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인간을 변화시키는가, 아니면 인간이 행동할 수 있는 조건을 재설계하는가?
인간은 의식의 탄생과 함께 자신의 요구에 따라 자연을 변화시키는 자율적 존재로 성장해 왔다. 도구를 만들어 신체의 연장을 확장했고, 산을 깎고 바다를 막아 자연환경과 영토마저 재구성해왔다. 인간은 자연을 주어진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조건을 바꾸는 존재였다.
이제 인간은 또 하나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인공지능을 통해 사고와 판단의 일부를 외부로 이전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인간의 자율성은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과연 인간이 기술에 의해 변화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이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조건 자체가 조용히 재설계되고 있는 것일까.
이는 형이상학적 질문이 아니다. 온라인 컬트 문제와 AI로 인한 공장 자동화 현상은 이 질문이 이미 현실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The Economist는 온라인 컬트 문제가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디지털 환경이 인간의 심리를 조직하는 방식과 깊이 연결돼 있음을 지적한다. 이들은 고립된 개인이 온라인으로 대피한 틈을 노려 그들을 유인하고, 직접적 강제가 아닌 심리적 의존을 통해 통제한다. 에리히 프롬이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지적했듯, 고립된 개인은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강한 권위에 자신을 맡기고 스스로 자유를 내려놓는다. 온라인 컬트는 바로 이 심리를 디지털 환경과 알고리즘을 통해 증폭시킨다.
같은 질문은 공장 자동화에서도 반복된다. 1980년대 공장 자동화가 실패한 이유는 로봇의 하드웨어뿐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소프트웨어에 있었다. 로봇은 정해진 명령만 수행할 수 있었고, 예상 밖의 상황에는 무력했다. 그러나 오늘날 생성형 AI는 로봇이 새로운 조건에 대응하도록 만든다. 이는 노동자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지만, 노동의 위치를 현장에서 관리와 설계, 소프트웨어 영역으로 이동시킨다.
두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기술이 인간을 제거하는 방식이 아니라, 인간이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조건을 재배치하는 방식이다. 인간은 자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AI를 개발했지만, 동시에 그 기술이 요구하는 속도와 구조에 맞춰 재배치되는 존재가 되고 있다.
온라인 컬트는 인터넷과 SNS의 출현으로 고립된 개인을 만들어내고, 알고리즘이라는 기술을 통해 그 취약성을 더욱 강화한다. 공장 자동화 역시 마찬가지다. 노동을 통해 자아를 형성하던 인간은 점점 기술을 관리하거나 따라가지 못하면 탈락하는 위치로 밀려난다. 인간은 기술 발전을 통해 진보를 선택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기술이 설정한 조건 속에서 다시 정의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떤 기준과 절차로 사회에 편입시키느냐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다시 러다이트 운동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혹은 진보를 포기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하지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기술의 발전이 멈추지 않는다면, 인간 역시 아무 생각 없이 적응하는 존재로 남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기술은 인간을 바꾸지 않는다. 대신 인간이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조건을 바꾼다. 그렇다면 남은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이 재배치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설계된 조건에 적응하고 있을 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