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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Dec 26. 2019

미디어에 의한 정치화와 정체성 형성 그리고 계몽

더글라스 켈너(Douglas Kellner). 『미디어 문화』.

1995년에 출판된 『미디어 문화』에 드러나 있는 더글라스 켈너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25년이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 보자면 비범하다고 밖에는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켈너가 예측한 것처럼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은 양방향 네트워크를 발전시켰고, 이것은 미디어 소비 뿐 아니라 정치 영역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어긋난 부분도 있다. 켈너는 거대 미디어 기업들이 양산해 내는 평균 이하의 질 낮은 콘텐츠들이 대중들로부터 외면받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하지만 디즈니, 디씨, 넷플릭스와 같은 미디어 공룡들은 비평적으로 최상위급 평가를 받을 만한 작품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 때문인지 모르지만 이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오히려 디즈니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너무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받을 정도이다. 어쩌면 이러한 변화는 켈너와 같은 비판적 지식인들이 80년대와 90년대 정치적으로 편향되고 소수인을 폄하 하는 콘텐츠들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기에 이뤄낸 성취일 수 있다.      


켈너가 가장 적극적으로 비난하는 지점은 <람보>와 같이 보수주의 이데올로기를 가진 미디어 문화들이 전쟁을 정당화하고 정부의 기조를 옹호하는 효과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켈너는 미디어 문화의 정치적 효과가 크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켈너가 강조하는 것은 미디어가 이용자의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지금의 미디어 환경에서 더욱 첨예하게 나타나고 있다. SNS 페르소나라는 말이 쓰일 정도로 매체를 통해 드러난 정체성이 중요해 지고 있기 때문이다. 켈너가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80년대와 90년대는 미디어의 내용이 이용자의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는 측면에서 미디어와 개인의 정체성 형성이라는 부분이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켈너는 미디어가 창출하는 이미지와 스펙터클에 집중하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그는 특히 보드리야르에 대해 적대적인데 보드리야르가 기술이 주도할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으면서 정치적 비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마도 켈너는 당시 미디어 문화 논의의 핵심에 있었던 포스트모던 관련 논의들이 미디어 문화의 정치적 측면을 조명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지금의 미디어 환경은 어떠한가? 양방향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전은 미디어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더욱 증대시켰다. 다만, 켈너가 걱정하는 것처럼 미디어를 통해 산출되는 내용의 효과가 커진 것이 아니라 이용자들이 직접적으로 정치적 의견을 발화하는 것이 과거보다 훨씬 용이해 졌기 때문에 이용자들이 힘이 커졌다는 것이 과거에 비해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미디어들의 정치적 편향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정치적 양극화는 필터버블과 같이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정보의 비대칭성은 과거보다 훨씬 줄어들었으나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켈너는 비판적 미디어 교육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현상에 대한 분석이 주를 이루는 이 책에서 비판적 미디어 교육학은 가장 구체적인 대안이다. 이는 오늘날의 많은 미디어 학자들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지점일 것이다. 지금의 미디어 문화 영역은 정부도 사업자도 온전히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한 생태계가 되었다. 선택권의 증대는 이용자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이용자들이 자신들이 가진 힘을 잘 활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대안일 수밖에 없으며, 다른 대안을 얘기하는 것도 어렵다. 다만, 이용자가 계몽의 대상일까? 켈너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 하고 있다. “우리와 우리의 다음 세대가 문화연구를 문화자본의 축적이나 과시 용도로 사용하기보다는 사회비판과 계몽과 변동을 위한 무기로 이용하기를 희망한다(626쪽).” 대체로 수긍이 가는 문장이지만 계몽이라는 단어만큼은 좀 거슬린다. 이제 이용자들은 계몽의 대상이 아니다. 미디어 학자들은 계몽의 목적이라기보다는 접하기 어려운 정보와 분석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이용자에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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