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셔틀의 삶.
여름밤, 동네 마실 겸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천천히 동네를 달리는데 구석에 무언가 꿈틀거림이 느껴졌다. 바로 노란색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뜯던 고양이. 아주 마른 고양이였다. 그냥 좀 안돼 보여 편의점에서 간식과 물을 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해는 여름에 동남아처럼 비가 쏟아지던 시기였는데, 그날 밤도 여름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이상하게도 그날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처음으로 길 위의 생명들은 무얼 먹고사는 걸까 궁금해지던 밤이다.
'끼니는 무엇으로 해결할까? 이 비를 피할 곳은 있을까?'
이상했다. 30년이 넘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동차 밑에 정말 많은 고양이들이 살고 있었다. 그저 내가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심에서 과연 길냥이들은 끼니, 잠, 화장실 등의 기본적인 것들을 어디서 해결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종착역이 없는 기차를 타고야 말았다.
길냥이를 돌보는 것은 종착역이 없는 기차를 타는 것과 같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 말이 200% 맞는 말이다. 한 마리를 챙기다 보면 점점 챙기는 고양이가 늘어날 수밖에 없고, 이사를 가는 것도 쉽지 않고, 고양이에 대한 공부나 법규정에 대한 공부도 해야 하며, 육체적으로도 꽤 힘든 일이다. 모두가 자는 시간, 모두가 기피하는 어두침침하고 습한 공간에 그렇게 숨죽이며 버티고 있는 길냥이의 모습을 확인하고 이 것을 모르던 때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우리나라의 길냥이들은 도대체 왜 늘 꽁꽁 숨고 경계를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까?
혐오와 편견이 쏘아 올린 작은 공
밥셔틀 하는 분들 중에 종종 경고문을 받는다는 것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나도 무서운 경고문을 받았다. 정말 험악한 말들이 쓰여있는 경고문이었다. 분노와 두려움의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나에게 이득이 1도 없는 밥셔틀 노릇이, 누군가에게 혐오발언을 들을만한 일인가. 정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끓었지만, 내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밥자리를 옮기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혼자 밥셔틀을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변화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디자인을 하며 사고 싶은 에코백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고 있는 나는, 나만의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퇴근 후에 밥셔틀 + 끄적거림을 시작했다. 드로잉이던, 소소한 글이던 조금씩 천천히 남기려고 한다. 고양이가 불쌍해요~ 도와주세요~라는 방식보다는, “응당 우리 주변에 있는 고양이예요. 우리 함께 살아요.”라는 나의 외침이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뒷골목 이야기)
결혼을 앞둔 친구가 남편 될 사람을 소개해줬는데, 아니! 고양이를 혐오하는 분이었다. 나에게 그럴 자격은 없지만 이 결혼을 매우 반대했다. (이 결혼 반댈세!!) 그리고 몇 년이 흐르고 난 열심히 고양이 홍보대사 역할을 했고, 이제는 그 오라버니가 나에게 고양이 굿즈를 선물해주는 사람이 되었다.(뿌듯)
그래, 사람은 변하는 거야.
그냥 잘 몰랐던 것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