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속도보다 더 무서운 것: ‘중간구조’의 붕괴

(1)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AI의 눈부신 발전에 대한 기대와 함께, AI 세상에 대한 거대한 어둠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고 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공포는 터미네이터 같은 막연한 상상이 아니다. 직업을 잃을 수 있다는 직접적이고 급박한 문제다.
AI는 지치지 않고, 논리적으로 보이며, 유지비용도 인간보다 훨씬 적게 든다. 그래서 AI가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능력을 갖추게 된다면, 결국 인간이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이 공포는 “기술”에 대한 공포라기보다, 내가 사회에서 맡고 있던 역할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에 가깝다.


(2) 그런데 현실은 왜 공포처럼 움직이지 않는가

하지만 현실을 보면, 우리가 느끼는 공포가 과장되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The Economist에 따르면 생성형 AI가 급속히 발전하는 지금도 일자리가 사라지기는커녕, 미국에서는 2022년 말 이후(ChatGPT 등장 이후)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대략 300만 개 늘었고, 블루칼라 고용은 대체로 정체에 가깝다. AI의 ‘조기 피해자’로 자주 거론되는 직군에서도 고용이 의외로 탄탄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AI는 강력하지만 “울퉁불퉁한 경계(jagged frontier)”를 가진다.
AI는 어떤 업무에서는 놀랄 만큼 뛰어나지만, 다른 업무에서는 자신감 있게 헛소리를 하거나, 아주 기본적인 계산·추론에서 삐끗한다. 즉, 기업 입장에서는 “AI를 어디에 붙이면 이득이 나고, 어디에 붙이면 사고가 나는지”를 실험하고 검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예측 불가능성이 ‘즉각적 대체’를 어렵게 만든다.


둘째, 기술은 발명보다 ‘확산’이 더 느리다.
전기도 1880년대 상업화된 뒤 공장 생산성을 크게 끌어올리기까지 40~50년이 걸렸다. 기계가 아니라 공장 설계와 업무 흐름 자체를 바꿔야 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기업은 다음 같은 인프라를 확정 지어야만 AI를 전적으로 생산에 넣을 수 있다.


적용 범위: 어느 업무를 AI가 맡고, 어느 업무는 사람이 맡는가


검증·책임 체계: 오류(환각 포함)를 어떻게 잡고,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지는가


프로세스 재설계: AI를 전제로 업무 흐름·권한·평가 체계를 어떻게 바꾸는가



이런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AI가 대단하니 곧 대량 실업”이라는 직선적 예측은 현실에서 곧바로 구현되기 어렵다.


(3) 그럼에도 위험한 지점은 분명 있다: ‘사라질 층’과 ‘더 중요해질 층’

그렇다고 낙관만 해도 되는 건 아니다. AI 시대에 단순작업을 하는 인력이나 사회초년생들이 타격을 받을 가능성은 높다. 초년생은 직업에 적응하기 전까지 자료 정리, 요약, 반복 문서 작업처럼 “단순하지만 시간이 많이 드는 업무”를 맡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일은 관리자가 검수만 제대로 한다면 AI로 대체하기 쉽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중간구조’를 두 층으로 나눠 보는 것이다.

사라질 위험이 큰 층: 반복·정형 업무 중심의 백오피스, 초년생의 단순업무


오히려 더 중요해질 층: 검토·보정·판단·책임(“휴먼 인 더 루프”)을 담당하는 사람들


즉, 모든 직업이 사라지는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일자리 내부의 구조가 재배열되는 쪽이 더 현실적이다. AI가 강해질수록 ‘판단’과 ‘책임’은 더 비싸지고, 더 중요해질 수 있다. 반대로 “훈련을 위한 단순 업무”가 사라지면, 사회초년생이 성장하는 경로가 끊길 수 있다. 이 지점이 진짜 위험이다.


(4) 중간구조가 무너지면, AI의 성과는 정치적 반발로 상쇄될 수 있다

만약 이 ‘진입 경로’가 사라지고, 젊은 층이 대량으로 밀려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AI의 발전이 기술적으로 느려진다기보다, AI가 만들어낼 경제적 이득이 사회적 반발로 상쇄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자리를 잃은 젊은 세대가 거리로 나서 “AI에게 빼앗긴 것을 돌려달라”라고 요구한다면, 정치권은 결국 어떤 형태로든 규제·통제·분배 요구를 수용할 압력을 받는다. 반발이 커질수록 기업도 투자를 주저하고, 사회적 정당성도 빠르게 소진된다.

과거에도 비슷했다. 공장 일자리의 붕괴가 단지 경제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균열로 이어졌듯, AI 충격도 “청년층 진입 경로의 붕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면 사회 안정성을 크게 흔들 수 있다. 그 순간 AI는 ‘혁신’이 아니라 ‘갈등의 촉매’가 된다.


(5) 그래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속도’가 아니라 ‘판단과 책임을 나누는 구조’다

AI 시대에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혁신을 늦추자” 같은 구호가 아니다. 판단과 책임을 나눠 갖는 구조, 그리고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 진입 경로다.
AI가 만들어내는 정보와 결과물을 검증하고, 조직과 사회가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설계하며, AI로 인해 뒤처진 사람들에게 다시 올라올 사다리를 제공하는 정책과 제도를 지지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경제기술 문제가 아니다. 기술 변화에서 밀려난 집단이 소외감을 느끼고 정치적 균열이 심화될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우리는 이미 여러 사례를 통해 봐 왔다. AI가 사회적 정당성을 잃지 않으려면, ‘누가 대체되는가’보다 ‘누가 성장할 기회를 잃는가’를 더 먼저 봐야 한다.


참고기사:

https://www.economist.com/leaders/2026/01/29/stop-panicking-about-ai-start-prep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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