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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Mar 03. 2017

사랑하는 사람을 울리지 마세요.

시간만이 그들을 만질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지난해 '바다에 지는 별' 작가님과 공동 연재 중인 매거진 'MARVINS ROOM'에 실렸던 글입니다. 개인 매거진들을 다시 정리하면서 매거진 '네 옆에서 같이 울게' 안에도 싣게 되었습니다. )

  

모지코의 등대가 태양을 품었다.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그림을 썩 잘 그리는 딸이 하나 있었지요. 딸은 태어나서 무언가를 종이 위에 그릴 수 있는 나이가 되자 매일매일 어마어마한 그림들을 쏟아 내었습니다. 그 그림 속에는 사랑이 넘치는 가족들의 모습이 많이 담겨 있었죠. 물론 딸이 사랑해 마지않는 예쁜 소녀 캐릭터들도 많이 등장했습니다.


  딸은 아빠를 깊이 사랑했습니다. 아빠는 달리기를 무척 잘 했는데 학교 운동회 때 아빠 달리기를 하면 경주마처럼 달리는 아빠는 너무나 멋져 보였습니다. 또 딸이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때로는 감미로운 노래를 때로는 성악가처럼 우렁찬 노래를 멋지게 불러주곤 했습니다. 딸을 위해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노래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요.  퇴근 후 돌아오면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몸으로 놀아 주었고 안아 주고 업어 주고 비행기를 태워 주었습니다. 딸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서 더욱 깊이 아빠를 사랑했고 아빠가 자랑스러웠습니다.


  아빠는 딸에게 맑고 높은 하늘이었고 든든하고 위대한 산이었습니다. 자연이 늘 변함없이 우리 곁에 존재하듯 그렇게 아빠는 영원히 딸의 곁에서 딸을 지켜 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아빠는 회사의 명령을 받아 먼 곳으로 일을 하러 떠나게 되었습니다. 딸도 엄마와 함께 몇 개월 후에 아빠가 계신 곳으로 함께 살러 갔습니다. 낯선 곳에서의 삶은 조금 힘들기도 했지만 아빠와 엄마가 함께라면 어디든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딸은 땀을 많이 흘리기도 했지만 너무나 즐거운 물놀이를 자주 할 수 있어서 무척 좋았습니다.


  낯선 곳의 사람들은 딸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습니다. 마치 노래를 하는 것도 같고 장난을 치는 것도 같고 아무튼 세상은 참 재미있는 곳이라 생각했습니다. 아직 그 말이 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우리말을 배운 것처럼 언젠가는 이곳에서 그 새로운 이상한 말을 배울 수 있을 거라 막연히 기대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또 조금씩 새로운 곳에서 적응해가고 있을 때 새소식이 들렸습니다. 엄마가 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해서 공부를 하러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가기로 한 겁니다. 엄마가 무슨 공부를 하러 가게 되는 건지는 잘 몰랐지만 딸은 다시 친구들이 있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갈 수 있다니 기뻤습니다.


그런데 슬픈 일이 생겼습니다. 아빠와 함께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빠는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사는 이곳에 남아서 몇 년은 더 일을 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아빠는 자주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딸을 만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해 주었습니다. 딸은 아빠를 믿었지만 막상 돌아갈 날이 다가오자 마음이 우울해졌습니다. 하지만 아빠 엄마가 걱정할까 봐 씩씩한 척 행동했습니다.


  마침내 그리운 곳으로 엄마와 함께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딸은 이상한 곳에서 적응한 시간보다 훨씬 더 빨리 적응하여 또 즐겁게 살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랑하는 엄마가 옆에 계셨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예전처럼 자기를 보물단지로 생각하시며 함께 해주었기에 딸은 참 행복했습니다.


  역시 우리나라가 살기 좋다고 어린 딸은 생각했습니다. 이상한 말도 들리지 않고 날씨도 딱 살기 좋았습니다. 친구들도 쉽게 사귈 수 있었고 텔레비전에서도 재미있는 방송들이 매일 선물처럼 나왔습니다. 정말 다 좋은데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습니다. 엄마가 걱정하실까 봐 자주 말하진 못했지만 아빠가 보고 싶었습니다. 집에 가족들 사진을 걸어 두었는데 다른 가족들은 사진과 사람이 다 집에 있는데 아빠는 사진만 덩그러니 걸려 있고 사람은 여기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아빠는 몇 달에 한 번씩 출장이나 휴가로 가족들을 방문했습니다. 아빠가 오실 때면 딸은 감출 수 없는 행복한 미소가 마구 번져 나오곤 했습니다. 아빠와 함께 몸으로 놀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고 아빠의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정말 내색은 안 하려고 노력했지만 아빠가 사 오시는 선물들이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은 매번 왜 그렇게 짧을까요. 아빠는 며칠이 지나면 다시 그 낯선 곳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른 뒤 딸은 아빠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이제 외국에서 그렇게 일하셨으면 돌아오세요. 우리랑 같이 살아요."


 "응, 아빠가 지금 당장은 돌아갈 수 없지만 임기가 끝나면 돌아갈 거야. 조금만 기다려 줘, 우리 딸."


  딸은 힘들지만 기다렸습니다. 아빠가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때까지 말이죠. 그런데 아빠는 딸이 그렇게 말한 이후 몇 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이상한 말을 쓰는 나라에서 다른 나라도 가게 되었습니다. 딸은 너무 불안해졌고 완벽했던 우리 가족이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았습니다.


  아빠가 다시 며칠 정도 돌아오셨을 때 딸은 오랫동안 가슴에 품었던 말을 꺼냈습니다.


 "아빠, 이제 그만하고 돌아오세요. 아빤 일이 좋아요? 내가 좋아요? 이제 우리 같이 살아요, 네? 아빠? "


 "우리 딸, 아빠도 딸하고 너무 같이 살고 싶어. 근데 지금은 좀 힘들어. 아빠가 해외에서 일하는 게 더 조건도 좋고 아빠 경력에도 이롭고 말이야. "


 "아빠, 우리나라도 좋은 회사들 엄청 많은데 왜 맨날 가족하고 떨어져서 해외에서 일해야 하는 거죠? 핑계 대지 말고 빨리 돌아오세요! 안 그러면 저 화날 거예요."


 아빠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딸에게 무언가 약속을 하고 싶었지만 지킬 수 없는 약속이라는 걸 알고 말을 아꼈습니다. 딸도 슬펐고 아빠도 슬펐습니다. 이런 부녀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마음도 슬프기 그지없었습니다.


 몇 년이 다시 흘렀습니다. 몸과 마음이 부쩍 커버린 딸은 알게 되었습니다.


 아빠가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없으리라는 걸.


 가족들 누구도 알려준 적이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세상은 더 이상 아름답고 즐거운 곳이 아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족이라 여기며 살았던 딸은 마음 깊이 아주 깊이 심연까지 상처를 입었습니다. 딸이 이런 상처를 입은 것은 불과 열 살이 되던 해였습니다.


  딸과 손녀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졌습니다. 그리고 딸의 상태를 전해 들은 아빠의 마음도 깊은 구렁 속으로 내팽개쳐져 버렸습니다. 특히 딸을 옆에서 매일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은 무너지고 또 무너져서 자기 한 몸조차 가눌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시간은 가족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바라보며 계속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치며 말을 건넵니다.


 ' 이 가족들에게 내가 필요해. '


  시간은 오늘도 딸과 엄마와 아빠 옆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시간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시간은 그들 옆을 지나칠 때마다 부드러운 손길로 한 번씩 쓰다듬고 지나갑니다. 그 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깊이 베였던 상처를  매일매일 한 번씩 스르륵 만지고 지나갑니다.
  아직은 시간만이 그 상처를 만질 수 있습니다.
섣부른 존재들의 상처 만지기는 종종 상처를 덧내곤 하니까요.



북쪽 바다와 북쪽 하늘이 황금빛으로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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