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훈육 기술
아이 1: (쇠로 된 줄자를 휘두르며 장난친다)
엄마 1: 줄자로 장난치지 마. 손 베인다.
아이 2: 그런 적 없는데?
엄마 2: 앞으로 베일 수 있어.
아이 3: 아니야. 나만의 기술이 있어.
엄마 3: 그런 거 없어. 어른들 물건이야. 위험해.
아이 4: 엄마 내 기술 모르지? 봐. (줄자를 휘두른다) 안 다쳐.
엄마 4: 아니, 그러다 다친다고.
아이 5: 난 안 다치게 논다고.
엄마 5: 그때 어떤 아주머니도 위험하댔어.
아이 6: 그건 그 아줌마 말이고.
엄마 6: 어휴~ 어른이 말하면 좀 들어! 한마디도 안 지고 따박따박.
아이 7: 어른 말은 다 들어야 돼? 엄마가 왕이야?
엄마 7: 그래, 왕이다. 엄마 말 들어!
아이 8: 엄마 왕 아니잖아. 왜 거짓말해? 나쁘다.
엄마 8: (소리치며) 이게 진짜!
이런 상황을 호소하며 상담실을 찾는 부모들이 있다. "이럴 때 아이를 어떻게 제압해야 하나요?"라고 묻는다. 그전에, 아이의 말대꾸가 나쁘기만 한 건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사실, 아이의 말대꾸는 아이의 마음이 성장하고 있다는 신호다. 초등학생이 되면 아이도 서서히 자기 생각을 갖는다. 그래서 부모 말에 토를 단다. 오히려 부모 말에 복종만 하는 아이는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하거나 정서적으로 위축된 상태일 수 있다. 아이가 말대꾸할 때, '내 아이가 정상적으로 크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
부모는 논리로 아이를 이기려 들지만, 이 싸움을 시작하는 순간 늪에 빠진다. 특히, 어른보다 감정 조절에 서툰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크다. 한 번 반박이 시작되면, '반박 → 재반박 → 또 반박'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이유다.
위에서도 '아이 2'로 시작한 반박은 '아이 6'까지 부모와 아이의 '반박 티키타카'로 이어진다. 악순환의 끝은 대부분 똑같다. 논리가 더 안 통하면, 부모는 결국 권위의 칼을 뺀다. 하지만, 이미 아이의 눈에 부모는 '자신과 똑같은 수준에서 논쟁하던 사람'에 불과하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권위를 들이밀면 아이는 '이제 할 말 없구나?'라고만 생각한다.
아이를 논리로 이기려는 생각을 내려놓고, 아이의 말을 가볍게 받아주며 시작해 본다.
"아직 손 벤 적은 없구나?", "오, 그런 기술이 있어?"라는 정도로 아이의 말을 반복만 해도 된다.
사실, 이 나이대 아이들은 어른 눈에 별 것 아닌 것도 자랑하려는 마음이 있다. 그런 욕구는 가볍게 받아주는 여유가 필요하다. 이는 아이가 놓은 덫을 피하는 '심리적 공중 부양'이다. 훈육을 포기하는 게 아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아이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해주는 작업이다.
이제, 아이의 마음은 '엄마가 내 말을 들어줬다.'라는 느낌으로 부드러워진다. 부모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된다.
보통 부모는 아이 말의 세부 내용, 단어를 붙잡으면서 아이의 논리에 말려든다. 그래서 필요한 게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시도', 즉 '대원칙에 집중하기'다. 이는 부모 자신이 정말로 하려던 말에 집중하는 일이다.
엄마는 본래 '안전하게 놀아야 한다.'라는 규칙을 알려주고, '네가 다칠까 봐 걱정된다.'라는 진솔한 감정을 전하려고 했다. 이 두 가지를 아이에게 짧고 분명하게 전한다.
"그렇게 놀면 네가 다칠까 봐 걱정 돼. 줄자는 장난감이 아니라 길이를 재는 도구야. 안전한 걸로 놀자."
본질로 돌아가면 무의미한 대화가 멈출 가능성이 높아진다.
무례한 태도는 분명히 지적해야 한다. 아이가 계속 대꾸를 안 멈추면, 다음과 같이 말하고 대화를 중단한다.
"그렇게 말하는 건 무례하다. 이제 엄마(아빠)도 기분이 상해. 이 대화는 여기까지만. 그만. 끝."
아이가 더 대꾸해도 대응하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감정이 가라앉으면 다시 말한다.
"아까는 네가 다칠까 봐 걱정됐어. 그리고 네 말투에 마음이 상했다. 다음엔 좀 더 부드럽게 말해 보자."
아이가 말대꾸를 시작하면, 아이의 말 내용에 집중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에게 전하려던 '대원칙'을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짧게 전달한다.
말대꾸의 늪에 빠졌다면, 일단 부모가 먼저 멈춘다. 대부분 부모가 멈추면 아이도 더 대꾸하지 않는다. 이건 부모가 진 게 아니다. 부모가 대화의 주도권을 되찾는 일이다.
아직 어리지만, 아이는 결국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된다. 그때는 부모의 일방적인 권위가 통하지 않는다. 더 큰 게 오는 그때를 위해 지금부터 마음의 품을 넓혀야 한다.
부모의 권위는 절박한 논리로 세워지지 않는다. 여유롭게 받아주고, 놓아주고, 단호해질 때 비로소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