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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Dec 23. 2016

모지코&시모노세키
그리고 키타큐슈

유붕자원방래  (有朋自远方来)

삶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던 친구


멀리서 오랜 친구가 홀로 내가 사는 곳을 찾았다.


자신의 삶을 돌아볼 시간을 가지고자 했다.


친구는 한적한 곳을 원했다.


먼저 모지코(북큐슈에 위치한 개항 당시 옛시가지 모습을 간직한 항구마을)

쪽으로 발길을 향했다.



그가 찾아오기 전날까지도 후쿠오카와 키타큐슈는 비가 제법 많이 내렸다.


모지코를 찾은 이 날은 구름이 하늘에 잔뜩 걸려있으면서도

푸른 하늘이 군데군데 파아랗게 빛나는 최고의 날씨였다.



친구의 운이 좋았다.

몇 번이나 이곳을 찾은 적이 있었지만

구름과 하늘이 이렇게 조화를 이룬 날은

결코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온은 그리 낮지 않았으나

바람이 거센 날씨였다.

우리는 바람을 거스르며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를 꺼내고 또 들었다.

모지코를 오전에 어느 정도 걸으며 시간을 보낸 후

시모노세키의 명물 수산시장 카라토 이치바를 찾았다. 


왼편에 카라토 이치바가 있고 정면으로 '칸몬대교'가 보이고 있다.


복어로 유명한 이 카라토 수산시장에서

우리는 좌판에서 고른 초밥을 곁들여

복어회와 복어튀김 그리고 대하튀김을 배불리 먹었다.


시장 한켠에 고른 음식들을 앉아 먹을 수 있도록

비치된 철제 의자에 앉아 수더분하게 그러나

흡족하게 식사를 했다.


친구는 연신 "맛있다! 여기 진짜 괜찮다!"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비록 그것이 안내해 준 친구에 대한 배려가

들어간 표현이었을지 모르겠으나

그의 표정과 말투 그리고 분위기로 미루어 볼 때

과히 나쁘지 않았을 거라 짐작해 본다.


태양빛이 옆으로 비치면 세상은 옷을 갈아입는다.


시계를 보니 3시 반을 넘기고 있었다.

키타큐슈에서 일몰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으로

그를 데려가고 싶었다.

분주히 차를 달려 키타큐슈 서쪽 해변에

도착했을 때 해는 기울어가고 있었다.

옆으로 비치는 태양광선을 맞은 사물들은

언제나 그렇듯 고급스런 옷으로

갈아입는 느낌을 주었다.

빛의 향연이다.



해질녘 풍경으로 보여주고픈 곳이

제법 많지만 역시 시간 제약이 있었다.

서쪽 해변을 떠나자고 했다.

풍력발전기가 있는 곳으로 급히 가야 할 때였다.

해가 넘어가도 그림이 나오는 그곳으로.



풍차가 어둠에 묻힐 때까지 우리는 말을 아낀 채

해가 지는 바닷가를 바라보고 또 보았다.

어둠 속에서 실루엣만 나오는 우리들의 모습을

역광으로 담기도 했다.


누군가 이곳을 방문하면 대부분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는 곳으로

안내하곤 했는데 이번엔 좀 달랐다.

친구 자신이 내면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하는 상황으로 느껴졌다.

나와의 대화도 역시 번잡한 곳보다는

고즈넉하고 한산한 곳이 더 나았으리라.


그래도 저녁을 먹고 난 후에는

야경을 볼 수 있는 고쿠라성 근처로 향했다.

마침 성탄절을 앞둔 고쿠라성 인근의 다리를

중심으로 아기자기한 불빛의 꼬마전구들이

보랏빛 황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다리를 지나 고쿠라성까지 걸어 들어가 보았다.

휘황찬란한 일루미네이션 불빛들과 대조적으로

고쿠라성은 담백한 조명을 받으며

담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었다.


친구와의 시간은 평소의

정확히 3배 속도로,

철길 옆에서 눈으로 좇는 고속열차가 지나가는 것처럼

쌔앵 하니 눈앞을 스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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