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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Dec 26. 2016

공포


  세 시간 반의 비행과 네 시간의 기다림. 다시 열 두시시간의 비행 끝에 지구의 어떤 다른 편에 도달했다.


 햇살은 눈이 시리도록 강렬했고 바람은 몸이 날리도록 거세고 서늘했다.


 이 여행은 편안하고 즐거움만 가득하리라 기대했던 편이다.



 자동차로 이동하다 휴게소 - 말그대로 휴식만 취하는 곳이다. 화장실과 테이블과 의자만 몇 개 비치되어 있었다. -에 들러 마트에서 사온 음식을 먹기로 했다.


 바깥 날씨가 여의치 않아 차 안에서 먹는 것으로 마음을 바꾸었다. 이국적인 풍경을 바라보며 한국 마트에서 사온 김밥 하나를 씹어먹다가 아불싸!


 금니를 덧댄 아랫쪽 어금니가 살짝 깨졌다.


 금세 혀로 느껴지는 날카로운 어금니 파편. 그리고 깨진 어금니의 빈 공간 위로 떠 있는 금니의 날카로운 끝단면이 혀의 아랫편을 지속적으로 할퀸다.


 여행의 기분은 그것만으로 충분히 가라앉았다.


 일행들에게는 크게 내색하지 않았으나 그 작은 몸의 일부가 손상됨으로 인해 내 일상은 커다란 충격을 받고 말았다.

 


 밤이 되었다. 미리 예약된 숙소의 하얀 시트가 깔끔한 침대 위에 누워 잠을 청했다. 시차가 있어 바로 잠들기 어려웠다. 낮부터 깨진 이 때문에 지속적으로 긁힌 혀는 결국 표피가 찢어졌고 피가 조금씩 새고 있었다. 침을 삼킬 때마다 혀는 금니의 날카로운 끝단면과 마찰했고 그때마다  통증이 수반되었다.


 눈을 감고 누운 자리에서 잠은 오질 않고, 비록 통렬하지 않으나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 병원에서 치료하기 전까지 끝나지 않을 고통이라는 생각이 들자 두려움이 몰려왔다.


 어두운 밤 그 사소하지만 멈추지 않는 통증은 숨쉬기 어렵다는 느낌처럼 가슴을 죄어왔다. 조금만 참으면 금세 잠들 수 있을 거라는 자기최면을 걸어 보았다. 먹히지 않았다.


 공황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이쯤 되면 공황장애를 겪는 환자의 공포감을 잠시나마 느껴본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결국 눈을 뜨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불을 켰고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기로 했다.


 여전히 혀의 같은 부분에서 반복되는 고통이 느껴졌으나 눈이 어둠을 벗어나 빛을 만나자 공포감은 사라지고 말았다.


 안도감이 온몸을 감싸돌았으나 씁슬한 뒷맛이 얼룩처럼 남았다.


 어찌어찌 잠자리에 다시 들었을까.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블라인드 사이로 햇살이 비쳐들고 있었다.


그림: 카시아 더윈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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