화, 철학, 사회과학 등 텍스트는 놓여 있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텍스트의 이면에는 작가가 일부러 드러나게 보여주지 않은 것이 있고, 작가가 하고 싶었던 얘기가 담겨 있으나 자신은 의식하지 못한 채 텍스트를 통해 전달한 메시지가 있을 것이다. 알튀세르가 얘기한 징후적 독해가 바로 이것이다. 눈밝은 독자라면 작가가 무의식중에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읽어 낸다.

김영민은 한 발 더 나아가기를 권장한다. 텍스트에서 콘텍스트를 읽어 내라는 것. 이것은 작가가 애초에 의도한 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 정도에 이르면 단순한 독해가 아니라 일종의 창작 행위에 가까워진다. 텍스트에서 일부러 침묵한 것을 읽어 내고 콘텍스트 내에서 다시 의미를 발견해 내는 일.


“관행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대신, 관행을 비틀거나 전용하거나 침묵하거나
생략하는 행위에 동반되는 정치적 의미를 파악하려면, 해당 텍스트를 넘어 보다
넓은 콘텍스트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40쪽).”


고전을 왜 읽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라고 질문을 바꾸어 보면 역설적으로 고전을 왜 읽어야 하는가를 깨달을 수 있다. 고전을 새롭게 읽어 내는 것은 오늘의 세계를 조명하는 기회를 얻는 일이다. 김영민의 아름답고 정확한 문장은 그 사실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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