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目), 귀(耳), 그리고 입(口)

사랑하는 S에게

by 오수현


1.


불멸의 작품을 남기는 것,

그것은 나의 지향점이 아니다.


내 관념한 바를

너무 더디지 않게

명료히 말하는 것,

오직 그것을 바랄 뿐이다.


마음 가는 대로 걸어온

지난 십수 년을 훑어보니

내 좇은 것은 다만

목소리를 되찾는 , 그리고

되찾은 목소리를 힘겹게 내뱉는

이 두 가지뿐이었다.



2.


글을 쓰다 보면

어느 날에는 눈(目)이 앞서고,

또 어느 날에는 귀(耳)가 앞선다.


눈(目)이 앞서는 날에

나는 화가가 된다.


유독 붙잡히길 싫어하는

그런 류의 관념들은

꽉 쥔 손을 놓아줄 때

비로소 자기 이야기를 시작한다.


차분히 받아 적는다.



3.


귀(耳)가 앞서는 그런 날에

나는 시인이 된다.


생각을 음률 단위로 끊어

마치 정갈한 도시락을 싸듯

정사각형 안을 채워 넣


엄격한 형식 속에서

실질은 되레

자유로이 숨을 쉰다.


부단히 받아 적는다.



4.


S에게,


내 그대를 생각하면

입(口)부터 나가는 것이

오랜 버릇이나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바꿔보려 합니다.


내 두 눈(目)과 두 귀(耳),

그리고 많은 사랑을 보냅니다.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것입니다.



수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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