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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정의 사이/ 보편적 기본소득을 둘러싼 찬반 논쟁

by 사회철학에서 묻다

우리는 지금, 단순한 복지 정책의 채택 여부가 아니라 인간의 자유, 자아실현, 그리고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해 묻고 있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단지 ‘돈을 나누는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가치 있는 삶이라 부를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기도 하다. 한편, 현실은 냉정하다. 자원의 제약, 예산의 한계,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은 이 이상적인 제도의 실현 가능성에 끊임없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 글에서는 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한 찬반 입장을 철저하게 분석하며, 각 주장의 이론적 근거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논의를 정리하고자 한다.


보편적 기본소득에 찬성하는 이들은, 이 제도가 개인에게 실질적인 자유를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선택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며, 단순한 소비의 도구를 넘어 개인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저소득층은 물론 중산층에게도 일정한 수준의 현금이 주어질 경우, 생계유지를 넘어 자아실현을 향한 삶을 계획할 수 있게 된다. 한 사람은 노래를 부르고, 다른 사람은 글을 쓰며, 어떤 이는 창업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이렇게 다양화된 삶은 단지 개인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의 창의성을 높이고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와 같은 변화는 인간이 기계로 대체되기 쉬운 AI 시대에 더욱 중요하다. 기술이 일자리를 줄여 나가는 상황에서,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보편적 기본소득은 정치적 불안정성을 줄이고 사회적 갈등을 예방하는 제도적 장치가 될 수 있다.


또한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성숙을 위해서도 보편적 기본소득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사람들은 장기적인 정책보다는 당장의 생존을 보장해 줄 정치인을 선택하게 되며, 이는 종종 민주주의의 합리성과 숙고를 저해하는 결과를 낳는다. 브렉시트나 트럼프의 당선처럼, 단기 이익을 좇은 정치적 선택들이 그 예이다. 기본적인 생존 조건이 충족되어야 시민들이 더 멀리 내다보고 투표할 수 있고, 정치도 성숙해질 수 있다.


반면, 반대 측에서는 보편적 기본소득이 현실적으로 너무 많은 비용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미국에서 모든 국민에게 월 1,000달러를 지급하려면 4조 달러에 달하는 예산이 필요한데, 이는 국가 예산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그 재원은 결국 세금으로 충당될 수밖에 없고, 이는 기업의 투자 위축, 성장 둔화, 글로벌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연구개발, 국방, 공공서비스 등 국가의 필수 기능이 위축될 우려도 있다. 또한, 조건 없이 모든 시민에게 동일한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은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비효율적일 수 있다. 교육, 의료 등 특정한 영역에서의 맞춤형 지원이 더 효과적일 수 있음에도, 일률적인 현금 지급은 오히려 복지의 실효성을 낮출 수 있다. 실제로 브라질의 ‘볼사 파밀리아’처럼 조건부 현금지원이 효과적인 사례도 존재한다. 더욱이 하이퍼볼릭 할인효과처럼 사람들은 장기적인 이득보다는 단기적 쾌락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어, 현금이 제공되더라도 교육이나 건강보다는 술, 담배 등 소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기본소득이 기존 복지 시스템을 대체하게 될 경우, 건강보험 같은 사회안전망이 축소될 수 있다. 위험을 분산하는 국민건강보험이 사라진다면, 민간 보험의 폐해가 본격화될 수 있으며 이는 사회 전체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미국의 민간보험 사례가 그 경고의 예다.


결국 보편적 기본소득은 인간의 자유를 확장하고, 민주주의와 창의성을 촉진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동시에, 그것은 막대한 재정적 부담과 정책적 효율성의 딜레마를 동반한다. 우리는 지금 이 제도를 통해 무엇을 지향하는가?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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