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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Dec 09. 2016

조촐한 나눔

평일 저녁 어둠과 침묵의 공간


 어느 햇볕 따스한 일요일 아침에 평소보다 이른 발걸음으로 와카마츠 성당에 도착했다. 우리나라에서 다니던 성당보다 아주 자그마하고 아담한 이곳은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소탈하고 평온한 느낌이 든다. 8시 반 미사인데 신부님께서 일찍부터 성당 입구에 서서 신자들을 기다리셨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연배의 한국인 신부님. 언제 보아도 시원스레 큰 키에 정말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미소를 머금고 인사를 건네주신다. 나도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한다.


 "잘 지내시죠? 아기도 잘 크고? 우리 12월 가기 전에 한국인 신자들 한 번 모일까요?"


 "아, 너무 좋죠. 송년회 겸 같이 함 뭉치시지요. "


 "아, 그러면 이번에는 우리 성당에서 미사 드리고 저녁을 간단히 먹으러 갈까요?"


 "네, 좋습니다, 신부님. 한국인 신자들한테 연락하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평일 하루 일과를 마치고 고요하고 엄숙함이 깃든 성당에 모이게 되었다. 7시 미사였는데 이 날 일찍 퇴근을 하고 성당에 도착하니 불이 다 꺼져 있었고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거의 한 시간을 일찍 도착했으니 그도 그럴 법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어둠 속에 앉아 고요함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묵상이라도 했을 텐데 이 날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전자오르간 주위를 기웃거렸다. 친구가 어떤 분이 자작한 노래 악보를 보내 줬는데 건반 없이는 쉽게 부르기 어려웠기 때문에 성당의 오르간을 이용해서 노래를 불러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참 동안 전원을 어떻게 켜는지 몰라 오르간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왼쪽 벽면에 붙어있던 의자 위로 지나가는 선을 발견했다. 기쁜 마음에 오르간을 켜고 건반을 쳐 몇 소절 멜로디를 익히고 있는데 성당 입구에 누군가 나타났다. 신부님이다.


 어두운 성당에서 입구 쪽 불만 켜고 오르간 앞에 앉아 있던 나를 발견한 신부님은 일찍 왔다며 반갑지만 조금은 절제된 인사를 건네셨다. 성당에 도착해서 기도나 묵상을 하지 않고 딴짓을 하고 있던 나는 후다닥 오르간에서 몸을 돌려 신부님을 향했다. 마치 오르간 놀이를 하지 않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다.


 자신도 모르게 원하고 있었을지 모를 나눔의 시간


 일본 중소도시의 한 조그마한 성당에서 어느 평일 저녁에 한국 사람들이 한국어로 진행되는 미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신자 다섯 명에 신부 하나. 아주 고요했고 군더더기를 뺀 미사처럼 느껴졌다.


 재미있는 모습 하나는 일본어 성서와 일본어 성가책만 있던 그 공간에서 우리는 한국어로 된 성서 말씀과 한국어 성가를 부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성당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그런 기대를 하지는 못했다. 신부님이 스마트폰으로 오늘의 미사 내용을 검색하고 성가 몇 곡을 준비해달라고 하셨기에 그제야 행동에 옮긴 것이다.


 신기하고 새로웠다. 신부님도 일본에서 한국어 미사를 봉헌하게 된 것이 한 10년 만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다른 한국인 신자들도 약간 감격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 특별한 분위기로 인하여.


 이 날 미사에서 신부의 강론 시간은 좀 색다르게 진행되었다. 신부님의 제안으로 강론 시간에 일방적인 강론 대신, 각자 1년을 돌아보며 좋았던 일과 힘들었던 일 등을 아주 길지 않게 나누기로 한 것이다.


 내 차례가 되면 무슨 이야길 할까 생각하던 찰나에 먼저 한 부부의 부인이 운을 뗐다. 일본에 온 지 십수 년차가 된 이 부부는 최근 한국 반찬과 음식을 파는 가게를 시작했다. 힘들기는 하지만 가게를 열자 일본 지인들이 생각지도 않게 많은 걸음을 해주어 그동안 헛살지 않았구나 하는 뿌듯함과 마음 깊이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처음 일본에 건너왔던 당시만 해도 너무 어린아이를 안고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땅에 와서 매일 밤을 울었다고 한다. 육아 자체도 힘든데 아는 사람도 없고 말도 안 통하는 환경이라니... 그 고통이 어떠했을지... 지금 똑같이 낯선 환경에서 육아를 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겹쳤다.


 부인의 말이 끝나고 옆자리의 미혼 여성 한 분이 조금 긴장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뜻밖의 주제가 흘러나왔다. 그녀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이곳으로 오게 되었고 일반 회사가 아니라 공공기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끔 성당에서 만나면 방긋 웃으며 반가운 인사를 건네곤 하던 그녀가 꺼낸 이야기는 인종차별에 대한 사연이었다.

원주의 한 성당 (사진: 철길 위에 강가딘)
텅 빈 성당의 앞자리를 한 줄 겨우 차지하고 있던 우리의 모습은 마치 하얀 백지의 한 쪽에 쓰인 시구와 같았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그 자리에서 다 풀어놓은 것은 아니었다. 회사에서 동료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그로 인해 마음속 깊은 상처를 입었던 것으로 보였다. 처음에는 담담한 어조로 시작했으나 점점 그녀의 목소리는 촉촉이 젖어들었다. 그녀는 올해 성당에서 '성서모임'이라는 활동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행히 거기서 이런 상처에 대해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결국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 일본 동료로부터 그리고 회사의 전체적인 분위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으나, 곰곰이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과 상의한 끝에 그 사람에게 잘못했던 부분을 시인하고 사과를 하도록 요구했다고 한다. 떨리는 목소리로 숨소리마저 들릴 듯한 그 공간에서 들려주던 이야기에 깊은 공감이 갔고 얼마나 힘들고 상처가 깊었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싶었다.


 텅 빈 성당의 맨 앞자리를 한 줄 겨우 차지하고 있던 우리의 모습은 마치 하얀 백지의 한 쪽에 쓰인 시구와 같았다. 여백의 미 같은 느낌이랄까. 


  차례가 돌아가며 신부님도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신부님은 무슨 이야기를 하실까 궁금했는데 웬걸 내용이 예사롭지 않았다.


 올해 성당 소속 유치원 운영과 성당 살림을 챙기면서 마음고생이 많으셨다는 걸 조금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말씀을 들어보니 그냥 힘들었다는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유치원은 매년 적자가 누적되고 있었고, 성당의 예산은 신부님 생각에 필요하지도 않은 곳에 집행되고 있었다. 어떻게든 유치원과 성당 예산과 집행에 손을 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유치원 선생님들과 성당의 예산을 움직이는 사목위원들의 반발은 예상보다 거셌다.


  노인 신자들이 많은 이 성당은 그들의 풍족하지 못한 연금이나 기타 수입에서 떼어 바치는 헌금과 교무금으로 운영된다. 그런 귀한 돈을 허투루 쓰는 것은 신부님 생각에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행위로 여겨졌다고 한다. 그러나 예산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왜 그동안 다른 전임 사제들(신부들)이 반대하지 않았던 걸 당신만 유별나게 구느냐는 식의 반발을 했다. 예를 들면 성당 지붕이 오래되어 물이 셀 우려가 있다며 공사를 집행하겠다고 했을 때 신부님은 아직 괜찮아 보이니 조금 더 기다려 보고 실제 물이 세면 조치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예산 집행자들은 돈 쓰는 일에 쉽게 동의하지 않는 신부님에 대해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안 좋은 소문을 퍼트렸다. 심지어 신부님께 대놓고 비판하기를,

" 당신 같은 한국인들은 잘 모릅니다. 우리가 그동안 어떻게 했는지 여기에 어떤 배경이 있는지 전혀 이해를 못합니다!"


 신부도 인간인지라 완벽할 수 없지만, 이쯤 되면 사제의 권위에 정면 도전하는 셈이었다. 올해 신부님은 오랜 세월 일해온 유치원 선생님들과 갈등이 심했고, 성당 사목위원들과도 위와 같이 부딪히면서 심적으로 엄청난 압박감과 좌절감을 느꼈다고 한다. 심지어 수도자 생활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왜 일부 신부님들이 옷을 벗고 사제 직분을 버리게 되는지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까지 고백했다. 밥을 먹고 싶다는 의욕이 전혀 들지 않는 신기한 경험이었다고 한다.


 최근 회사의 상사들로부터 예상치 못한 비판을 받고 욕을 들어먹으며 요 며칠 심하게 동요하고 힘들었던 나다. 나 빼고는 다들 큰 문제없이 무난하고 살고 있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찬 음식 가게를 연 부인의 일본 초기 생활에서의 설움과 어려움, 한 미혼 여성의 인종차별 경험. 거기다 가장 마음 편하고 평화롭게 지내실 거라 믿었던 신부님마저 그렇게 무너지고 생채기가 깊어 성직자로서의 삶 자체에 대한 회의가 느껴질 정도였다니.


 그날 그 시간은 마치 누군가에 의해 특별히 초대된 사람들만을 위해 예비된 시간처럼 느껴졌다.

고요함 속의 위로.

담담한 듯 찾아드는 치유.

신부님은 이렇게 되리라는 걸 알고 우리에게 이런 시간을 준비해 준 걸까.  


 

 




*사가현 대흥선사(다이코 젠지)의 늦가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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