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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Sep 11. 2016

새 차와 헌 구두

사람 좋아 보이던 차 판매원 타카노우라 씨

 난생처음으로 새 차를 샀다.


 계약을 팔월에 했는데 약 한 달이 채 안 되는 오늘 신차를 넘겨받았다.


 우리나라에 살 땐 지인이 쓰던 차를 싸게 넘겨받아 타곤 했다. 운전면허도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몇 년이 지나서 땄고 운전하는 것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터라 보통의 남자들에 비해 차에 큰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길을 지나다 봤던 토요타 자동차 계열의 네츠라는 차판매 회사의 한 대리점을 들어섰던 것이 한 달쯤 전의 일이다. 삼십육칠 도를 넘나들던 무더운 날씨였다.


 대리점에는 신차들이 여러 대 진열되어 있었고 젊은 나이의 자동차 딜러들이 더위에도 밖에 나와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중 머리를 짤막하게 자르고 몸매가 날씬하며 선량하게 보이는 남자 직원 하나가 허리를 조아리며 안내를 해 주었다.


" 어서 오세요. 이쪽으로 오십시오. "


 삼십 대 초로 보이는 차 판매원 타카노우라 씨. 에어컨이 시원하게 가동되는 대리점 안으로 우리 가족을 안내했다. 사전에 전혀 연락이 없던 손님이라 '이게 웬 떡이냐'하는 기분이었을까. 그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얼굴에 기쁜 표정이 가득, 그러나 너무 속보이지 말아야지 하는 자제심도 살짝 느껴졌다. 우리가 외국인인 걸 알자 조금 당황하는 듯했으나 이내 무슨 상관이랴 하는 모습으로 열심히 상담을 이어갔다.

 

 일본 사람들은 대체로 사람을 대할 때 상대를 좀 어려워하는 듯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서비스직에 속하는 사람들은 손님들 대하는 것이 어찌나 상냥하고 겸손해 보이는지 모른다. 이 젊은 차 딜러, 타카노우라 씨도 전형적인 일본의 상냥겸손맨의 태도를 가졌다.


  내가 무슨 말을 꺼내면 정말 성의를 다해 응수했고, 맞는 말이라 여기면 어김없이 '소오데쓰네(그렇네요)' 하며 추임새를 넣었다. 태도와 표정 속에서 진지함과 선량함이 느껴졌다. 어쩌면 나는 이 첫 만남에서 이미 이 사람을 통해 차를 사야겠다고 결정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첫 방문을 하고 나서 한동안 바쁘게 지내며 차사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 이 상! 네츠 타카노우라데쓰. (이 씨, 네츠의 타카노우라입니다.) "


 예의 그 상냥하고 조심스런 말투로 젊은 딜러가 나를 찾았다. 나는 반가운 말투로 전화를 받았고, 일전에 친절하게 잘 상담해 주어 감사했고, 차를 사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젊은 딜러는 기쁜 목소리로 잘 됐다고 말하며 시간이 편할 때 내 사무실로 찾아와 주기로 했다.


 며칠 뒤 우리 회사로 그가 찾아왔을 때, 나는 일층에서 이층으로 사무실을 막 옮기고 나던 참이었다. 책상을 대충 치워놓고 그를 불러 이층의 내 사무실로 들였다.


 종전과 비슷한 차림의 하얀 와이셔츠에 밝은 갈색톤의 양복바지였다. 키는 보통이었는데 살이 없어서인지 와이셔츠며 바지가 모두 헐렁하게 보였다. 남의 회사에 온 어색함이었는지 고객을 대할 때 항상 보이는 낮은 모습이었는지 아무튼 이날도 그는 허리를 조아리고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겸연쩍게 웃으며 들어섰다.


 견적서를 가져왔고 보험 관련 설명서와 각종 팸플릿들도 곁들였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둘이 마주 보고 앉아 구체적인 차 구매 상담에 들어갔다. 타카노우라 씨는 서둘지 않았고 차근차근 설명해 주어야 할 내용들을 일어가 서툰 나에게 하나씩 짚어가며 이야기해 주었다.


 때때로 내가 질문을 했는데 가끔 자기가 잘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아주 미안해하면서 돌아가면 즉시 알아보고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내비게이션과 블랙박스, 그리고 백미러 자동 접힘 기능 등과 관련하여 혹시 판매자인 네츠 쪽에서 내게 어떤 서비스를 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모두 유료 부가 기능이었다. 이런저런 네고 끝에 내비게이션 사이즈를 대형으로 바꾸는 데 추가 비용을 자기들이 부담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깜짝 놀란 것은 한국에서 몇 십만 원 정도로 생각했던 내비게이션이 백만 원이 넘어갔고 대형 사이즈는 이 두 배 가격이 넘는다는 사실이었다.


  아마도 사무실에 올 때 대리점 점장으로부터 사전 허가를 받았는지 내비게이션 업그레이드 서비스뿐 아니라 지난 첫 방문 때 받았던 견적서에서 제법 큰 폭의 할인까지 제시했다. 차를 사본 적이 없는 나는 이런 조건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정확히 비교하기 어려웠다. 다만 다행이었던 것은 얼마 전 다른 브랜드의 비슷한 종류의 차를 샀던 사내 후배가 해주었던 조언들을 떠올리며 대략적으로 비슷한 수준 혹은 그보다 약간 더 나은 수준이 아닐까 짐작하며 타카노우라 씨의 제안을 수용하기로 했다.


 오늘은 토요일 주말. 그렇게 그와 몇 번 만나고 전화통화를 한 끝에 드디어 하얀색의 패밀리카가 집 앞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부리나케 나갔다.


 다카노우라 씨가 방금 하얗게 도장되어 나온 새 차 옆에서 오늘도 역시 허리를 조아리며 수줍은 듯한 미소를 짓고 서 있었다. 원래는 집으로 들어와 마지막 서류 작업을 하려고 했는데 집도 좀 어수선하고 해서 나와 그는 각각 새 차 운전석과 조수석에 나란히 앉아 마지막 의식을 치렀다.


 중간에 통장 계좌번호를 확인하러 그를 차에 남겨둔 채 잠시 집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집 앞에 정차해 놓은 차의 조수석 왼쪽에 구두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타카노우라 씨의 구두였다.


 새 차와 헌 구두


 아침 햇살에 더 하얗게 빛나는 새 차 옆에 놓여 있는 헌 구두 한 켤레.

살아오면서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있던가. 아주 잠깐 동안 생각해 보았다.


 없었다.

 이런 장면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타카노우라 씨, 이 삼십대 초의 젊은 차 판매원은 마지막까지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 주었다.

차 안이 더럽혀질까봐 구두를 벗고 조수석에 탄 것이었다. 차 안에서 서류 작업을 할 때는 몰랐는데 계좌번호를 확인하러 집에 들어갔다가 나오니 구두가 보이는 거였다.


 '아, 이렇게까지 하는 건가?

 그럼, 우리 집까지 이 차 운전은 어떻게 하고 온 거지?'


 벗어 놓은 구두를 보며 잠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설령 운전하며 우리집으로 올 때 구두를 신은 채 차를 탔다고 하더라도 새 차를 인수하는 손님 앞에서 구두를 벗고 차를 타는 것으로 예를 표했던 타카노우라 씨. 정말이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잠시 차 구경을 하러 나왔던 아내도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는지 손전화기 카메라로 새 차와 그의 구두를 찍어 두었다.


 차를 파는 영업사원 타카노우라. 이 친구는 과연 10년, 20년 후에 어떤 위치에 가 있을까.

오늘 새 차를 받으면서 생뚱맞게 이 영업사원의 미래가 궁금해졌다.


 어쩌면 일본 애니메이션 주인공 시마 과장처럼 훗날 대기업의 임원 혹은 대표이사로 우뚝 서게 되지나 않을까.

 

  그의 선량하고 수줍은 듯한 미소와 허리를 구부린 듯한 낮은자의 모습이 자꾸 눈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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