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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Dec 25. 2019

스트리밍 시대 동영상 소비를 통한 구별짓기

동영상 이용과 문화적 위계

일요일 저녁, 영화 한 편을 보고 싶어서 고민 중이었다. 제일 보고 싶은 작품은 단연 마틴 스코세이지가 연출하고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가 출연한 <아이리시맨>이었다. 왠지 개봉관이 없을 것 같기도 했고, 검색해 보니 러닝타임이 무려 209분이었다. 돈을 좀 쓰더라도 편하게 볼 수 있는 환경을 갖춘 곳에서 나중에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득 뒤통수를 때리는 깨달음이 있었다. <아이리시맨>은 넷플릭스 오리지널이었던 것이다. 집에 돌아가서 크롬캐스트를 통해 집에 있는 TV로 미러링을 해서 <아이리시맨>을 보기 시작했다가 금방 잠들고 말았다(그 후로 이틀이 지난 지금도 <아이리시맨>을 마저 보지 못했다).     


2019년 발생한 수많은 문화적 현상 중에 내게 가장 흥미로웠던 현상은 상업적인 지향성을 지닌 글로벌 미디어 그룹들에서 비평적으로 우수한 가치를 지닌 작품들을 잇따라 출시했다는 것이다. 다른 지면을 통해 이에 대한 소회를 이미 밝힌 바 있는데(빈지뷰잉과 '조커', 영상 소비의 의미 변화.『아주경제』, 2019. 10. 20), 베니스의 2018년과 2019년의 선택은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준다. 베니스 영화제의 2018년 황금사자상 수상작은 넷플릭스가 제작한 <로마>였고, 2019년 수상작은 DC가 제작한 <조커>였다. 이 두 작품은 한 해를 결산하는 현재의 시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올해를 대표할 만한 비평적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손에 꼽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10여년 전 나의 전망을 무참히 짓밟는 것이다. 당시 내가 주제로 다룬 것은 음악산업이었다. 수업이 기회가 되어 발표한 한 글에서 디지털화가 음악산업을 동질화할 뿐 아니라 문화적 위계 측면에서 질이 낮은 콘텐츠를 대량양산할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한 이론적 자원은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이었다. 동영상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동영상까지 주제로 다루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음악산업은 물론 소위 스트리밍이라는 용어로 대변되는 현재의 동영상 환경은 디지털화가 양질의 문화적 콘텐츠를 몰아낼 것이라는 우려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방송을 시청하는 시간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지 몰라도 동영상을 시청하는 시간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다소 과하기는 해도 넷플릭스의 CEO인 헤이스팅스가 자신들의 경쟁상대는 수면시간이라고 얘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용자들이 일상의 상당 부분을 동영상 소비에 할애한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행위를 가치롭다고 생각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욕구가 아닐까?       


에밀 스타이너(Emil Steiner)는 「몰아보기의 실천: 스트리밍 영상 시청자의 의례, 동기, 느낌」,『넷플릭스의 시대』(임종수 역, 부천: 팬덤북스)에서 넷플릭스가 이용자들에게 제공하는 콘텐츠가 “문학에 좀 더 가까운 모습(295쪽)”이 되어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언급한다. 이는 이용자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동영상 소비가 문학을 읽는 것만큼이나 문화적 위계에 있어 높은 차원에 해당되는 행위가 되기를 원한다는 것을 시시한다. 


여기까지 얘기하고 나니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바로 피에르 부르디외다. 부르디외는 『구별짓기』를 비롯한 많은 연구를 통해 상류계급이 문화적 위계가 높은 문화상품을 소비하면서 자신을 자신보다 낮은 계급에 있는 사람들과 ‘구별’짓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고 얘기한다. 남들과는 다른 소비를 통해 자신을 구별짓고자 하는 스노비즘적인 소비는 문화상품 소비 뿐 아니라 많은 영역에서 흔히 발견되는 현상이다. 10여년 전 내가 간과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을 수도 있다.      


디즈니와 같은 전통적인 콘텐츠 사업자든(물론, 디즈니는 이제 스트리밍 사업자이기도 하지만) 넷플릭스와 같은 스트리밍 플랫폼이건 이제는 자신들이 가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업자라는 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용자들은 이들이 제공하는 콘텐츠를 이용하는 것이 즐겁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이 되기도 한다. 글로벌 미디어 그룹들이 제공하는 수준 높은 콘텐츠를 이용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시간 부담과 지적인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준 높은 콘텐츠를 제공하여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일과 수준 높은 콘텐츠를 소비하고자 하는 이용자들의 욕구가 상호작용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것이 긍정적인 현상이든 아니든 간에 분명한 것은 이러한 현상이 전체 동영상 시장과 관련 산업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이다. 2020년 베니스 영화제 수상작은 어느 회사에서 제작한 어떤 작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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