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 읽기
(1) 서론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를 통해 소비에트 유니온을 위기에서 구하고자 했지만, 소비에트 유니온은 고르바초프의 개혁의 과정 속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역사의 최종 승리자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소비에트 유니온이 사상적 뿌리로 삼았던 마르크스의 유령 또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 보였다. 심해지는 빈부격차와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은 후쿠야마의 선언을 비웃기라도 하듯 마르크스의 유령을 다시 불러들이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소비에트 유니온과 마르크스를 동일화하면서 소련의 몰락이 마르크스의 실패로 간주되고 있다. 레닌, 스탈린 그리고 마오쩌둥 등이 마르크스 철학을 표방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들이 이론과 실천을 마르크스와 동일시할 수 있는지는 검토가 필요하다. 이에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은 마르크스주의를 교리나 국가 체제가 아니라 사회 인식의 방법으로 재구성하기 때문에 좋은 기준이 된다. 루카치는 “역사와 계급의식”을 통해서 사물화가 자본주의 체제 모든 곳에 스며들었음을 밝힌다. 그리고 사물화를 비판해야 할 철학조차 사물화 된 구조를 갖는지 묻는다.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 사상의 뿌리라고 해도 될 헤겔의 역사의식에 동조하는 듯하면서도 프롤레타리아트라는 특정 계급을 지정하면서 헤겔과 긴장을 유지한다. 마르크스의 사상에 정통한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 특히 4장 사물화의 논의를 통해 마르크스를 이해하는 것이, 후쿠야마의 선언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마르크스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루카치의 사물화 개념을 통해 소련의 몰락과 마르크스 사상 사이의 관계를 재검토하고자 한다.
(2) 사물화
소련과 마르크스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피하려면, 먼저 마르크스주의가 무엇을 비판하는지부터 다시 봐야 한다. 루카치에게 그것은 국가 형태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사물화 된 구조다. 루카치의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은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현상 자체가 아니다. 루카치의 문제의식은 사물화라는 개념이 자본주의에 깊숙이 파고들어 경제, 법학, 관료제 그리고 인간관계까지 재조직하는 데서 시작한다. 사물화란, 인간이 만든 사회적 관계인 상품과 이와 관련된 법칙이 바깥의 사물적 법칙처럼 굳어져 인간을 지배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시장에서 팔리는 상품은 본래 상품을 만든 인간으로 드러나야 한다. 하지만, 몇 시간짜리 노동의 결과와 같이 인간적 관계와 생산과정이 지워지고 추상적 교환의 대상으로만 파악된다. 이는 상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했을 수 있는 착취 등을 은폐한다. 또한, 인간이 상품에서 사상되면서 경제가 자본가 노동자 같은 인간과의 관계가 아니라 수요와 공급, 이자율 같이 상품 관련 법칙으로 설명된다는 것이다.
사물화는 상품에 대한 교환가치가 사용가치를 대체하면서 시작된다. 교환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기 전에 상품은 사용을 위해 생산되었다. 사용가치에서는 상품을 만드는 인간의 특색이 살아있었다. 삽을 만들어준 옆집 아저씨, 계란을 삶아준 옆집 임신한 아줌마 등 이런 인간적 특색은 소비에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생산력이 증가되면서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생산되기 시작했고 이는 시장을 만들었다. 상품의 교환구조 속에서 교환을 위해 공통의 기준이 필요했다. 그리고 인간과 인간적 관계가 사상된 노동은 상품에 대한 평가는 “누가 만들었는가?” 가 아니라, “누가 만들었는가? 어떤 관계에서 만들었는가?”는 지워지고 추상적으로 비교 가능한 노동의 양으로 환원된다. 루카치는
“사물화로 인하여 인간 특유의 활동, 인간 특유의 노동이 객관적인 어떤 것, 인간으로부터 독립되어 인간에 낯선 자기 법칙성을 통해서 인간을 지배하는 어떤 것으로서 인간에 대립되어 다가온다.”라고 설명했다.
교환가치가 사용가치를 대체하면서 2가지 현상이 발생한다. 첫째, 상품의 교환은 시장 참여자들에게 기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음을 알려준다.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거나 충족시켜 주는 시장 참여자는 사회적인 명성을 얻을 뿐만 아니라 경쟁에서도 승리한다. 따라서, 다양한 욕구의 충족은 사람들이 교환가치를 위해 생산의 효율을 추구하게 만든다. 둘째, 생산 효율의 추구를 위해 생산은 유기체적 생산을 분업이 대체하게 한다. 이는 노동자들이 삶을 유지하기 위해 시장에 팔아야 할 상품을 생산해야 함을 말한다.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노동자는 완제품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데 이는 노동자들이 자신을 사물로 여기는 사물화로 이어진다.
루카치의 사물화는 개인의 심리적 현상에 국한되지 않는다. 루카치가 보는 자본주의와 사물화의 문제점은 사회 전반에 스며들어 개인의 자유를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빼앗는 데 있다. 노동력을 시장에 팔아야 하는 노동자의 사정에서 시작된 인간의 사물화는 분업이 고도화될수록 더욱 심해진다. 자본주의 생산은 분업과 규율을 통해 효율을 끌어올린다. 분업은 생산과정에서 노동자의 개별적 특징을 지워버리고 하나의 기계 부품으로 만든다. 분업에 사용되는 노동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각 노동이 시간 단위로 환산한다. 그리고 노동자는 표준화된 시간 단위로 측정된 시간표에 맞춰 배치된다. 루카치는 마르크스의
“시간과 공간이 하나의 공통분모로 환원되고 시간이 공간의 수준으로 평준화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이를 설명한다. 노동시간 양적으로 환원되면서 질적 차이는 지워진다. 이런 사물화는 생산과정 전체에 적용되고 이는 인간은 생산과정에서 소외당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자본주의에 저항하고 새로운 경제체제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외부의 강제성에 대한 저항이 인간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에서 자본의 가치 증식은 구조적으로 강제된다. 그래서 인간은 자본에 종속된다. 자본가들은 생산 수단을 소유하기 위해 자본을 사용한다. 생산 수단은 시간이 갈수록 가치를 잃어버리는 특징을 가진다. 기계는 계속해서 노후화되고 토지도 사용하지 않으면 생산성을 잃는다. 따라서, 생산 수단에 사용된 자본은 생산 수단을 사용해야만 한다. 뿐만 아니라, 분업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생산성을 잃어버린 자본은 큰 자본에 흡수되기에 이에 저항하기 위해 경쟁한다. 효율적 자본은 비효율적 자본을 흡수한다. 위에 언급한 대로 인간은 생존을 위해 시장에 의지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사물화에 저항하는 노동자를 배제하기에 노동자 스스로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사물화 과정에 편입하게 만든다.
개인의 심리적 현상이 자본주의의 추동력이었다면 자본주의는 과거의 억압과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와 같은 혹은 자본주의 보다 비인간적이었던 과거 농노제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자본과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와 법까지 재편한다. 자본주의의 무서움은 강제성 보다 자유로움에 있다. 중세 시대에 종교와 군주로부터의 억압에 고통받던 노동자들은 자유롭게 결정을 내리고 노동력을 판매할 수 있다는 자유로운 노동자라는 개념에 매료되었다. 어떤 착취를 당하더라도 과거보다는 낫다는 자본주의의 양적 비교를 통한 고통의 추상화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무기이다.
사물화는 법과 관료제도 장악한다. 법은 과거의 법관의 양심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법을 어디에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리고 법이 상법, 형법 등으로 나뉘면서 분업을 통해 효율성을 추구한다. 하지만, 사물의 법칙이 자연법으로 인간을 지배하는 것처럼 법에서도 자연법의 개념이 대두한다. 자본주의의 법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데, 이는 자연스럽고 보편적 질서처럼 보인다. 은폐는 법의 생성이 이데올로기의 이득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극단적 재산법은 인클로저(Enclosure) 운동에서 보이듯이 자본가를 보호하고 사회 최약층을 도시 노동자로 내몰았다. 영국의 구민법은 억압적 노동에 저항하는 노숙자들을 처벌하고 노동자로 만들었다. 관료제 또한 마찬가지다. 관료제는 부분으로 나뉘고 국가라는 공통의 목표를 위해서 각자가 가장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한다. 이는 사물화로부터 고통받는 노동자를 구제해야 할 국가 또한 사물화 되어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예시다.
(3) 부르주아 세계관의 이율배반
(3-1) 인식원리의 이율배반
루카치는 경제결정론, 자연과학적 법칙 그리고 기계적 인과론으로 마르크스주의를 환원하려 했던 통속적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했다. 루카치는 경제 문제를 깊이 다룬 사상가였다. 하지만, 단순히 경제 문제에만 머무르지 않고 철학과 인식의 변화가 세계를 바꾸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루카치는 마르크스를 헤겔의 변증법과 총체성(현상을 분절로서가 아니라 전체로서 파악하려는 철학)으로 읽는다면 마르크스를 경제결정론적 독해로부터 해방하고, 변증법과 총체성의 사상가로 복원하려 했다.
루카치에게 칸트로부터 시작된 합리주의 철학의 이율배반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했다. 왜냐하면, 철학은 인간을 사물화로부터 구하고 자유를 돌려줘야 할 의무가 있지만, 오히려 사물화를 공고히 하는데 앞장서왔기 때문이다. 종교와 군주의 억압 속에 인간은 스스로의 자신감을 잃어왔기에 인간을 깨울 인간중심적 철학이 필요했기 때문에 합리주의 세계관은 시대의 요구에 의해 탄생했다. 인간 경험 이전에 진리를 알 수 있다는 대륙의 합리론과 모든 인식은 경험으로 시작된다는 영국의 경험론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인간의 주체성을 회복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둘은 각각의 문제를 안고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칸트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는 방법을 전면에 내세웠다.
칸트는 외부로부터 주어진 감각적 자료를 감성이 시간과 공간의 형식으로 받고 오성이 12개의 범주로 파악한다고 했다. 인간에게 감각적 자료를 주는 것은 물 자체(thing-in-itself)로 우리가 알 수 없고 다만 우리가 산출한 표상만이 우리 인식의 대상이 된다. 루카치는
“근대 합리주의에서 새로움이란 그것이 (발전하는 과정 중에서 점차 도를 더해가는 형세이지만) 자연과 사회의 품 안에서 인간이 삶을 영위하면서 대면하게 되는 현상들 전체의 연관 원리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면서 출현했다는 점이다.”라는 말로 이를 설명했다. 칸트에게 새로움은 생성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을 인간의 형식으로 파악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능력은 유한하기 때문에 합리주의가 존재의 인식을 위한 보편적인 방법임을 내세울 경우에 유한한 인간의 능력에 포섭되지 못하는 비합리적 영역의 문제가 발생한다. 칸트는 이를 물 자체(thing-in-itself)로 표현했고, 순수이성비판에서 물 자체(thing-in-itself)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인간의 월권이라는 말로 한계를 설정했다.
합리주의는 한계를 설정하고 대신에 해결가능한 부분에서 확실성에 더욱 집착했다. 따라서, 합리주의는 계산가능하고 합리적으로 도출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다. 합리주의자들이 기하학이나 수학적 방법에 기댄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율배반이 발생한다. 합리주의는 인간의 자유를 고수했지만, 인간의 자유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세계에서만 가능하지만, 인과율이라는 자연법칙을 따른다. 근대인은 중세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합리적 인간상을 고수했지만, 합리주의가 제2의 자연을 만들어 스스로 억압에 종속된 것이다. 오히려 중세의 억압은 비합리적이라는 면에서 저항의 가능성을 남겨뒀지만, 자연법칙의 인과성이라는 제2의 자연은 합리성 안으로 숨어들었다. 루카치는
“근대사회 상태란 한편으로 인간들이 점점 자연발생적 유대, 비합리적 사실적 유대를 파괴·해체·과거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창출한 현실 속에서 일종의 ‘제2의 자연’을 수립하고 그것의 운행을 이전의 비합리적 자연력이 행사했던 것과 동일한 무자비한 법칙성으로 대면하게 된다는 문제의식”이라는 문장을 통해서 합리주의의 이율배반을 설명했다.
합리주의적 세계관은 경제법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시장 안에서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자율 수요와 공급이라는 제2의 자연의 법칙에 종속되어 있다. 그리고 이를 타개하려는 움직임을 억압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자연법칙을 파괴하는 파괴자로 치부한다.
(3-2) 실천원리와 예술원리의 이율배반
칸트에서 세계는 한편으로 합리적으로 인식되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합리성이 포섭하지 못하는 소여, 즉 비합리적 잔여를 남긴다. 이에 피히테는 행위를 통한 생성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피히테는 세상은 주어진 그대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행동을 통해서 생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행동에 대한 강조는 칸트의 관조적 인식론에 비해 문제에 한 걸음 더 다가갔지만, 그 행위도 여전히 추상적 자아나 형식적 주체성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피히테는 “우리는 바로 이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법칙도 없다는 말을 했다. 이는 개별적 인간의 구체적 존재가 보편적 형식에 의해 완전히 환원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피히테는 보편적 법칙을 고수했고 피히테의 행동은 항상 현실의 특수성과 충돌한다. 따라서, 행동을 통한 생성이라는 접근이 합리주의의 이율배반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형식 개념이 모든 내용을 제거한 순수 형식으로 제시되어서는 안 된다.
행동이란, 실제 세상에서 일어나는 자아의 움직임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자아들은 모두 다른 내용을 가지고 있다. 행동이 진정한 생성 원리가 되려면, 그것은 순수한 형식이 아니라 구체적 내용과 역사적 매개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합리주의적 형식이 유지되는 한, 행동은 현실의 구체성을 담지 못한다. 관조적 인식론이 설정한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행동을 선택한 실천원리는 오히려 더 한 이율배반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합리주의적 형식은 형식의 순수성을 요구하지만, 자아가 행동하는 순간 순수성은 사라지고 특수성이 남기 때문이다. 순수한 형식이 현실의 괴리를 만나는 순간 좌초되고 만다.
합리주의자들은 예술에서 스스로의 이율배반을 해결할 열쇠를 찾으려고 했다. 현실세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합리성과 비합리성의 종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쉴러는 인간은 감각충동과 형식충동을 가지는데 이 둘의 조화가 예술에서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칸트 또한 판단력 비판에서 미와 예술에 큰 의의를 부여했다. 합리주의적 세계는 합리성과 비합리성을 둘로 나누어 놓고 파편화된 세상에서 진리를 찾으려 했지만, 여전히 총체성에 대한 갈망이 존재했다. 왜냐하면 둘로 갈라진 세계는 이율배반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술 안에서 작가는 합리주의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총체적 세계를 미적으로 제시할 수 있었고 이것이 합리주의자들에게 이상향으로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예술관은 문제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예술은 분열된 현실을 상상적으로 봉합하는 기능을 가질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글턴의 이데올로기 비판이 중요해진다. 특히 테리 이글턴은 소설이론입문에서 낭만주의나 T.S. 엘리엇은 현실의 고통을 상상과 상징의 언어로 바꾸고 이를 해결하려는 정치의 칼날을 무디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처럼 현실에서 해결되지 못한 총체성의 요구를 예술로 옮겨간 시도 역시 또 다른 이율배반에 빠진다.
(4) 모순의 변증법적 극복: 역사적 생성의 입장
루카치는 합리주의 철학이 남긴 주체와 객체, 사유와 존재의 대립을 해결할 길이 역사에 있다고 보았다. 루카치는
“진리가 단순히 실체로서만이 아니라 또한 주체로서도 파악될 때, 주체가 동시에 변증법적 과정의 산출자이자 그 소산이 될 때, 따라서 주체 자신에 의해 창조된 세계 속에서 이 세계의 의식적 형태로서 주체가 운동하면서 동시에 이 세계가 주체에게 완전한 객관성으로 다가올 때, 오직 이러한 경우에만 변증법의 문제가 그리고 이와 함께 주체와 객체, 사유와 존재, 자유와 필연 등등의 대립의 지양이 해소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루카치는 역사는 단순한 직선적 진보가 아니라, 주체가 세계를 형성하면서 동시에 그 세계의 산물이 되기도 하는 변증법적 과정으로 파악한다. 역사는 단순 직선적 움직임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주체와 객체가 매개를 통해서 새로운 진리를 생성해 나가는 움직임인 것이다. 과거가 단순히 현재를 포섭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변증법적인 움직임을 통해 서로 영향을 미친다.
직접적으로 주어진 진리는 없다. 진리는 언제나 역사적 사회적 매개를 통해 파악된다. 매개란 어떤 것이 자연적이고 직접적으로 주어진 것처럼 보일 때, 그것이 실제로는 역사적 관계와 사회적 과정 속에서 형성된 것임을 드러내는 운동이다. 부르주아 경제학에서 주장하는 수요와 공급, 이자율처럼 자연법에 기반한 직접적 진리가 아니라, 역사의 움직임을 통해 우리가 생성한 요소인 것이다. 변증법에게 특수성은 체계를 흐트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체계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역사가 절대정신의 자기 전개의 결과라고 이야기했다. 루카치는 헤겔의 변증법적 방법에는 큰 빚을 지고 있지만, 역사 운동의 주체를 세계정신과 같은 형이상학적 방식으로 설명하는 점을 비판한다. 왜냐하면 헤겔의 절대정신은 첫째, 특정 계급이 역사를 바꾸는 주된 매개가 되는 것이 우연적 사실이 되고 둘째, 역사적 행위가 행동하는 주체를 넘어서는 추상적 운동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합리주의 주관적 자유를 포섭하는 객관적 체계라는 이율배반에 빠진다. 루카치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리 잡은 계급적 성격에 의해 필연적으로 역사 생성의 주역이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이 지점에서 루카치를 비판하겠다. 루카치는 헤겔의 절대정신이 형이상학적 신화론이 되어 변증법의 주체를 설정하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프롤레타리아트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면서 변증법을 닫힌 체계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후에 프롤레타리아트의 입장에서 다시 논의하도록 하겠다.
(5)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 그리고 그 한계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은 사물화가 자본주의 전반에 스며들어 있음을 보여주며,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이 이를 극복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탁월하게 묘사한다. 또한, 헤겔의 변증법을 마르크스 읽기에 다시 도입하면서 교조주의로 빠져든 당시 마르크스주의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그의 견해는 몇 가지 면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5-1) 계급의식과 프롤레타리아트
루카치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사물화를 객체화된 위치에서 경험하고 생산과정 속에서 자본주의의 총체성을 인식할 가능성을 가지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사물화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급의식을 가진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는 마르크스와 같이 자본주의의 계급을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트로 이원화한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변화를 이끄는 주체라는 개념을 통해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을 개선하려는 것이 루카치의 목표라면 그의 접근법은 타당하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사물화를 극복하고 새로운 체계에 대한 갈망이라는 측면에서 루카치의 접근법은 한계를 가진다.
첫째, 루카치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의 객체화를 자신의 삶에서 직접 경험하기 때문에, 부르주아보다 자본주의 총체성을 인식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하지만 나는 이 설명이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실제 경험을 지나치게 이분화한다고 본다. 루카치의 계급의 이원화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 내에서 주체성을 회복했다는 환상을 가질 틈을 제공한다. 우리 사회는 부르주아가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배하는 자본주의로 묘사하기에는 매우 복잡하다. 자본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가부장제 그리고 소비생활을 통해서 순간이지만 능동적이고 우월한 주체성을 경험한다. 힘들게 일하고 들어온 남편과 아빠는 가정 내에서 지위를 회복한다. 노동자들은 백화점, 잡화점 등에서 계급적 위치는 유지한 채, 일상적 우월감과 소비자 주권의 감각을 통해 자신을 지배적 주체처럼 경험한다. 이는 루카치의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식에 중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일순간이지만, 이들이 느끼는 주체의 의식은 자본주의 사물화를 벗어나기는커녕, 이 안에서 부르주아로 이동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또한 수정자본주의로 설명되는 현대 자본주의는 계급의식의 획득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의 객체적 위치는 계급의식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은 아니다. 오히려 루카치가 여성,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의 억압받는 다른 계급들을 포섭할 수 있다면 억압받는 계급 간의 연대가 더욱 수월했을 것이다. 여성, 이주노동자, 장애인처럼 다층적 객체화를 경험하는 집단은 루카치의 ‘객체화된 위치에서 총체성을 인식할 가능성’이라는 논리를 확장하는 데 중요한 사례가 될 수 있다. 다만 루카치는 이 가능성을 프롤레타리아트에 지나치게 집중시킴으로써, 다른 억압 형식들과의 연대 가능성을 충분히 사유하지 못했다.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와 빠르게 결합하고 있는 지금 이들을 포섭하는 것은 중요할 것이다.
둘째, 루카치의 계급 이원화에 대한 집착은 자본주의 이후의 세상에 대한 상상력의 부재를 보여준다. 루카치는 헤겔의 변증법을 통해 교조화된 마르크스주의를 극복하고자 했지만 루카치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 대한 상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물론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은 자본주의와 프롤레타리아트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전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혁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에 대한 설명의 부재는 이후의 세상의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를 차단한다. 헤겔의 변증법은 루카치의 오해와는 다르게 역사의 종말로 이어지지 않는다. 슬로보예 지젝이 헤겔이 변증법은 계속된 부정의 철학이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헤겔에게 있어 절대정신의 변화를 위한 변증법적 형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개혁이 성공한 뒤의 세상 또한 변혁의 형식에 속해야 함을 말한다. 만약, 루카치가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는 변화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가 제2의 자연을 만들었던 합리주의 세계관으로의 복귀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루카치의 경직된 계급의 이원화는 극복되어야지 고착되어서는 안 된다.
셋째, 루카치는 부르주아의 계급의식은 자본주의에 순응할 것이라고 하지만, 부르주아 역시 프롤레타리아트와 비슷한 객체의 구조를 가진다. 부르주아는 자신을 자유로운 자본가로 이해하지만, 실제로는 수요와 공급, 이자율, 공황과 같은 자본주의의 제2의 자연에 종속된 객체적 위치에 놓여 있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부르주아 내에서도 객체적 상황에 내몰리는 부르주아가 존재한다. 따라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차이점은 한쪽은 주체이고 다른 쪽은 객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둘의 연대 가능성을 멀어지게 하는 이원화된 계급의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계급투쟁에서 배제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연합 가능성을 축소시키고 평화로운 체제 변화의 가능성도 떨어뜨린다. 또한, 헤겔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실체를 외화하고 외화 된 실체는 규범화되고 서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이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연대된 변화의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5-2) 중앙집권적 프롤레타리아트 의식 개혁
스탈린과 마오쩌둥은 혁명을 통한 프롤레타리아트 정부의 형성과 독재적 통치방식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종말에 불을 집혔다. 하이에크는 노예의 길에서 공산주의와 독재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마르크스주의를 더 깊은 나락으로 빠뜨렸다. 스탈린과 마오쩌둥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의 개선이 스스로 일어날 수 없기에 당 중심적 접근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들의 사상은 독재로 이어진 것이다.
루카치는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에 반대했지만, 역사와 계급의식은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의견을 따르는 것 같아 보인다. 루카치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트가 가지는 왜곡된 의식에 대한 설명은 상세히 하고 있지만, 프롤레타리아트가 어떻게 왜곡된 의식을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충분치 않다. 루카치가 이야기하는 계급의식이란 자본주의 사회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 의식이다. 하지만, 루카치는 사물화가 자본주의에 깊숙이 스며들어있음을 강조하기에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자적 움직임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이런 구조는 강한 힘과 의지를 가진 누군가가 외부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을 깨워줘야 변화할 수 있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새로운 의식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부르주아의 의식이 사물화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폭력적 방법이 아니고서 어떻게 부르주아가 특권을 포기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러한 이론적 공백은 현실 정치에서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방식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해석될 위험이 있다. 실제로, 이후 칼 포퍼는 점진적 개혁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것이 급진적 개혁을 통한 방식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불확실성에 대해 불안감이 있다. 이는 본능으로 인류가 살아남고 발전한 원동력이다. 지금의 자본주의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예전보다는 더 나은 삶의 질을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은 과거 공산주의 공포를 불러일으킬 뿐, 다른 대안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계급의식을 일깨우는 데에 어떤 도움이 될지는 확실치 않다.
(5-3) 헤겔
나는 루카치가 가지는 헤겔 철학에 대한 오해가 위의 문제들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루카치는 헤겔 역사의식의 천재성은 인정하지만, 인간을 주체로 설정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또한, 헤겔의 절대정신은 정신이 실현되고 나서의 역사가 끊기는 역사의 종말로 이어진다고 했다. 나는 이러한 독해가 헤겔을 지나치게 닫힌 체계로 읽는 해석이라고 본다.
첫째, 헤겔에게 있어 절대정신은 형이상학적인 보이지 않는 실재가 아니다. 내가 보기에 헤겔의 절대정신은 형이상학적 실체라기보다는, 사회의 모든 계급의 매개를 통해 형성된 규범이다. 헤겔은 인간이 스스로 만든 실재에 오히려 통제당하는 소외의 극복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참여해서 바꿀 수 있는 규범의 형성이 소외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루카치가 생각하는 거처럼 절대정신이 행동하는 사람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벗어날 수 없는 규범 위에 새로운 규범을 쌓아 올리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헤겔이 매개하는 자를 설정하지 않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 헤겔이 이야기하는 매개를 통해 변화와 생성은 사회의 모든 계급을 포함한다. 왜냐하면 규범은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특정 계급만이 주체가 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계급이 주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내가 다른 계급이라고 하더라도 지금의 규범을 형성하고 바꿀 수 있는 생각을 공유하면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부르주아는 부르주아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규범에 영향을 받고 영향을 주면서 프롤레타리아트와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는 것이다. 인간은 다른 인간의 고통에 반응한다. 오히려 계급의 차등화를 통해 공통된 규범의 생산자라는 생각을 없애는 것은 두 계급이 교류할 수 있는 규범의 장을 닫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 이주노동자 등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루카치는 프롤레타리아트에 특권 계급을 부여하면서 변증법의 체계를 닫아 버리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둘째, 루카치가 비난하는 헤겔의 역사의 종말은 루카치에게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프롤레타리아트 이후의 세계에 대한 상상의 부재는 역사와 계급의식의 특징이다. 하지만, 헤겔이 내용의 종말은 이야기하지만, 변증법이라는 형식의 지속성에 따라 이야기하는 것처럼 헤겔의 역사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헤겔이 종말 시키고자 하는 내용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변증법에 참여하지 못하고 이데올로기에 이끌려가는 것이다. 헤겔은 칸트와 피히테의 합리주의 세계관에서 이를 보았고 “진리는 주체이자 객체”라는 선언을 통해 이를 해결하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루카치는 헤겔을 오해하고 형식의 종말을 그리고 내용의 지속성으로 돌아간다. 이는 합리주의적 세계관으로 귀환이 아닌가?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를 역사의 영웅으로 삼는 것은 루카치만의 신화인 것이다.
헤겔로 마르크스를 다시 읽고자 했던 루카치는 헤겔에 대한 오해로 인해 마르크스를 오해하는 실수를 범했다. 하지만, 루카치의 사물화에 대한 통찰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의 역할은 루카치의 사물화를 형식의 지속성과 내용의 종말을 통해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6) 결론
소비에트 유니온의 멸망과 중국의 문호 개방 이후 약화된 마르크스주의를 다시 사유하는 것은 가능한가? 이에 대한 대답을 찾았던 루카치는 사물화와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식을 해답으로 찾았다. 그에게 있어 자본주의는 반자유였고 프롤레타리아트는 희망이었다. 그리고 헤겔의 변증법을 다시 끌어들이면서 고착된 마르크스주의를 극복하려고 했다. 자본주의에 스며든 사물화는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점에서 소비에트 유니온의 멸망이 마르크스주의의 멸망과 동일시되지 않는다는 것을 루카치는 보여주었다. 특히 상품사회가 더욱 고도화된 지금 우리가 마르크스를 다시 읽어야 할 필요성을 상기시켜 준다.
하지만, 루카치의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라는 계급의 이원화는 역사와 계급의식을 절반의 해결책으로 만들었다. 헤겔과 마르크스에 충실하고 사회변혁의 힘으로서 마르크스주의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억압받는 모든 계층에서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다. 특히 부르주아 역시 자본주의의 객체화 속에 놓인 존재로 다시 사유하고, 억압받는 다양한 계층과의 연대 가능성을 함께 모색할 때, 루카치의 사물화 비판은 고정된 사회적 대상성을 넘어서는 방향으로 더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