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려는 지속적인 성장통
내 사춘기는 취업한 후에 찾아왔다.
본격적인 직장생활을 24살부터 했으니, 24~25살쯤 사춘기를 겪은 것 같다.
교과서적으로 사춘기란
중,고등학교때 나타나는 현상이라
내가 느낀 혼란이 과연 사춘기인지 반문하겠지만,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다는 것은
한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로 성장해가면서 겪는
신체적, 감정적 변화 아니겠는가?
내 24살쯤에 찾아온 사춘기라는 것은
생각의 성장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 이론에 적용해 보면
그 24살이라는 나이에 마지막 성장을 이루고 싶었던 것 같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이 직업이 정말 내가 원했던 것인지,
이런 삶을 살고 싶었던 것인지, 곰곰히 생각되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노래도 흥얼거릴 수 있을 정도로
시작은 경미한 성장통이었다.
(그 당시엔 '통'증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 이론에서 제시한
최종 목표가 괜히 자아실현일까.
꿈을 찾는다는 것, 이룬다는 것은 멀고도 험했다.
(특히, 현실을 마주한 후에야 내 속의 진실을 만난다는 것은 어렵고도 위험한 일이었다.)
여러 번의 이직이 있었다.
나에게 이직이란
하고 싶은게 뭔지, 좋아하는 게 뭔지,
몸으로 부딪히며 깨달아가는 과정이었다.
좁지만 다양한 직장 속에서 애달프고 고달픈 경험들을 쌓았다. 평탄치 않은 길을 부딪혀가며 목표에 도달해 갔다.
나이 서른에 다시 사춘기가 찾아왔다.
다시?
아니, 어쩌면 끝난 줄 알았던 것이
실은 -ing 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요즘들어 감정의 폭이 점점 넓어지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좋았다가도- 슬퍼진다.
무엇보다도 심통 부릴 일이 많아졌다.
일종의 반항심이다.
나는 끝내 이루지 못할 것 같은 일들을
척척 해낸 이들, 곧 해낼 이들을 보면서
-부럽다, 나도 결국 할 수 있을까
-난 못할 것 같아
-내가 못난 데가 있나, 로 이어지는
자격지심 쓰리 콤보 덕분에
비교적 평온했던 마음에 심술보라는 것이 덕지덕지 붙었다.
툭 튀어나오려는 못난 감정들을 주체하기 어렵다.
내가 내게 적응이 되지 않는 시기다.
투병생활이 길어지면 사람은 의욕을 잃는다.
혹시나 내 성장통이 너무 길어져 지친 것은 아닐까.
벗어나고 싶지만 도망쳐지지 않는 고통이
아픔을 이겨낸 자들에 대한 질투를 불러낸걸까.
깊어지는 우울감이 사춘기의 마지막 단계이기를
이 기간도 잘 넘겨 의연한 사람이 되기를
바래볼 뿐이다.
시간이 약이라고 오랜 시간 이어진 민간요법이 있으니 믿어보는 수 밖에.
미련한 성격 탓에
마냥 시간만 흘러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늦깍이의 사춘기를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너를 통해 좋은 사람이 되기를 노력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