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슬픔의 재발명을 위해

백상현. 『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 파주: 위고.

by 노창희

우리는 슬픔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을까? 백상현은 우리가 슬픔에 대해 오인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우리는 슬픔에 대해 오인하는 편이 살아가는 데 보다 수월하므로 쉽게 슬픔을 오인하며 살고 있다. 일부로 슬픔에 둔감한 채로 살아가는 것이다. 슬픔이라는 감정에 제대로 직면하지 않기 위해 인간은 자기 자신을 기만하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대부분의 인간은 어느정도 ‘보바리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인간의 욕망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명백히 드러난 눈앞의 공허를 잊기 위해 또 다른 환상을 불러오고, 그것이 환상인지도 모른 채 스스로 만들어낸 욕망의 시나리오에 몰입한다(75쪽).”“엠마 보바리는 인생의 환멸로부터 도피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것을 우리 책의 논점에서 해석하면, 엠마는, 그리고 우리는, 슬픔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환상을 쫓는다고 할 수 있다(75-76쪽).”

“슬픔이란 수동적 정념이며,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히스테리적 자기포기의 상태라는 생각은 가장 일반적 견해이다(23쪽).” 슬픔은 극복되어야 하는 부정적 감정이라는 일반적인 견해는 어느 정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슬픔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마저 힘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슬픔이라는 감정이 분출될 때 그것은 그 누구도 제어할 수 없다. 사랑하는 대상을 상실했을 때 우리는 슬픔이라는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에게 조의를 표하고 그를 애도해 주어야 한다. 슬픔과 애도는 통상적으로 잘 구분되지 않지만 백상현은 이를 엄밀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얘기한다.

“슬픔은 상실을 표지하는 맹목적 정동이다. 사랑의 대상이 상실되어 벌어진 상처에서 출현하는 마음의 상태이며, 상실된 것의 빈자리를, 마음의 공백을 마주한 채로 고통받는 감정이다. 반면 애도는 슬픔을 끝내기 위한 작업이다. 슬픔과 애도는 사실에 있어서 대립되는 절차인 것이다(24쪽).” 대상의 상실은 공백을 의미하고 그 공백을 못 견디는 것은 당연하다. “애도란 공백의 출현에 대한 자아의 방어라고도 할 수 있다(27쪽).”


세월호 유족들이 느끼는 슬픔은 그러한 의미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백상현은 그 슬픔을 부당한 것으로 만들려고 했던 시도에 대해 비판한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적극적으로 느끼는 것은 부당한 현실을 변화시켜 나가기 위한 출발점이며, 멈추지 말아야 할 과정이다. 재현된 서사를 보고 감동하는 주체가 아닌 슬픔을 통해 흔들리는 주체가 되도록 만드는 것은 진실한 슬픔이 산출할 수 있는 효과이다. “세계라는 스펙타클이 공연되는 장소에서 관객인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진실한 슬픔은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것이고, 흔들림 끝에 관객석의 고정된 자리에서 이탈하게 되는 것이라고. 그리하여 스펙타클의 이미지를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자리에서 관조할 수 없게 되는 사태만이 감정의 가장 진실한 효과라고 말이다. 존재를 흔들어 움직이게 만드는 이 같은 사태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스펙타클의 관객이 아닌 주인공이, 주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67쪽).”

슬픔을 진실로 느낄 때 진리라는 동사를 찾아 나가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어떤 종류의 슬픔은 하나로 모아 지기도 하지만 각자의 슬픔은 개별적 슬픔이고, 각기 개별적인 진리가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슬픔을 이해하기 위한 여정은 끝이 없다. 그러므로 “새로운 언어의 발명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차원의 실재 공간에서 요청되는 항구적 조건(90쪽)”이 될 수밖에 없다.


『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는 얇은 책이지만 여기에 담겨 있는 사유는 깊이는 깊다. 쉽지 않은 정신분석학적 개념들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백상현의 솜씨도 놀랍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메시지는 독자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문장은 시적이고 아름답다. 이 책을 덮고 생각나는 시가 한 편 있어 아래에 인용한다. 왠지 모르게 나는 슬픔이라는 감정과 사랑이라는 감정이 가장 가깝게 느껴진다.


살다가 살아보다가 더는 못 살 것 같으면

아무도 없는 산비탈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누워 곡기를 끊겠다고 너는 말했지

나라도 곁에 없으면

당장 일어나 산으로 떠날 것처럼

두 손에 심장을 꺼내 쥔 사람처럼

취해 말했지


나는 너무 놀라 번개같이,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해야만 했네(이영광,「사랑의 발명」전문, 『나무는 간다』, 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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