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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Dec 03. 2016

나이 쬐금 먹은 해맑은 소녀들

다자이후의 따사로운 햇살 아래

15년 만의 해후


15년 만이었다. S와의 만남.

20대 초중반에 성가대에서 만나 젊고 열정이 솟구치던 날의 자유를 함께 구가했던 동생.


오래도록 연락이 닿지 못하다가 우연히 SNS로 올해 서로의 근황을 물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몇 번의 안부를 주고받으며 가까운 미래의 해후를 서로 희망했다.


한동안 또 연락이 뜸하다 소식을 받았다.

절친 다섯 명이 후쿠오카로 여행을 온다는 거였다.

어린 시절 같은 동네서 자랐던 다섯 명의 여자 친구들이 어렵사리 일정을 맞춰 시월의 후쿠오카를 숨 쉬러 오겠다는 것이었다.


미혼의 친구도 있었지만 대부분 아이를 두고 있는 30대 후반의 여자들이 그것도 다섯 명이나 사흘의 시간을 외국에서 함께 하도록 뭉쳤다는 데 일단 놀라고 부러웠다.



소녀 M


그녀들이 도착한 첫날은 비바람이 몰아치고 하늘은 온통 시커멓게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고속도로를 달려 하카타역 앞의 북적이는 거리에서 만난 이 독수리 오자매와 같은 여인들은 도착 직후부터 저녁 시간에 이르는 순간까지 매우 알찬 시간을 보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손마다 바리바리 들려있던 쇼핑백들은 그녀들이 그날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얻은 자랑스런 전리품들이었던 것이다.


올해 구매한 6인승 승합차에 손님들을 싣고 차를 탄 채 첫인사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한 사람이 비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 자리에 없던 친구 M은 일본인 친구를 만나러 갔다고 했다.


친구들은 M에 대해서 자기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대화 가운데 기억에 남는 인상적이었던 내용이 있었다. 그녀들 중 가장 키가 큰 M이, 쇼핑을 위해서 특화된 낮은 굽의 신발과 편안한 복장으로 무장한 나머지 넷과 달리 굽이 제법 높은 힐과 치마를 입고 하루 종일 다녔다는 것이다.


대화의 문맥은 이렇게 흘러갔다.

M은 어릴 적 중국에 유학을 갔을 때 친하게 지냈던 일본인 친구를 만나러 갔고, 그 친구는 여자였다. 아마도 친구들은 M이 저녁에 그 일본 친구와 만날 것을 완전히 확신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와의 저녁식사에 오지 못하고 일본 친구를 만나러 간 그 시점에서 그녀들은 M이 왜 힐과 치마의 불편함을 감수했는지 알아차렸다. 친구들은 M의 그런 모습을 귀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웃으면서 그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 역시 M을 만나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녀의 소녀 같은 순수함 마음이 헤아려지는 듯했다.


마치 정답과도 같이 느껴지던 다자이후의 시월 하늘


이튿날은 누가 돈을 주고

부탁했을까 싶을 정도로

하늘이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그야말로 시월 하늘의 전형을 보는 행운이 따랐다.


원래는 후쿠오카에만 머물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한 것 같은데 이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서

도심에만 있다 가는 건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후쿠오카 근교에 있는 '다자이후'라는 신사로

한 번 가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고 그녀들은 흔쾌히 수락했다.


무림고수들의 공중전


일행들의 특징과 역할 분담이 조금씩 달랐는데 역시 키가 후리후리하게 크고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했던 M2는 어디를 가든 카메라를 들고 오자매의 모습과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흔적을 담았다. 알고 보니 M2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고 그녀들의 모든 여행의 행적은 사진과 글 때로는 동영상으로 고스란히 기록되고 있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그 흔적 속에 내 모습도 꽤나 많이 들어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점프샷을 많이 찍어 보는 편인데 생각지도 못하게 이날 그녀들 가운데 J가 점프샷을 주도하는 거였다. 혹시 점프가 높지 않아도 폴짝 뛰면서 카메라 각도를 잘 잡기만 하면 깜찍하고 놀랍기도 한 작품이 나오는 걸 알 것이다. 옆에서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던 나는 슬며시 점프샷 하나를 함께 만들고 싶어 졌다.


적당한 위치를 잡고 한 번 찍어보라고 부탁했다.


점~~~~~~~~프!!


어릴 적부터 워낙 뛰는 걸 좋아하고 써전트가 꽤 높은 편이라 그녀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결국 일행 중 J와 M2가 합세하여 작품 하나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이름하여 '장풍 점프샷'


다자이후 신사 안에서도 조금 후미진 뒤편에서 자리를 잡았는데 간간히 지나는 관광객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 민망한 면이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일념 하에 몇 번에 걸쳐 점프를 시도하고 카메라 연속동작 촬영을 한 끝에 아래와 같은 작품이 나왔다.


장풍에 내상을 입을 뻔했던 순간 (다자이후 정원)

찍는 당시에는 셋 다 그냥 높이 뛰어 공동 점프샷을 찍는데 목적을 두었던 것 같다.

그런데 찍혀 나온 사진들을 나중에 받고 보니 이건 완전 '무림고수들의 공중전'을 방불케 했다.

M2와 J는 마치 공중에서 나를 향해 장풍을 날리는 포즈처럼 보였고 나는 그 엄청난 파워를 온몸으로 맞으며 밀려나는 듯한 그림이 나왔다.

S와 나는 이 사진들을 공유하며 유쾌하게 웃음을 나누었다.

아마도 오래도록 기억에서 잊히지 않을 순간으로 남을 것이 틀림없다.


삶을 같이 마주하는 다섯 명의 친구들


S에 따르면 이들 다섯 명의 여인들은 어린 시절 초등학교 혹은 중학교 동창 사이로 누가 먼저 인연이 되었는지가 중요할 것 없이 서로서로 얽힌 인연으로 오랜 시절 교유해온 사이였다. 친구 사이가 으레 그렇듯 살면서 연락이 뜸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중년으로 접어들어가는 이 즈음의 그녀들은 가족들끼리도 자주 만나고 생일을 함께 하기도 하며 일상을 혹은 휴가를 공유하는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다.


해외에 나와 있어 보고싶은 친구들을 자주 만날 수 없는 나로서는 이들의 일상과 여행이 무척이나 부럽고 좋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멀리서 어려운 발걸음으로 나를 찾아 주는 지인들이 있어 나도 종종 이곳에서 흐뭇하고 기쁜 시간을 갖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역시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고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아쉽기는 하다.


H

햇과 머플러를 매력적으로 하고 다니던 그녀. 화장기 없는 앳된 얼굴과 차분한 어조로 대화를 나누던 H의 모습이 떠오른다. 앞으로도 멋지게 개인 사업을 해나가시기를...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참 괜찮은 그가 친구들과는 또 다르게 그녀의 삶 안에 자리하기를...

J

어디서나 환영받을 생글거리는 미소와 똑소리 나는 말솜씨 그리고 엄청난 인터넷 검색 능력의 소유자. 일본에 사는 나보다도 더 길을 잘 찾고 먹어야 하는 음식과 가야 할 곳을 제대로 파악해내는 목적의식이 뚜렷해 보였던 그녀. ㅎㅎ 이야기 잘 받아주고 상냥하게 대해주어 참 고마웠다.

M

늘씬한 키와 어떤 여배우를 떠올리게 하는 얼굴. 본인은 웃기려고 한 것이 아니지만 순수함과 자연스러움으로 친구들을 즐겁게 만들던 사람. 일본 친구와의 좋은 추억 잘 간직하시고 그 우정이 오래도록 이러질 수 있기를...다자이후에서 그녀가 선물로 건넨 마요네즈명란은 요즘 식탁에서 잘 먹고 있다.

M2

시원시원 이목구비의 추억 기록자 그녀. 강아지를 아들이라고 하여 첨에 좀 헷갈렸던 생각이 나지만 녀석은 정말 그녀와 신랑님에게 아들이 맞다는 걸 알았다. ^^ 오자매의 행복한 순간들은 사진으로 글로 영상으로 그녀의 손에서 재생산되어 나이가 들고 기억이 희미해질 즈음에도 역사처럼 소중하게 간직되겠지...

S

시간을 뛰어넘어 이십 대 우리들의 푸르던 모습으로 나타나 주었던 그녀. 덕분에 잠시 창고 속에 접어두었던 더 젊었던 시절의 감각과 느낌들이 돌아오는 듯했다. 소중한 친구들과의 우정여행에 함께 하는 영광을 누리게 해주어 깊이 감사. 더 많은 말들이 그 시간 숨 쉬는 공기들 가운데 떠다니고 있었지만 앞으로 살면서 야금야금 오래도록 나누기로 하자.



기울어지는 햇살을 받은 다자이후의 거리가 공기는 조금 서늘했지만 그 풍경만큼은 그렇게 따사로울 수가 없었다. 나는 어쩌면 다섯 명의 친구들이 찍은 '섹스 앤 더 시티' 후쿠오카 편 외전에 조연으로 잠시 출연한 게 아닐까. 그녀들은 그렇게 드라마처럼 살짝 들렀다 돌아갔다.


다자이후 후문 근처 양쪽의 나무 사이를 길게 이어 만든 거미집 가운데 창공을 안은 자유 거미
다자이후 신사 기와 위의 맑은 시월 하늘
기울어지는 햇살을 받은 다자이후 거리가 따사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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