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스페인이었을까?
겨울을 좋아하는 나에게 스페인이라는 나라는 여행 후보에서 늘 제외되는 나라였다. 따뜻한, 열정적인, 사교적인, 붉은색, 어느 것 하나 나와 맞는 키워드는 없었다. 심지어 여행지에서는 만나고 싶지 않은 한국 관광객도 많다는 그곳 스페인.
겨울에 2주라는 시간이 생겼고, '가우디'는 그래도 봐야 하지 않겠어?라는 마음으로 이전에 가보지 않았던, 그다지 끌리지 않는 바르셀로나행 티켓을 끊었다. 심지어 최악의 루트이다. 바르셀로나 IN - 바르셀로나 OUT. 2주간 여행 후에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바르셀로나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 루트.
11월 말, 나는 바르셀로나로 향하는 (지긋지긋한) 열세시간 비행을 시작했다. 눈 앞의 모니터를 이것저것 실없이 눌러보다가 콘서트홀 프로그램 안에 '글래스톤베리 2019'와 '피닉스 콘서트' 공연 두 개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밴드들이다! 기내에서 소소한 페스티벌이 열렸다. 2시간 벌었다!! (짝짝짝!)
바르셀로나 엘프라트 공항에 도착. 서울보다 따뜻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이런! 예상보다 더 따뜻하다. 칭칭 감은 머플러에 식은땀을 흘리며 도심으로 향하는 공항 순환버스에 올라탔다. 시내버스로 갈아타려는데, 토요일 저녁 시간이라 이곳도 서울처럼 만원 버스였다. 캐리어를 밀어 넣고 타는 것은 불가능해 보여 그냥 구글맵을 켜고 숙소까지 걷기로 한다. 이 선택은 괜찮았던 듯! 숙소로 가는 길이 꽤 아기자기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즌이라서인지 도로 위에는 장식들이 가득했다. 13시간을 날아왔는데 왠지 모를 서울 같은 밀도와 흥겨운 분위기! 이질감 없는 이 상황에 안도하게 되었다.
혼자서 멀리 떠나는 건 오랜만이었다. 이번 여행에는 휴가가 끝나고 나서 내 손에 무언가 만져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숙소에서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겠다고 아이패드에 비싼 키보드까지 들고 왔으나 결론적으로 대실패였다. 여행 감성으로 와다다다 키보드를 두들길 줄 알았지만, 여행 내내 나는 오늘 저녁은 뭐 먹지? 목적지까지 어떻게 가야 하지? 가족 선물은 뭘 사가야 할까? 결국 결과물이고 뭐고 나는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여행은 늘 우리를 아무 생각이 없게 만들기 때문에.
아직 바르셀로나의 첫날밤, 짐은 제대로 도착했고 예약한 아파트의 호스트가 반겨주었다. 이 도시 왠지 모르게 와본 곳 같다. 시작, 나쁘지 않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