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멀리 여행을 떠났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열흘이 넘는 휴가를 쓰게 되었는데
회사의 몇몇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가는 날까지 마음을 졸였습니다.
태어나서 가보지 못한 곳들을
여기저기 다니며 신기해하고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언제 다시 올까 아쉬워하며
사진을 담아내기에 여념이 없는
순간들도 많았습니다.
참 좋았던 것은
그 여행길에 마음에 맞는 친구 가족이
아침 점심 저녁으로 붙어 있었다는 겁니다.
함께 좋은 것을 구경하고
삼시 세 끼 밥을 같이 먹고
차를 타고 다니며 수다를 떨었습니다.
밤이 되어 하루가 저물 때는
숙소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도란도란 나누었습니다.
실은 마음이 많이 약해져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의 삶을 접고
낯선 땅으로 들어선 지
삼 년 하고 반이 넘어갑니다.
생각보다 빨리 잘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하는 직장의 동료들과
성당이나 테니스장에서 사귄 사람들과도
이 정도면 참 좋은 분위기 속에서
잘 지내고 있는 것이라고
흐뭇하게 혼자 미소도 짓곤 했습니다.
거대한 쓰나미가
예고도 없이
세상을 덮치는 것처럼
한 순간에
하지만
이런 부드럽고 평온한 마음이
무너지는 것은
흡사
거대한 쓰나미가 예고도 없이
세상을 덮치는 것처럼
한 순간에 벌어집니다.
어린아이처럼
새로운 곳에서의 삶을
찬양하고 마냥 좋아하던 나는
무방비 상태였습니다.
눈앞에서 폭탄이 한 방 떨어졌습니다.
경고도 없이.
그리고 연속하여
파괴력이 더 뛰어난 미사일이
내 몸을 강타했습니다.
처음 폭탄이 터진 후 정신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직장에서 가장 믿고 신뢰하던
그리고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로부터
너무나 갑작스럽게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질책을 받았습니다.
인정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감정에 치우쳐 있었고
누군가의 말을 마음을 열고 들을 귀가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폭탄이 떨어지고
미사일에 맞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내 일상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출근길은 여전히 평화로웠고
산과 들과 강과 바다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보여 주었던 그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조용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만 내 안의 세계가
변화했습니다.
처음엔 금이 가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틈새가 갈라지고
귀퉁이부터 무너져 내립니다.
빛이 가득하고
생동감으로 넘실대던 나의 세계는
어디로 간 걸까요.
자신감 넘치고
매력적인 웃음도 지을 줄 알던
나는 이미 이 자리에 없습니다.
대신에
불확실한 미래를 근심하고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며 번민하는 내가 보입니다.
하루의 많은, 아니 대부분의 분초를
그런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멈춰야 할 필요성
걱정은 가만히 놓아두면
바퀴벌레나 쥐처럼
걱정을 낳고 또 낳습니다.
본능적으로 걱정이 그렇게
번식하도록 놓아두면 안 된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런데 혼자서 하기엔 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번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천천히 그러나 나름 안정적으로
일구어가고 있다고 느끼던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차분히 마음속의 이야기를
친구 부부에게 들려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친구 부부는 내가 충분히 나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도록
내 눈을 응시해 주었고
말을 아끼며 귀를 기울여 주었습니다.
중간중간 추임새를 넣어 주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하고 싶었던 말들을
어느 정도 밖으로 꺼내어 놓았을 즈음
친구가 안타까운 마음과 따뜻함이
녹아 있는 얼굴빛을 보이며 말했습니다.
내가 처해 있는 위치와 역할이
정말 어려워 보인다고.
그런데 친구가 생각하기에
나에게 큰 문제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동시에 조심스럽게 한 가지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질책을 한 사람들이
감정적인 상태를 지났을 때를 살펴
한 번 정도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모드에 있을 때
나를 질책했던 이들에게 되물어
보면 어떻겠냐고 했습니다.
"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십시오.
제가 회사를 위해서 기여하는
바가 정말 그토록 보잘것없는
것인가요?
제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걸
압니다. 그 부분은 좀 더 노력해서
보완해나갈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제가 모든 것을 고려할 때
회사에 기여하는 부분보다
잘못하고 있는 부분이 크다고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
한 번 박힌 이미지의 무서움
사람이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원래 가지고 있던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다고
그 친구가 말했습니다.
한 번 박힌 이미지는 너무 강해서
설령 노력을 해서 실제 변화가
있었더라도 이미지는 바뀌지 않고
관성을 지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에 대한 질책도 혹시
어떤 계기로 고착화된 나쁜 이미지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는 거였습니다.
만일 그들이 나에게 쏟아부었던 질책과 불만이
이런 대화를 통해서 다시 확인된다면
틀림없이 어디에선가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계기로 인해 일시적으로
감정적인 비판을 한 것이었다면
차분한 나의 되물음을 듣고
혹시 자신들의 판단이 과한 것은 아니었는지,
잘 하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을
구분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가만히 그의 말을 들으며
머릿속으로는 그런 대화를 나누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지금까지의 관계와 그들의 성향으로
미루어 볼 때 이런 무거운 주제의 대화를
그들과 나누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을 해보는 것만으로
나는 숨이 더 잘 쉬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친구와 이런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앞으로 직장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일방적인 관계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야 할 것인지
고민이 컸습니다.
그러나 힘과 권위를 가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일방적인 수용의 태도를 가지지 않고
나의 목소리를 온당하게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실제 그런 행동으로 옮긴 것도 아닌데
생각만으로도 무언가 풀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번 여행은 이 하나의 수확만으로도
값진 의미가 있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잠시 일손을 놓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곳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보람된 시간이었겠으나
역시 여행은 예상하지 못했던
그 이상의 것을 선물해 준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다시 업무에 복귀한 지금
나는 불안과 혼돈에서 벗어나
좀 더 의연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만일 다시 폭탄을 맞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 해도
전처럼 그 포화를 일방적으로 받아내지 않을
작정입니다.
지금까지 내 마음속에서 차분히 생각했던 바를
표현할 생각입니다. 그들에게 나의 목소리를
온화하게 전달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