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처음으로 돌아가자

마음의 균형 잡기

by DK

사고 급전


상대에게 화가 나면 마음은 순식간에 분노로 가득 찬다. 그 순간부터 상대의 나쁜 점만 보인다. 부모도 화가 나면, 실제 아이가 아닌 자신의 분노가 덧씌워진 아이를 보게 된다. 분노는 시야를 좁히고 마음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그 결과, 부모의 마음속에서 어느새 아이는 '문제아'가 된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 아론 벡(Aaron Beck)은 분노를 다루는 방법으로 '생각의 전환'을 제시했다. 화가 치밀 때, 의도적으로 상대와의 긍정적인 경험을 떠올려 보라는 것이다. 나는 이 방법을 '사고 급전'이라고 부른다. 길을 잘못 들어섰음을 깨닫는 순간, 발걸음을 반대로 휙 돌리듯 생각의 방향을 바꿔버리는 것이다. 이는 부모의 인격 수양을 도울 고상한 기술은 아니다. 아이에게 상처를 덜 주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말 잘 듣던 내 아이 = 말 안 듣는 내 아이


아이에게 화를 내다보면, 때로 이런 과장된 말이 튀어나온다. "너는 어째 단 한 번도 내 말을 안 듣냐?" "너는 왜 맨날 이러냐?" 사실, 부모의 이런 말속에는 화내는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심리가 숨어 있을 수 있다. 아이가 맨날 말 안 듣는 아이여야만 이렇게까지 화내는 자신을 납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가 아이에게 이런 말을 반복하면 아이는 '나는 말 안 듣는 아이'라는 정체성을 굳히기 시작한다. 그렇게 아이는 정말로 말 안 듣는 아이가 되어 간다. 제어하지 않은 채 쏟아낸 부모의 말이 점점 현실이 된다.

'단 한 번도 말을 안 듣는 아이'라는 말이 사실이 아님은 부모 자신도 잘 안다. 지금 눈앞에서 대드는 이 아이도, 분명 말을 잘 들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말을 잘 듣던 어제의 아이와 말을 안 듣는 오늘의 아이는 다른 아이가 아니다. 같은 아이다. 달라진 건 아이가 아니라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다.

그래서 아이가 말을 안 들을수록, 이렇게 말해주면 좋다. "어제 네가 장난감 정리해서 집도 깨끗해지고 나도 마음이 상쾌해졌어. 그래서 정말 고마웠어. 오늘도 잘해보자." 이런 말은 아이를 설득하는 말이다. 동시에 아이를 '말 안 듣는 아이'로 규정하는 부모의 입을 잠시 멈춰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초심


무슨 일이든 초심이 중요하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의 감격, 아이를 처음 품에 안았을 때의 따스함이 부모의 초심일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초심은 대부분 흐르는 시간과 현실 앞에 속절없이 희미해진다.

유치원에 가야 하는데 꾸물거리는 아이, 이를 닦아야 하는데 과자를 먹겠다고 우기는 아이, 숙제해야 하는데 스마트폰만 붙들고 있는 아이 앞에서 초심은 감상적인 이야기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 소중한 이 아이를 더 마음껏 사랑하기 위해, 또 아이를 함부로 대하지 않기 위함이다.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을 나는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이른 새벽, 아내는 수술실에 들어갔고 나는 대기실을 서성였다. "아기 건강하게 태어났어요."라는 간호사의 말에 감격이라는 말로 형언 못 할 벅찬 감정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생후 30분쯤의 아이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응애~"하고 울던 가녀린 소리는 여전히 마음을 따스하게 한다. 나는 잊을만하면 그 영상을 본다. 특히 내가 아이에게 거칠게 말하거나 행동할 기미를 느낄 때, 그 장면을 떠올리려 애쓴다.


꼭 출산의 순간만은 아니다. 퇴근한 나에게 "아빠~~~~!" 하고 달려와 안기던 아이, 공을 주고받으며 숨차도록 뛰놀던 아이, 갯벌에 쪼그려 앉아 조개를 줍던 아이, 흩날리는 벚꽃 아래 환히 웃던 아이. 이 기억 자체가 화를 사라지게 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 말과 행동이 이 예쁜 아이에게 어떤 흔적을 남길지를 생각하게 해 준다. 그리고 잠시 멈추게 해 준다.


그때의 아이와 지금의 아이는 분명 같은 아이다. 달라진 건 내 아이가 아니다. 아이를 대하는 나의 여유와 인내가 달라졌을 뿐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아이와의 관계를 지키는 출발선에 다시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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