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은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담론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됩니다.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기반으로
“모든 사람은 출신이 아니라 능력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라는 능력주의를 선택했습니다.
그 이후 사회에서 능력이 인정되는 정도는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 중 하나로 자리 잡아 왔습니다.
물론 능력주의 그 자체는 매우 매력적입니다. “출신이 아니라 능력으로 평가한다”라는 사회적 담론이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사회 발전에도 큰 공헌을 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이클 샌델은 3가지 이유로 능력주의를 비판합니다.
첫째, 능력의 폭정은 출신의 폭정에 다를 바 없다.
둘째, 승자의 오만과 패자의 굴욕의 관계를 만들어 내고 이는 사회문제를 야기한다.
셋째, 대학만능주의와 기술 관료의 정치를 발생시킨다.
첫째, 모든 사람이 똑같이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IQ와 같은 지적 능력과 노력과 같은
사회적 능력은 누구는 가지고 태어나고 누구는 가지고 태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둘째, 능력주의의 승자는 자기의 노력에 의해서 승리했다고 오만해지고 패자는 자기가 노력하지 않아 패배했다는 굴욕감에 시달립니다. 이는 심리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승자가 시장에서 제공하는 보상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해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는 철학적 토대를 마련합니다. 또한 패자는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해도 싸다는 생각으로 사회보장 제도의 약화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셋째, 능력주의는 대학만능주의를 양산합니다. 왜냐하면 좋은 대학교를 가는 것 또한 능력주의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좋은 대학을 나온 능력주의의 승자가 그들의 지식과 능력을 토대로 기술관료적 정치인이 되는 것이 당연시되는 사회가 됩니다. 이는 많은 문제를 만들어 냅니다. 기술관료적 태도는 옳고 그름이 명확하고 이에 따라 정치를 합니다. 하지만 정치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다른 아이디어에 대해 토론하고 다양한 사람의 의견을 듣고 정책을 만드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요소가 무시되고 이는 정치적 소외 현상을 만들어 냅니다. 이는 최근 포퓰리즘 유행의 원인입니다.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에 따르면, 이에 대한 해결책은 모든 노동이 인정받고 존중받는 사회입니다. 또한 개인의 능력을 과신하고 그로 인한 보상을 독식하는 사회가 아니라 공공선을 존중하고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마이클 샌델은 말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하는 책은 매우 많지만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처럼 능력주의 자체를 비판하는 책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저는 마이클 샌델의 이러한 접근이 매우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이클 샌델의 철학적 기반을 관통하는 생각은 “겸손”과 “공공선”입니다.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평등한 사회를 약속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승자와 패자는 필연적입니다, 승자와 패자가 없다면 자본주의가 추구하고자 하는 사회적 발전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자본주의는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불행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내가 람보르기니를 타서 행복한 이유는 다른 사람이 티코를 타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르망디를 마시면서 행복한 이유는 소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이 말하는 “겸손”과 “공공선”은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는 없지만 자본주의를 좀 더 민주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소개된 하이에크의 생각을 공유하고 마치겠습니다.
“시장의 보상을 듬뿍 받는 사람에겐 그럴 만한 도덕적 이유가 있다”라고 주장하기보다, 애당초 경제적 보상과 개인의 능력, 도덕적 자격은 전혀 무관하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평생을 능력에 따라 평가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 벗어나, 능력만 있다면 누구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는 민주주의와 함께 인류가 성취한 최고의 성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죽어라 공부만 하는 학생들과 온갖 갑질을 당하면서 편의점에서 일하는 젊은이들 그리고 미국의 sat 스캔들을 보면 능력주의의 폐해가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첫째, 마이클 샌델에게 능력에 따른 차등분배는 출신에 따른 차별과 다를 바 없습니다. 빈익빈 부익부처럼, 부잣집 아이들은 충분한 지원을 받고 더 잘살게 된다는 것은 현실입니다. 누구는 편의점에서 10시간씩 일할 때, 누구는 해외연수도 가고 빵빵한 에어컨 아래서 공부한다면 경쟁의 결과는 뻔합니다. 그리고 iq나 열심히 하는 성격 모두 능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이는 스스로 획득한 게 아니라 주어진 것입니다.
둘째, 능력주의는 승자의 오만과 패자의 굴욕을 만듭니다. 능력주의는 자기가 가진 것은 자기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자기가 가진 것에 대한 우월감과 함께 소유에 대한 확신을 줍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처럼 얻지 못하는 사람들은 문제가 있거나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비난합니다. 패자에 대한 비난은 자기가 가진 것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비난의 수위를 더욱 크게 가져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복지제도에 인색한 사회를 만들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능력주의는 대학만능주의를 만듭니다. 능력의 끝판왕은 대학입니다. 좋은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모든 면에서 우월한 사람으로 평가받게 됩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닐 수 있지만 민주주의에도 같은 기준을 세운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중요시합니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과정은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대표성입니다. 어떻게 하버드나 서울대를 나온 사람이 노동자들을 대변할 수 있을까요?? 이런 생각은 대학만능주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데 대한 해결책으로 마이클 샌델은 노동에 대한 존중과 겸손 그리고 공공선을 주장합니다. 사람들이 능력이라는 획일적인 잣대로 판단되기 때문에 자기가 잘하는 일 혹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좋은 능력으로 대변되는 일에 몰두합니다. 이는 사람들의 다양성을 파괴하고 진정한 능력이 꽃피우는 것을 가로막습니다.
또한, 자기의 성공이 나의 노력뿐만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선물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겸손과 자기가 얻은 것을 공공을 위해서 베풀 수 있는 공공선의 자세 또한 능력주의의 폐해를 막을 수 있는 중요한 가치라고 마이클샌델은 주장합니다.
여러분은 능력주의가 얼마나 공정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능력주의가 공정하다고 하더라도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