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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는 원숭이: 서사가 우리를 지배하는 방식

by 사회철학에서 묻다

1. 서론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는 이동진 영화 평론가가 23년 올해의 책 중 하나로 소개한 책이다. 이동진 영화 평론가의 박식함을 익히 알고 있었던 나도, 그의 이 책에 대한 평가를 보고 읽게 되었다. 이동진과 대중 평론가들은 주로 이야기 구조의 힘에 주목했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생각은, 인간은 이야기를 서사적으로 정보를 파악하면서 진화해 왔기 때문에 이야기의 구조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특정한 이야기 패턴을 가진 정보는, 다른 이야기 패턴을 가진 정보보다 효율적으로 전달된다는 말이다. 또한 우리의 뇌는 불확실성을 피하기 위해 인과적으로 정보를 파악하는데, 이때 개인이 가진 배경지식이 큰 영향을 미친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바는, 우리가 모든 정보를 자유의지로 판단한다는 믿음 자체가 오만이라는 점이다.


물론 잘 지어진 이야기가 인권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생산해 낸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는 다른 이야기꾼의 기술에 지배받고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인간의 이성과, 그로 인해 나타나는 자유의지는 매우 흥미롭고 매력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무의식, 소쉬르의 언어학, 그리고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와 같은 개념들은 우리의 자유의지는 환상일 수도 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 책은 ‘이야기’라는 관점을 가지지만, 이와 같은 의견과 궤를 같이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발생했고, 또 어떻게 우리를 지배하는가?


2. 고대 신화와 박스오피스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는 인간이 특정 이야기 패턴에 쉽게 흥미를 느끼고 설득된다고 주장한다. 현재 영화에서 사용되는 이야기의 구조가 과거 신화에서 사용되는 이야기 구조와 매우 비슷하다는 것이다. 신화와 지금의 영화는


익숙한 세상

모험으로부터의 부름

거부

영웅이 길을 나서고 멘토의 도움을 받는다

문턱

시험·동지·적

나쁜 놈들이 닥친다

영혼의 어두운 밤

칼을 움켜쥔다

귀로

부활

영웅이 집으로 돌아온다

라는 전형적인 영웅 이야기의 패턴을 따른다. 또한 이런 이야기는 필수적으로 강력한 적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이 서사의 전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바로 『반지의 제왕』이다.


프로도는 익숙한 세상(샤이어)에 살다가

절대 반지를 없애기 위해 여행을 떠날 것을 권유받는다.

호빗 세상에서 평화롭게 살던 프로도는 여행을 거부한다.

하지만 간달프와 레골라스 등의 도움을 받으면서 여행을 떠난다.

마침내 프로도는 모리아를 지나고, 다시는 호빗 마을로 되돌아갈 수 없다.

프로도의 여정은 쉽지 않고 오크 등의 습격을 받지만 잘 견뎌 낸다.

잘 견뎌 내던 것도 잠시, 프로도 일행은 습격을 당하고 간달프가 희생당한다.

프로도는 대형 거미의 위기에 처하지만

떠나갔던 샘의 도움으로 다시 의지를 다진다.

(여행 후 귀로가 시작된다)

마침내 반지를 파괴할 수 있는 장소에 도착하지만 골룸이 다시 습격한다. 결국 반지를 파괴하는 데 성공한다.

모든 일을 마친 프로도는 한층 더 성장하여 호빗 마을로 되돌아간다.

그렇다면 오디세우스는 어떠한가?


오디세우스는 이타카 섬의 왕으로, 평화롭고 번영하는 가정을 이루고 있다. 그는 지혜롭고 용감한 영웅으로, 트로이 전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오디세우스는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제우스와 다른 신들의 방해로 인해 긴 여정을 떠나게 된다.

오디세우스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여러 번의 실패와 어려움에 부딪혀 일시적으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여정 중에 여러 신들과 영웅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예를 들어, 아테나 여신은 그에게 전략적 조언을 제공하고, 칼립소는 그에게 잠시 휴식을 준다.

오디세우스는 키클롭스와의 싸움이나 사이렌의 노래를 견디는 순간 등, 평범한 세계를 떠나 초자연적이고 위험한 세계로 들어간다.

오디세우스는 여러 시험을 겪으며, 동료들과 함께 싸우고 적들과 맞서 싸운다. 동료들은 다양한 시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많은 동료가 희생된다.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같은 괴물, 그리고 파이아키아(파로테이아) 왕의 저주 등 여러 적과 맞서 싸운다. 또한 신들의 방해도 큰 적 중 하나다.

오디세우스는 모든 희망을 잃고 깊은 절망에 빠진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슬픔에 잠긴다.

자신의 모든 지혜와 용기를 동원해 마지막 시련을 극복한다.

모든 시련을 극복하고, 자신을 배신한 귀족들과 맞서 싸워 왕국을 되찾는다.

이타카로 돌아와 가족과 왕국을 되찾는다. 그가 얻은 지혜와 경험은 고향을 더 번영하게 만든다.

이러한 서사의 구조는 현대의 스파이더맨, 배트맨, 그리고 고대의 헤라클레스 등 다양한 영웅 이야기의 근본적인 구조가 된다.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와 영화·게임 등 다양한 매체를 즐길 수 있는 현대의 인간과, 책을 통해서만 정보를 얻을 수 있고 한정된 매체로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과거의 인간은 모든 면에서 다르다. 하지만 몇천 년의 세월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시대의 인간 모두 비슷한 이야기 패턴을 즐긴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는 특정 이야기 패턴을 즐기는 것이 단순한 선호가 아니라, 인간이 지닌 본질적인 특성이라는 뜻이다. 쉽게 말해 이런 이야기 패턴을 더 잘 구사하는 사람이 더 쉽게 사람들을 설득하고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정보를 능동적으로 해석해 행동하기도 하지만, 이야기꾼의 능력은 우리가 특정 정보를 더욱 쉽게 받아들이는 요인이 된다. 이는 이성과 자유의지라는 이야기에 큰 균열을 낸다.


3. 진화론과 이야기하는 원숭이

그렇다면 인간이 이런 본질적 능력을 어떻게 얻게 되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는 책은 진화론적 입장을 사용한다. 다윈은 그의 저서 “종의 기원”에서 진화론을 세상에 처음 소개했다. 진화론을 쉽게 말하면, 인간은 진화를 통해 지금의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진화는 신의 창조나 목적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선택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가령, 하나의 종은 환경적 요인에 의해 여러 가지 변이를 가진다. 이런 특성은 변이를 일으킨 유전자에 의해 다음 세대로 유전된다. 그중 자연에 더 잘 적응하는 변이는 과잉 번식되고, 다른 변이는 도태된다. 예를 들어 달리기를 잘하는 가젤은 그렇지 못한 가젤에 비해 사자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이 높아, 달리기를 잘하는 변이가 다음 세대로 유전되어 그 가젤이 과잉 번식된다는 것이다. 즉 환경적 요인(현대 생물학에서 말하는 돌연변이 등)으로 인해 변이가 생기고, 그 변이 중 특정 자연환경에 잘 적응하는 유전자만 과잉 번식되고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3-1. 이야기를 하고 믿는 능력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는 이런 의미에서, 이야기를 잘하고 믿고 전달하는 인간이 살아남았다고 설명한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과거·현재·미래를 이해할 수 있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도 이야기하고 믿는 능력이 있다. 예를 들어 두 부족이 있다고 하자. 한 부족은 사냥에 성공한 사람이 이야기를 통해 다른 부족민에게 사냥법을 전수할 수 있지만, 다른 부족은 그렇지 못하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두 번째 부족은 모든 사냥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반면, 첫 번째 부족은 시행착오를 겪을 필요 없이 가장 성공적인 사냥법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이 부족은 살아남게 되고, 다른 부족은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의미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인간의 변이는 살아남았고, 지금까지 생존해 온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다.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은 지식의 전달뿐만 아니라, 특정한 생존 방식을 ‘연습’ 해 볼 수 있는 장을 열어주어 더욱 생존에 유리하게 한다.


3-2. 인과 법칙

인간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높은 지적 능력을 지니기에 미래를 생각할 수 있다.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은 불확실성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불확실성이란,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한 삶을 만들고, 이는 자아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이러한 인간의 특성은, 인간이 과거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인과관계’로 세상을 파악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인과관계는 모든 것이 딱딱 맞아떨어지지는 않더라도, 특정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논리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번개가 치면 단순히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번개의 원인을 ‘신의 분노’라고 생각하고 신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식이다. 이런 인과관계에 의한 세상의 이해가 연구와 행동을 가능케 했고, 위와 같은 방식으로 인류 역사 속에서 이런 ‘인간적 변이’만 살아남게 되었을 것이다.


3-3. 밈과 정치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밈(Meme)’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하는데, 이것 역시 인간이 이야기를 좋아하고 인과 법칙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변이가 살아남은 것을 설명해 준다. 이야기를 잘하고, 인과관계로 세상을 설명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은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높은 위치에 설 수 있게 된다. 모든 사람이 같은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사람은 소수일 뿐이다. 단순히 자연선택에 의한 과잉 번식이라는 개념만으로는, 소수의 능력자가 다수의 비능력자를 이긴 이유를 설명해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런 능력을 갖지 못한 인간들은 분명 이들의 탁월함을 두려워했을 것이고, 반항하거나 죽이는 방향으로 행동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의 생물학적 유전자뿐 아니라, 부족이나 나라로 대표되는 문화적·정치적 유전자, 즉 ‘밈’ 또한 보호하고 유전하고자 한다. 밈을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이야기하고 세상을 인과관계로 파악하는 특이한 인간의 말을 듣고 명령에 따르는 것이다. 이야기 능력을 지닌 인간은 점차 지도층으로 부상했고, 그 권력은 후대로 전수되었다. 이들도 이러한 능력을 남기고 싶어 했기에 그 능력을 전수하기 위해 교육이나 훈련 같은 개념을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로 지금의 인간도 서사적 영웅 이야기 패턴에 더욱 흥미를 느끼고, 쉽게 정보를 받아들이게 된다.


3-4. 뇌신경물질

인간은 언제 행복한가? 인간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은 전통적으로 철학이 대답해야 할 영역이었다. 하지만 뇌 과학의 발달로 인해, 특정 뇌신경물질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고 사람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다는 설명이 등장하고 있다. 아무리 힘든 일을 해도, 뇌에서 엔도르핀이 생성되면 행복을 느낄 수 있다. “Runner’s High”가 대표적인 예시다. 힘들게 달려도 뇌에서 엔도르핀이 나오면 달리면서 행복을 느낀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맹수를 만나면 달려서 도망쳐야 하기 때문에 생긴 변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떻게 생겼느냐가 아니라, 어떤 결과를 만드느냐다.


인간은 ‘좋은 이야기’, 즉 특정 이야기 형식을 갖춘 이야기를 들을 때 코르티솔, 도파민, 옥시토신 그리고 엔도르핀이 생성된다. 각각의 신경물질이 하는 역할은 다르지만, 이 네 가지 신경물질이 동시에 분비될 때, 인간은 특정 이야기를 더욱 믿게 된다. 더 쉽게 감정적으로 공유하며,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이처럼 인간은 같은 정보라도 이야기를 통해 주어지면 더 쉽게 받아들이고, 특정 이야기 패턴을 따를 때 더욱 쉽게 행동하고 감정적으로 동요하며 공감한다. 민주주의는 정보를 제공하고, 그 정보에 따라 사람들이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따라서 민주주의 국가는 정보의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지만, 이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4. 이야기 그리고 왜곡

지금까지는 인간이 이야기에 휘둘리고 제대로 정보를 해석하지 못하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제부터는 인간이 정보를 어떻게 왜곡할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3-D 프린터’라고 한다. 3-D 프린터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인간에게 정보가 주어졌을 때 정보가 불충분하더라도 ‘추측 능력’을 통해 완전한 정보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후설은 이런 능력을 인식의 ‘구성 작용’이라고 불렀다. 인간은 눈앞에 집의 앞면만 정보로 주어졌을 때, 뒷면과 옆면에 대한 정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집’이라는 완전한 정보를 생각해 낸다. 그는 이를 ‘더 많이 생각함’이라고 명명했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지평’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하면, 인간의 의식이 특정 정보를 받으면 그 정보만을 가지고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생각함’을 통해 구성하는데, ‘더 많이 생각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이제까지 그 인식이 가지고 있던 지식의 지평이라는 것이다.


집의 앞면만 보았지만(정보), 이전에 가지고 있던 ‘집’의 옆면과 뒷면에 대한 기억(지평)을 통해 완전한 집의 모양을 인식할 수 있다(더 많이 생각함). 뇌가 3-D 프린터라는 것은 이러한 인식 작용을 의미한다. 인간은 불완전한 정보를 받으면 그대로 놔두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과 경험을 통해 ‘완전해 보이는 정보’로 재생산한다. 이는 우리가 과거의 교육, 경험, 지식 등으로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 없으며, 때때로 정보를 왜곡한다는 뜻이 된다.


특히 우리의 두뇌는 너무 많은 정보를 처리해야 하므로, 자아에 모든 정보를 ‘날것 그대로’ 전달할 수 없다. 날것 그대로 전달받은 자아는 아무런 행동도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두뇌는 자아가 정보를 얻고 즉시 행동할 수 있도록, 정보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데, 이때 지식의 지평, 즉 과거의 ‘나’가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가 된다.


예를 들어 보자. 채찍에 고통받는 흑인 노예를 목격했다고 하자. 우리의 자아는 “흑인 노예가 고통받아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이때 우리의 두뇌는 ‘더 많이 생각함’을 통해 우리에게 답을 준다. 먼저 나의 지평이 “흑인은 사람이 아니다”라면, 위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일 것이다. 반면, “흑인도 우리와 동등한 사람이다”라는 지평을 가지고 있다면, 대답은 “아니다”가 될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객관적 현실에 대한 객관적 대답을 요구하는 상황보다, 이렇게 주관적 평가를 요구하는 영역이 훨씬 많다. 이처럼 인간의 판단은 객관적 정보가 아니라, 뇌가 가진 ‘지평’에 의해 조정된다.


‘자아 정체성’ 역시 인간이 정보를 왜곡하게 하는 큰 요인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는 모든 것이 변한다는 뜻이며, 인간에게도 적용된다. 인간의 자아는 매 시 매초마다 변한다. 자아는 경험, 지식, 환경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며, 어제의 자아와 오늘의 자아는 다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은 어떻게 ‘자아 정체성’을 가질 수 있을까? 인간은 자아의 역사를 규정하고, 그 역사성에 따라 정보를 변형시켜 가며 ‘자아 정체성’을 지켜낸다. 과거의 내가 옳다고 믿고 해 왔던 행동을 지속하기 위해, 과거의 나의 행동이 틀렸음을 시사하는 정보를 무시하거나, 변형해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행동은 ‘반향실 효과’, ‘확증 편향’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정보의 홍수 시대에는 정보를 선택적으로 습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더욱 심화된다.


5. 결론

“인간은 양질의 정보를 습득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매력적인 내러티브다. 인간은 생각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있기 때문에, ‘자유’라는 매력적인 키워드가 없다면 우울한 인생을 살 것이라는 말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자유의지’라는 단어는 양날의 칼과 같다. 인간에게 자부심을 부여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면서도, 동시에 인간이 스스로 돌아봐야 할 부정적인 면을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이라는 행위는, 세상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자 힘이다. 토니 파커의 삼촌이 토니 파커에게 말한 것처럼, “커다란 힘에는 커다란 책임이 따른다.”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이란, 우리의 행동이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생각하고, 고뇌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는 말은 매우 의미가 있다. 이야기에 의해 조종될 수 있는 ‘이야기하는 원숭이’라는 개념은, 자칫 자만으로 빠질 수 있는 인간에게 주는 중요한 경고라고 생각한다. 사유하지 않는 인간은 유죄다’라는 아렌트의 경고는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주어진 정보를 무작정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사유를 통해서 정보를 선별하고, 의심하는 능력이 필요한다. 또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효과적인 내러티브’와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우쳐 준다. 행동과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좋은 의지와 생각은 그 자체로 공허하다. 따라서, 좋은 이야기와 내러티브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이 책은 큰 가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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