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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Feb 22. 2017

운수 좋은 날

대리 기사 에피소드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를 재구성해 보았다.



 오랜 친구와 기분 좋게 술 한 잔을 나누고 대리 기사를 불렀다.  


 내 차의 뒷좌석에 앉아 조용히 새로 나온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강남에서 출발한 차는 한밤의 여유로운 거리를 뚫고 시원스레 달리고 있었다. 비록 게임에 빠져 있었지만 차가 안 막히고 잘 달리고 있다는 정도는 곁눈질과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한 15분 정도 지났을까. 차가 한강을 건너기 시작하는 거였다. 우리 집은 분명 한강을 건널 필요가 없는 위치에 있었는데 말이다.


 기사에게 한 마디 해야겠다 싶었는데 이미 다리를 건너고 있는 중이었고 괜히 한밤 중에 대리 기사와 길을 어떻게 가는지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기가 싫어서 일단 참았다.


 잠시 게임에 다시 열중했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차가 어떤 길로 가는지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길과 다른 길로 가는지 주의깊게 관찰했다.


 하, 이번에는 한강을 건넌 후 한동안 주행을 하다가, 돌아가야 하는 다리를 지나쳐 한참 더 가는 게 아닌가?


 이거 더 이상 안되겠다 싶어서 대리 기사한테 따지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 순간 차가 다리 하나를 타고 한강을 다시 거꾸로 건너기 시작했다.  그 때 나는 속으로 아차! 하는 생각이 뇌리를 섬광처럼 스쳤다.


 방금 전까지는 돌아가야 하는 다리를 일부러 지나쳐 한참 더 가는 걸로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착각을 했다. 즉, 대리 기사가 택한 다리가 틀린 게 아니었다. 비록 한강을 건넌 것은 잘못이지만 건넌 다음에 다시 돌아오기 위해 선택한 다리는 기사가 제대로 탔다는 걸 퍼뜩 생각해낸 것이었다.


 참기를 잘 했다. 괜히 한 마디 했다가 오히려 나만 바보가 될 뻔한 것이다.


 그 뒤로도 괜히 마음이 쓰였고 기사가 왠지 길을 멀리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아까처럼 확실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딱히 뭐라 꼬집어 말하기는 어려워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쭈욱 길을 가다가 대리 기사가 입을 열었다.

" 저기 손님, 제가 실은 길을 타다가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한강을 건너가 버렸네요. 그래서 있다가 좀 미리 미터기를 끊을게요. 3천원 정도 제해 드리겠습니다. "


 어라? 이 기사 참 양심적이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말했다.

"기사님, 실은 저도 알고 있었는데 말은 안 하고 있었어요. 먼저 기사님이 말씀해 주셔서 넘 감사하네요."


 웬걸 한밤 중에 대리 기사를 부른 내 차속에서 그 짧은 시간에, 기분이 나빴다가 더 부아가 치밀었다가 순간  안도했다가 또 불안불안 했다가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가 하면서 내 심리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어쨌든 마지막으로 그 양심적인 기사가 스스로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미터기를 일찍 끄겠다고 말한 덕분에 나는 참기를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하며 남은 길을 달렸다.


 여자가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낯선 남자 특히 손위의 남자들과 본의 아니게 얽히는 갈등 상황에서 심한 모멸감이 느껴지는 대우를 당할 때가 가끔 생긴다.


 예를 들면, 운전을 하다가 좁은 골목길에 들어섰다가 좀 멀리서 마주오는 차가 보여 한쪽에 붙인 적이 있었다. 그 차가 먼저 지나가도록 배려한 거였다. 그런데 그때 뒤따라 오던 차가 내 차를 쓰윽 지나치고 나가다가 결국 맞은편 차와 길에서 맞딱드리게 되었다.


 분명히 그 차가 다시 차를 뒤로 돌려나가는 것이 이치에 맞다고 생각했는데 차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다가 차창이 열리더니 나더러 차를 빼라는 퉁명스런 목소리가 들렸다.


 말이 안되는 상황이라 여기고 차분하게 그 중년 남자에게 말했다. 내가 맞은편 차를 보고 일부러 옆으로 차를 붙이고 기다리고 있던 상황이었다고. 그러니까 아저씨가 차를 돌려 나가 주시는 게 맞다고.


 그때 나는 어디서 들어보지도 못한 신기한 욕들을 쇼핑카트 한아름 담은 물건들처럼 실컷 들어야 했다. 적반하장이었지만 물리적으로 힘이 센 남자는 내가 연약한 여자라는 이유로 이치에 맞지 않는 무차별 인신공격을 가한 거였다.


 이런 생각들을 평소에 가끔 하던 나였기에 한밤 중에 낯선 남자 대리 기사와 가급적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결국 잘 참아냈고 흐뭇한 마음으로 하루를 끝내고 있었다.


 밤길을 쌔앵하니 달리는 차는 금세 집 근처까지 다달았다.


 '근데 미터기는 언제 끄는 거지?'


 대략 집에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결국 미터기는 집 앞의 골목에 다 와서야 내려갔다. 미터기가 내려가고 차가 집앞에 멈추기까지 1분 쯤 걸렸을까?


 '앗, 이 속은 것 같은 기분은 뭐지?'


 하지만 대리 기사와 나는 별 일 없었다는 듯 잘 헤어졌고 나는 터덜터덜 긴 하루를 마감하며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고 있었다.


 

춘천의 한 지인께서 제공해 준 소양강의 해질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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