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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Dec 16. 2019

인생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베넷 밀러 <머니볼>

어린 시절 천재로 불리며 스탠포드 대학에 전액 장학금을 보장받은 유망주가 있었다. 이런 그를 프로팀에서 그냥 두고 볼 리 없다. 결국 그는 진로를 선회하여 뉴욕 메츠에 입단한다. 주목받던 유망주가 프로팀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사례는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넘치고 넘친다. 하지만 빌리빈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그는 구단주로 큰 성공을 거둔다. 성공을 거둔 구단주 이야기는 또 차고 넘친다. 그는 또 다르다. 가난한 오클랜드라는 구단을 지금까지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그는 명성과 달리 월드시리즈는 물론 챔피언십 타이틀도 가지고 있지 않다(가난한 구단의 한계라고 하기에는 운도 따르지 않는 것 같다).     


<스토브리그>를 재밌게 보고 있다. <스토브리그>를 보고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영화가 있으니 바로 <머니볼>. 나는 이 영화를 IPTV에 영구 결제하고 생각날 때마다 시시때때로 보는데 매번 볼 때마다 한 번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으니 내게는 놀라운 영화다. <머니볼>은 화려한 성적을 거뒀지만 결국 양키스에서 패배해 챔피언십과 멀어진 2001년 가을에서부터 시작된다. 더 뼈아픈 것은 제이슨 지암비와 자니 데이먼을 붙잡을 수 없어 부자 구단인 양키스와 보스턴으로 보내야 했던 것.      


빌리 빈(브래드 피트 분)은 클리브랜드에 왼손 구원투수를 포함한 쓸만한 선수를 영입하러 간다. 여기서 흥미로운 디테일 두 가지. 클리블랜드에 떠나기 전에 날 가지고 놀았다며 빌리 빈이 분개하는 대상은 류현진의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다. 또 한 가지 피터 브랜드(조나 힐 분)가 보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여 빌리 빈이 끝내 영입하지 못했던 그 선수는 롯데에서 뛰었던 카림 가르시아다. 클리블랜드에서 빌리 빈은 선수는 영입하지 못하지만 예일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피터 브랜드를 영입한다. 이것을 계기로 빌리빈은 본격적인 개혁 작업에 돌입한다.     

<머니볼>은 야구 영화나 스포츠 영화라기보다 리더십과 관습의 혁신이 무엇인지를 다루는 영화다. 빌리빈은 백인이면서 신체적인 조건이 좋고 출중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던 자기 자신이 과대 평가된 유망주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구단주 빌리빈과 유망주 빌리빈이 교차 편집되어 구성되어 있는 영화 <머니볼>은 성찰적인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빌리 빈은 자신을 과대평가 했던 다른 야구인들이 범했던 과오를 저지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머니볼>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빌리 빈이 나이 많은 코치들과 회의를 하는 장면이다. 선수 영입 기준에 애인의 외모까지 포함시키는 늙은 꼰대들 앞에서 빌리빈은 폭언을 서슴지 않는다. 다소 경멸적으로 묘사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야구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 방식에 사로잡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깨닫지 못한다.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한계를 뛰어넘는 이들이 소수이다.

      

<머니볼>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 중 하나는 “이래서 야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니까.”라는 대사이다. 하지만 <머니볼>을 본 사람은 안다. 야구를 사랑할 수 있는 순간은 오랜 분투 중 아주 잠깐이다. 야구를 사랑할 수 있는 순간은 분투했던 수많은 시간 중 잠깐 찾아오는 선물 같은 순간이다. 그 순간의 성취를 느끼기 위해서는 또다시 엄청나게 분투해야 한다. 여기서 야구를 인생으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 우리는 계속 살아야 하므로 분투해야 하고 아주 짧은 순간 인생은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우리가 진정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이다. <머니볼>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나 혹은 내가 속한 조직이 당연하다고 믿는 것이 과연 올바르고 정당한 것인지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 과정이 올바르고 정당하다면 가끔씩이나마 인생을 사랑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배경 이미지 출처: Matthew T Rader https://unsplash.com/photos/yXdJ8QVZ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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