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에 매료된 이들이 고전을 불멸케 한다.

김영민.『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서울: 사회평론.

by 노창희

사실 나는 아직까지 『논어』에 크게 관심이 없다. 은퇴해서 한문을 익혀가며 『논어』를 공부해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을 읽은 것은 『논어』때문이 아니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의 저자 김영민이 쓴 책이기 때문이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가 내게 준 것은 비관주의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실용성과 삶을 관조의 대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이 내게 준 것은 텍스트를 불멸하게 하는 것은 저자가 아니라 그 텍스트에 매료된 이들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재현은 전체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일부를 잘 보여줄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논어에 대한 해설서가 아니다. 논어의 일부 내용을 통해 김영민은 자신이 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공자의 욕망에 관한 다음과 같은 구절에 공자가 살아 돌아온다면 공감할지는 모르겠지만 김영민의 다음과 같은 해석에 나는 크게 공감했다. “진정 감탄스러운 것은 나이 일흔에도 여전히 공자는 욕망의 인간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나이가 들어보니 욕망이 사라진다고 말하거나, 오랜 수양 끝에 욕망을 없애는 데 성공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은 욕망을 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고,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질주해도 여전히 궤도 위에 있는 기차 되었다고 선언한다(105쪽).”


고전을 해석하는 일은 단순한 해석이 아니다. 오히려 고전의 권위를 빌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일에 가깝다. 이 일에 성공하는 일은 새로운 얘기를 하는 것보다 어려울 수 있다. 고전의 권위를 빌려 내놓은 메시지가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면 고전의 권위를 빌리지 않음만 못하다. 고전을 사랑하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과거의 고전을 사랑하는 것은 살아 있는 존재와 연애를 하는 일과는 다르다(11쪽).” 연애가 주어진 대상을 온전히 사랑하는 일이라면 고전을 사랑하는 것은 그 고전을 다른 사람들도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불어 넣는 일이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그 일에 성공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전에 담긴 것은 정답이 아니다. 지금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해 단서를 제공해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고전은 변치 않는 근본 문제에 대해 결정적인 답을 제공하기에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 문제에 관련하여 상대적으로 나은 통찰과 자극을 주기에 유의미하다(14쪽).”


그럼 누가 고전을 쓰는가? 김영민에 따르면 매료된 이들이다. 무엇에 매료될 때 고전을 쓸 수 있는가? 저술의 대상이 될 주제나 소재가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대상이라도 그것에 대해 정확하게 쓰는 것이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에 따르면 공자가 강조한 중용도 그 정확함이 지켜질 때 나온다. 정확하게 매료된 이들이 고전을 남긴다. “매료된 이들은 텍스트를 남기고, 남겨진 텍스트는 상대를 불멸케 한다(107쪽).”


그렇다면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누군가를 정확하지 않은 이유로 무조건 옹호하거나 무턱대고 혐오하지 않는 일이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 보다 더 필요한 덕목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과거의 특정 문화, 전통, 혹은 텍스트를 너무 성급하게 혐오하면, 그 혐오로 인해 그 혐오의 대상을 냉정하게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결국 그 대상을 정교하게 혐오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마찬가지로 특정 문화를 너무 성급하게 애호하면, 그 애호로 인해 그 애호의 대상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그 대상을 정교하게 애호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성급한 혐오와 애호 양자로부터 거리를 둔 어떤 지점에 설 때야 비로소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대상의 핵심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이 논어 에세이가 서 있고 싶었던 지점도 그러한 지점이었다(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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