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녕『피에로들의 집』에서 박윤정과 김명우의 절기에 관한 대화
다음 주 목요일인 10월 24일은 서리가 내리는 시기를 뜻하는 ‘상강(霜降)’이다.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이자 아름다운 가을의 정취를 즐길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나는 언젠가부터 윤대녕의 소설을 떠올리면 ‘절기’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윤대녕 소설에 절기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절기가 은유하는 자연의 순환이 속박이라기 보다는 삶을 지탱해 주는 감각의 흐름과 같은 것이라고 작가가 여기고 있기 때문이리라.
내 기억이 맞다면 가장 최근의 단편집『누가 고양이를 죽였나』에는 절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작가가 자연의 섭리를 긍정할 수 없을 정도로 작가로서의 사회에 대한 부채감이 컸던 것이 절기가 등장하지 않는 배경이 되지 않았나 짐작해 본다.「서울-북미 간」에서 작가의 페르소나로 보이는 K는 딸의 죽음과 세월호에 대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만 살아온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음을 느끼고 괴로워 한다. K의 괴로운 심정에 작가의 마음이 투영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독자로서는 그런 짐작을 하지 않기가 어렵다.
『피에로들의 집』에서는 김명우와 박윤정이 ‘청명’을 앞두고 절기에 대해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절기가 음력이냐고 묻는 김명우에게 박윤정은 절기는 양력이라고 정정해 주고는 다음과 같이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아주아주 오랜 옛날이 되겠네요. 기원전이니까. 그때부터 사람들은 농사를 짓기
위해 날씨와 계절의 변화 추이를 지켜보며 그 순환 주기를 체크했어요.
조정에서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입는 옷의 색깔과, 먹는 음식의 재료와,
듣는 음악의 종류까지도 가려서 조절했죠. 고아나 과부를 구휼하고 죄인을
방면하거나 처형하는 일도 엄격하게 계절의 주기 변화에 따랐고요. 그런데 일년을 기준으로 할 때, 해와 달의 순기는 해마다 약간씩 차이가 나요.
달이 지구를 공전하는 시간과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시간과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시간에 근소한 차이가 발생하는 거죠. 이것을 보완하기 위해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십오 도 간격으로 시간을 나눈 것이 바로 절기예요. 먼저 일 년을
사계절로 나누고 각 계절별로 여섯 개의 절기를 짜맞추었죠. 춘분, 하지, 추분,
동지는 각 계절의 중심이 되고, 동지와 춘분 사이의 입춘, 춘분과 하지 사이의 입하, 하지와 추분 사이의 입추, 추분과 동지 사이의 입동은 각 계절의 시작을 알리게
되고요. 대충 이해가 되나요(89쪽)?
뒤이어 박윤정은“중요한 것은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해와 달의 움직움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90쪽)”이라고 이야기 한다. 절기를 긍정한다는 것은 자연의 흐름이 “단순한 반복이 아닌 순환(92)”이라는 것을 받아 들이는 일이며, “모든 존재는 순환하면서 나이를 먹고 성장을 거듭(92)”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적으로 연말이 다고 오고 겨울이 오면 좀 지친다. 올해도 예외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다가올 겨울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을의 마지막 정취를 즐기는 일이어야 마땅 하리라. 나는 절기가 등장하는 윤대녕의 새로운 소설을 기다린다. 고통스럽게 지속될지라도 자연이 선사하는 차이와 반복을 받아들이며, 언젠가 만나게 될 사람들이 결국에는 만나고야 마는 소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