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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Feb 16. 2017

찬란한 빛이 건드리는 톤다 저수지

큐슈 북단 키타큐슈시의 숨은 명소


키타큐슈시 와카마츠구의 톤다 저수지
서쪽 하늘과 동쪽 하늘

  전 직장에 있을 때보다는 평일 저녁에 여유가 많은 편이다. 정시 퇴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치만 퇴근 후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잠시 쉬었다가 아기와 놀고 재우고 나면 실상 남는 시간이 여유롭지는 않다. (정시 퇴근을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 글을 읽으실 많은 분들께 한편으로 미안함을 가지는데, 토요일을 격주로 저녁까지 일하고 있음을 조금의 변명으로 삼고 싶다.)


 그리고 밤이 깊어가면 하루의 피로가 쌓여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더라도 오랜 시간 집중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해서 최근에는 차라리 아기와 일찍 잠이 든 후 그만큼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평소보다 1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면 그 시간을 이용해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하는 거다. 일어날 때는 좀 힘들지만 막상 세수를 하고 나면 어찌나 정신이 맑고 집중이 잘 되는지 기분이 참 좋다.


물오리떼가 한가로이 저수지를 산책하고 있다.

 어제 아침에는 그렇게 좀 더 일찍 일어나 번 시간을 톤다 저수지의 아침을 보는 데 쓰기로 했다.


 평소에 이곳은 퇴근하고 해가 질 무렵에 자주 방문하곤 하는 곳이다. 아침에 간 적은 아마 한두 번 있었을까. 해 질 녘에 가면 내 눈길은 서쪽을 주로 향하곤 했다. 사진을 찍고 놀랍도록 짙게 물든 노을을 감탄의 눈길로 쳐다보는 것이다. 그러나 아침은 반대였다. 태양이 뜨는 곳이 동쪽 하늘이기 때문이다. 


나뭇가지가 태양과 저수지 물결 위로 드리워진 태양 레이저 방향과 겹쳐 보이도록 담아 본다.


 사진을 잘 모른다. 그렇지만 어여쁜 풍경을 조우하면 어김없이 그 순간을 담고 싶어진다. 그냥 그 순간을 눈으로 즐기고 아무런 부산한 동작을 취하지 않는 것도 좋을 거다. 하지만 왠지 매번 나는 사진을 찍고 있는 거다. 아까워서인지 누구한테 보여 주고픈 마음에서인지.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고즈넉하고 싱그러우며 찬란한 자연의 풍경을 나 혼자 만끽하고 있는 것이었다.

 시간이 조금 더 넉넉하게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 얼마나 커다란 호사인가!

 마치 이 시간만큼은 이 드넓고 아름다운 곳이 나만의 정원이 된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바람이 잦아든 톤다 저수지의 수면 위로 파아란 하늘이 내려앉아 있었고,
그 속에는 흰 빛과 잿빛의 구름들도 섞여 있었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데칼코마니였다!



빛은 마술사!

 내 옆자리에서 일하는 후배는 자주 말하곤 한다. 사진은 빛의 마술이라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난 후에는 빛과 풍경의 관계에 대해 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태양이 당당히 하늘에 걸려 빛이 강렬할 때와 그 힘을 잃어 서서히 수평선 혹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며 빛이 황홀하게 변할 때 그리고 낮이라도 온통 구름으로 가려져 흐림과 칙칙함이 지배할 때의 세상은 어찌 그리도 천지차이가 되는 걸까. 생긴 건 똑같은 데 말이다.


 이제 해가 점점 길어져서 조금만 일찍 나오면 어제 아침과 같은 풍요롭고 뿌듯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곳 키타큐슈에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쁨들 가운데 하나다.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어제는 평소보다 좀 더 그런 느낌이 더 강하게 일었다.


 지금 나는 또 한 번의 중요한 인생의 결단을 앞두고 있다. 어쩌면 그 결과에 따라서 이 소중한 기쁨 하나가 사라질지 모른다. 이곳에서 누리던 하늘과 바다, 산과 들과 강 그리고 소박하고 깨끗한 거리와 집들. 매일 당연한 듯 누려왔던 이 풍경들이 어쩌면 마음속 앨범 안으로 고이 들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요 몇 주 동안 매일 머리와 마음속에서 설탕 몇 스푼이 순식간에 부풀어 올라 커다란 솜사탕이 되어버리곤 한다.


   다시 평온한 마음을 찾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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