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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색(正色)하며 말하지 않기

by 안드레아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말하는 태도가 저와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말하는 태도가 맞지 않는다는 것은 여러 경우가 있을 겁니다.


상대의 말은 잘 듣지 않고 자기 말만 늘어놓는 경우.

서로 경어를 써야 하는 관계임에도 직급이나 나이 등의 이유로 반말을 섞어하는 경우.

의견이 맞지 않을 때 쉽게 흥분하고 감정적으로 나오는 경우.

비속어를 많이 써서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경우.

자기의 생각이 항상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하는 경우.

비슷하게 매사 가르치려고 드는 경우.

등등...


저는 그 여러 가지 경우 가운데 '정색하고 말하기'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정색(正色)'이란 말의 사전적 뜻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1. 얼굴에 엄격하고 바른 빛이 드러남 또는 그런 얼굴빛
2. 얼굴에 엄정한 빛을 나타냄 또는 그런 얼굴빛


저의 회사에서 어떤 분과 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주 경험하는 어려운 순간이 있습니다.


그건 그분이 저나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 혹시 자기 생각과 다르거나 상대가 틀렸다 여겨지면 즉각 '정색'을 하며 대화를 이어갈 때입니다.


DSC_0072.jpg 나라 공원 호숫가에 나타난 사슴신선
DSC_0120.jpg 나라 공원의 싱그런 햇살과 나무와 이끼


연륜도 있으시고 직장경험도 풍부하신 그 일본 여자 상사. 회사에 지대한 공로를 세우고 계시며 경영자의 신뢰를 받고 있는 분입니다. 따라서 이제 갓 3년이 넘어가는 제가 처음부터 그녀의 말하기 태도에 반감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일어가 서툴렀기 때문에 한동안 그녀와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하기도 여러웠지요.


지금도 일어는 여전히 서툴지만,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씩 익혀서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주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처음엔 몰랐던 그분만의 의사소통 방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수출 판매를 담당하고 있고 그녀는 주로 구매와 재고관리를 책임지고 있어서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고 자주 의견을 교환해야 합니다. 서로 회사의 이익을 위해 의기투합하고 협조가 잘 되는 때도 있지만 각자의 입장에 따라서 의견이 엇갈리고 때로는 상대의 잘못을 지적해 주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의견이 잘 맞고 같은 결론에 도달하면야 문제가 없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대화와 조율이 필요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입장 차이가 생길 때 그녀는 습관처럼 '정색'을 하며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어투만 정색을 하는 것이 아니고, 눈빛과 제스처 모두 상대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갑작스레 돌변하곤 했습니다.


" 아닙니다! 그건 그렇지가 않습니다. "


" 아니에요. 지난번 회의 때 내가 얘기한 것 같은데 못 들었어요? "


" 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A사는 맨날 그래요.

바이어 쪽 부장이 우리 사정 봐준 적 없어요. 끌려 다닐 필요 없어요! "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는 걸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문제는 그녀가 너무 습관적으로 상대의 의견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이런 강한 피드백을 보이는 데 있습니다. 한 마디로 걸핏하면 정색을 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저는 외국인이고 일본어로 표현하는 의사소통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녀가 이렇게 나오면 그다음 대화를 쉽게 이어가기가 어려웠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변명처럼 들릴 것 같았고 저의 논리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DSC_0136.jpg 쿄토 키요미즈테라( 淸水寺)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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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의 대화가 자주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저는 그녀의 '정색하는 표정'에 진절머리가 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옳은 의견과 가르침을 받아들일 마음가짐을 가졌던 초기의 제 모습은 점차 빛을 바래어 갔습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갈등과 이견의 여지가 있을 법한 주제가 생기면 건설적인 대화를 시도하기보다는 이메일이나 SNS 등을 이용해 가급적 팩트만 전달했습니다. 자연스레 그녀와 직접 엮이는 일을 줄이고자 하는 행동 패턴이 나오는 거였습니다.


참으로 애석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논리가 때로는 부족하고 그녀의 판단이 잘못되었을 때도 여러 번 있었지만 그것을 정면으로 지적하고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잘못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상황의 전환을 위해서 상대의 의견에 대해 지적을 하고 상대를 설득해야 하는 경우는 언제든 생깁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정색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얼마든지 온화한 표정과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정색을 하면 그로 인해 얻는 실익보다 손해가 더 크다는 것을, 그 순간 자존심을 살리고 상대의 기를 꺾을 수 있을는지 몰라도 사람의 마음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정말 모르는 걸까요.


진심은 결국 통하리라 믿고 있습니다.


욕심은 내지 않으려 합니다.


시간은 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나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으리라 기대합니다.


DSC_0143.jpg 키요미즈테라의 인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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