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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마츠역

by 안드레아

회사 근처에는 주로 공장 단지와 편의점 두 개 정도만 있어서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 가끔 도시락을 주문해서 먹기도 하지만 역시 따끈하게 나오는 음식을 먹는 것이 좋다.


일본 직원들만 있는 곳에 올해 고맙게도 한국에서 경력직으로 후배 하나가 들어왔다. 떠듬떠듬 일본 동료들과 일어로 일을 하고 혼자 우두커니 앉아 조금은 외롭게 지내다가 후배가 들어온 후에는 수다가 늘었다.


거의 매일 후배와 점심을 먹으러 나간다. 우리는 주로 와카마츠역 부근에 널려 있는 식당들 가운데 그날 구미가 당기는 곳을 가곤 한다.


오늘은 후배가 나고야쪽 출장을 가야 한다고 해서 역쪽에 가까운 '사쿠라'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걸어서 와카마츠역을 향했다.

키타큐슈 와카마츠역 입구
열차가 떠나기 직전이다.

그동안 와카마츠역 근처를 차로 수십 번 지나쳤지만 역사 안으로 들어와보기는 처음이었다.


평일 점심의 역은 한산했다. 대합실에는 작은 편의점 하나와 우동집이 하나 있었는데 우동집엔 자리가 없고 그냥 서서 먹어야 했다. 밥을 먹고 왔지만 저기서 뜨거운 국물에 든 우동을 한 사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랫폼이 길게 바라다 보이는 개찰구에 서서 멀리 반대편 출구쪽을 쳐다 보았다. 화창한 가을 햇살에 비친 바깥 풍경과 양옆이 뚫린 지붕덮인 플랫폼의 텅빈 정갈함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자연스레 그 모습을 사진속에 담았다.


아직 이 역에서 열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보질 못했다. 하지만 역사 안을 들어와 보니 꼭 한 번은 열차를 타고 후쿠오카나 다른 역으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몰고 가는 게 아니라 열차 속에서 바깥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짧은 여행을 하고 싶다고 느꼈다.


혼자 역사 안을 둘러보고 사진 몇 장을 찍는 동안 후배가 신칸센표를 다 샀다. 우리는 역 바깥으로 나와 부두쪽으로 산책을 나섰다.


한때는 키타큐슈 공업지대가 지금보다 훨씬 왕성하게 경제활동을 했었다고 한다. 우리가 점심을 먹으로 오는 이 근처 상가를 보면 문을 닫은 곳들이 꽤나 많이 보이는데 쇠락한 도시의 흔적이 거기서 여실히 드러난다.


만일 이곳이 부산의 부둣가였더라면 바다가 보이고 멀리 빠알간 색의 멋들어진 와카토 다리가 보이는 이곳이 사람들도 바글바글했으리라.


후배와 나는 도시의 한적함을 조금은 끌탕하는 마음으로 이야기하면서도 덕분에 우리는 얼마나 쾌적하게 이곳의 소담함을 즐길 수 있는지 점심은 또 얼마나 편하게 골라서 먹을 수 있는지 우리가 누리는 것들을 감사하게 여겼다.


와카마츠역 부근 공원
와카마츠역에서 보이는 산 남쪽 비탈의 마을

여기서 제일 큰 건물은 대형 수퍼가 들어선 주상복합빌딩인데 어쩐지 이렇게 사람이 적은 곳에 조금은 쌩뚱맞은 느낌마저 들게 한다. 맞은편의 건물도 제법 큰데 아마도 이 도시가 보다 융성하고 사람들이 많았을 적에는 상당히 유용한 시설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부두에는 작은 보트들이 정박해 있었다.


아, 어제 비가 내리고 말끔해진 하늘은 너무도 기분 좋은 파랑색이었고 와카토 다리는 그 푸르름을 더 선명하게 해주는 빨강색 옷으로 매치시키고 있었다.


한동안 한 시간의 점심 시간이 빠듯해 이곳까지 걸어나올 엄두를 내지 못했었는데 오늘 사쿠라 식당은 도착 전 미리 예약을 해둔 덕분에 빨리 먹고 산책까지 가능했다.


지척에 두고 자주 와보지 못한 이 산뜻하고 기분 맑아지는 와카마츠역과 부두 산책길. 앞으로는 후배와 함께 좀 더 자주 찾아야지 하며 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이런 작은 곳이 좋아졌다. 아마 사랑하게 될 것 같다. 이곳을.

와카토 다리가 보인다.
와카토 다리가 보이는 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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