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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시선에서 본 인간: 코스모스가 전하는 삶의 태도

코스모스 by 칼세이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책 중 하나인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우주와 우주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주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리고 우주가 지구 특히 우리 지구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하지만 “『코스모스』는 단순한 과학 책이 아니다. 우주를 통해 인간과 문명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하는, 과학과 철학의 융합 서다.”


코스모스는 크게 다음의 3가지를 이야기한다.

첫째, 코스모스는 지구와 지구인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우주의 변방에 있는 작은 티끌에 불과하다는 것을 일께워준다. 우주는 매우 오래전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했고 그 후 영겁의 시간에 걸친 진화 끝에 지금의 우리 인류가 되었다. 지식을 가진 특별한 존재처럼 보이지만, 우주의 시점에서 인류는 티끌일 뿐이며,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 단지 지구에서 먹이 사슬의 최상위 층에 위치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마음대로 지구를 훼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지구에 존재하는 다른 생물체를 멸종시키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우리 인류가 힘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음대로 행동한다면 다른 태양계에 존재하는 지식을 가진 존재가 있다면 우리도 똑같은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겸손의 자세를 가지고 우리 지구 안에 존재하는 다른 생명체를 존중하고 지구를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둘째, 코스모스는 우리 인류가 지식과 과학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책이다. 코스모스는 우리 인류가 어떻게 과학의 발전을 가져왔는지에 대해 설명해 준다. 코스모스가 이야기하는 인류의 올바른 자세는 바로 “용기”와 “관용” 그리고 객관성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말을 믿고 바다 너머로 배를 항해해 나아갈 수 있는 용기, 천벌을 받거나 종교적 박해를 받을 수 있지만 코페르니쿠스처럼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할 수 있는 용기처럼 인류는 자기가 모르는 미지의 영역에 발을 내딛고 자기 내면의 믿음에 반하고 사회적인 비판을 받아 들 일 수 있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관용은 사회가 과학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비난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이 틀렸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과학자들의 새로운 의견을 받아 들 일 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물론 관용은 쉽지 않다. 하지만, 관용이 없는 사회는 과학적 발전과 진보에 큰 장애물이 된다. 과학자들이 필요한 것은 누구보다 쉽게 자신의 가설을 이야기하고 검증받을 수 있는 환경이다. 아인슈타인이 빛이 통과하는 엘리베이터를 보고 “빛은 중력에 영향을 받는다”라는 가설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은 관용을 가진 사회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천동설 도전, 케플러의 가설 수정처럼 과학은 용기와 객관성 위에 발전해 왔다. 그리고 사회는 과학을 억압하기보단, 관용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보한다


마지막으로 객관성이다. 사람들은 자기의 가설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설과 다른 객관적 자료를 보면 자기의 가설을 바꾸기보다는 다른 자료를 찾거나 자료의 신뢰성을 의심한다. 하지만 코스모스에 소개된 요하네스 케플러는 다른 선택을 했다. 요하네스 케플러는 천동설을 믿었지만,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로만 설명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를 보고 자신의 생각을 바꾸었다. 그 결과 ‘케플러의 법칙’을 만들어 냈고 이 법칙은 지금도 우주선을 발사하는데 중요한 법칙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과학자들은 환원적인 믿음을 가져야 한다. 아무리 복잡한 사실이라도 간단한 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지금 우리가 발견한 법칙이 우주에 통용될 수 있다는 객관적이고 단순한 믿음이 과학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믿음이 없다면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과 운동의 세 가지 법칙을 생각해 낼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오컴의 면도날 법칙에 따르면 천동설보다는 지동설이 더욱 간단하고 객관적인 설명이 기 때문에 진실에 더욱 가까울 수 있는 것처럼 이러한 태도는 과학 발전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코스모스는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코스모스의 저자인 “칼세이건”은 매우 유명한 과학자 일 뿐만 아니라 매우 유능한 커뮤니케이터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식을 쌓는 데는 적극적이지만 대중과 교류하는 데 있어서는 매우 보수적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대중과 교류해야 할 의무가 있다.


첫째, 대중과 교류할 때만 전문가의 연구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대중에게 자신들의 지식이 의미가 있음을 설득해야 필요한 재정과 지지를 확보할 수 있다. 전문가의 지식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통해서 세상의 변화를 가져올 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둘째, 전문가가 쌓은 지식은 전문가만의 것이 아니다. 전문가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았고 또한 지식습득을 위해 사회 기반시설을 이용했고 자유로운 사회체제의 도움을 받았다. 따라서, 전문가는 자신의 지식을 대중에게 전파할 의무가 있다. “칼 세이건”은 뛰어난 커뮤니케이터로 대중과 적극적으로 교류했고 자신의 지식을 전파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다. 이러한 “칼 세이건”의 능력이 “칼 세이건”을 더욱 뛰어난 과학자로 만들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과학도서이자 삶의 태도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인류가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어떠한 태도가 인류 발전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친절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칼세이건이 살아 있다면 그가 바라보는 이 세계는 어떨까?? 나는 기쁨보다 불안이 앞설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기술 문명은 과학의 혜택을 누리지만, 과학을 잉태한 사유의 태도는 점점 퇴색하고 있다. AI 시대의 교육은 질문하지 않고, 받아쓰기만 하려 하며, 기후위기 앞에서도 단기 이익에 머무른다. 인터넷 세상에서는 관용보다는 비난과 비판이 지배하고 있다. 사실을 기반으로 한 토론 보다 에코 체임버와 확증편향 현상이 토론을 막고 있다. Chatgpt 같은 인공지능의 등장은 흡사 이오니아 시대 이후를 연상시킨다. 연구는 과학자나 철학자의 몫이 아니라 노예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지배계층의 관념은 과학의 쇠퇴를 가져왔듯이 chatgpt에만 의존하는 우리의 학생들은 생각하고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파괴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물질 만능주의는 순수과학이나 우주탐사가 주는 장기적 이득보다는 당장 얻을 수 있는 단기적 이득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지구온난화가 우리 지구에 큰 위협을 줄 수 있지만, 현재의 소비를 유지하려는 경향과 일치한다.



코스모스가 보여주는 인류와 우주의 역사는 매우 광대하고 지금 우리의 삶의 태도에 어떠한 점을 개선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인류는 과거의 인류가 이룩한 발전을 이어받아, 후손들에게 물려줄 의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코스모스는 “칼 세이건”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세대에 주는 큰 선물인 것이다. 『코스모스』는 과학책이 아니라 삶의 책이다. 우주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겸손하고 이성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사명을 깨닫는다. 세이건은 우리 모두가 과거의 유산을 이어받아, 미래 세대에게 지혜와 희망을 물려줄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책임은 지금, 우리 삶의 태도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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