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소모를 줄이는 '선승구전' 육아 전략
약 20년 전, 우리 가족은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 푹 빠져 있었다. 어느 날, 드라마 속 장군의 활약을 보며 동생이 물었다. "만약 이순신 장군이 일본 본토로 쳐들어갔어도 다 이겼을까?" 아버지는 명쾌하게 답하셨다. "장군은 이길 조건을 만들어 놓고 싸우는 분이야. 무모한 전쟁은 시작을 안 했겠지."
일을 잘하는 사람은 목표를 달성할 조건을 만들고 움직인다. 이른바 '선승구전(先勝求戰)'의 지혜다. 이 원리는 육아 현장에도 적용된다. 아이가 말을 잘 듣기 바라는 부모는 먼저 '아이가 말을 잘 들을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부모는 종종 '아이가 말 안 들을 가능성이 높은 방식'으로 아이에게 지시한다. 다음은 전형적인 예다. 부엌에서 설거지하는 엄마가 거실에서 로봇 놀이에 빠져 있는 아이에게 소리친다. "그만 놀고 옷 갈아입어!" 아이는 대답이 없다. 엄마가 목소리를 높인다. "옷 갈아입으라고!" 역시 묵묵부답이다. 화가 난 엄마가 아이에게 뛰어가 악을 쓴다. "옷 갈아입으라고 몇 번을 말해! 왜 사람 말을 무시해!!"
아이는 억울하다. 엄마 말을 무시한 게 아니다. 정말로 안 들렸을 수 있다. 특히, 몰입도가 높거나 주의 전환이 어려운 아이에게 멀리서 날아오는 엄마의 지시는 배경음 중 하나로 인식된다. 이런 지시는 아이에게 닿지 않고 허공에 흩어진다. 엄마는 혼자 화나고, 아이는 느닷없는 엄마의 짜증에 당황한다. 불필요한 감정 소모다.
아이가 말을 듣기를 원한다면, 부모는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1. 거리 좁히기: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가 있는 곳에 간다.
2. 시선 맞추기: 이름을 부르고 아이의 눈을 보면서 분명하게 지시한다.
3. 신체 접촉하기: 아이가 여전히 자기 세계에 빠져 있다면, 아이의 어깨나 팔을 잡고 단호하게 지시한다.
이 절차는 아이가 부모의 지시에 따를 가능성을 높인다. 아이의 주의를 환기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래도 아이가 안 듣는다면, 목소리를 조금 높여도 된다. 이때는 부모가 여러 번 지시했다는 사실을 아이도 인지하고 있기에, 부모의 화가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덜 당황하며 부모의 지시에 따를 확률이 높아진다.
때로는 부모가 무심코 만든 환경이 아이의 불복종을 유도한다. 어떤 부모는 아이가 보는 앞에서 자주 라면을 먹는다. 아이도 라면을 먹고 싶다고 하지만, 부모는 건강에 나쁘다고 한다. 부모의 말은 권위를 잃는다. 다른 부모는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아이에게는 스마트폰을 자제하라고 한다. 그 훈계는 아이의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아이에게 군것질하지 말라고 하면서 집에 과자를 쟁여놓고, 공부하라고 하면서 TV를 크게 틀고 본다. 주의력이 부족한 아이의 방에 현란한 물건을 진열해 둔다. 식사 마치고 간식을 먹으라고 하면서 식사 중인 아이 앞에 간식을 놓는다. 이런 덫 앞에서 아이가 유혹을 이기기란 쉽지 않다. 부모가 만든 환경이 아이를 '말 안 듣는 아이'로 내몰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야 한다.
혹자는 '이렇게까지 아이의 편의를 봐주라고?'라고 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전략의 취지는 아이와의 감정싸움을 줄이자는 데에 있다. 늘 이 전략을 따르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도 이 전략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부모가 목청 높일 일을 줄일 수 있다.
우리는 직장에서 누군가에게 부탁할 때 상대의 눈을 보며 부탁한다. 그래야 내 의사가 상대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유독 내 아이에게는 멀리서 소리치면서 복종하기를 기대할까? 어쩌면 내 아이라는 이유로 너무 손쉬운 복종을 기대했었는지도 모른다.
전투를 앞둔 이순신 장군이 그랬듯, 육아에 임하는 부모도 좋은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부모가 먼저 상황을 전략적으로 설계하고 아이에게 지시하면, 아이는 더 쉽게 따른다. 그때 비로소 부모와 아이는 서로를 옭아매는 감정의 쇠사슬에서 해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