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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Mar 01. 2017

내성적 인간과 외향적 인간

" 안녕하세요?

떠올리면 '참 멋진 사람'이라 기억되길 바라며 사는 남자 이훈주입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마음속으로야 이런 멘트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막상 입 밖으로 표현하면 참 오글거릴 수 있는 말이었다. 이 멘트는 대학 시절 내가 들고 다니던 삐삐의 인사말로 녹음되어 있던 것이다. 삐삐 세대가 아니라면 삐삐에 인사말을 녹음하며 느끼던 그 '쑥스러움 반, 드러내고픔 반'의 감정을 이해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


  사람 좋아하는 성격에 어떤 모임에 가든 대부분 내가 먼저 사람들에게 다가섰고 상당한 수다로 사람들을 사귀곤 했다. 태어나기를 아마도 외향적인 성격으로 태어난 것으로 자타가 인정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어떤 인간이든 외향적이기만 하거나 내성적이기만 한 경우는 없다고 본다.


 나 역시 사회관계를 맺는 모습을 겉으로 볼 때 상대적으로 매우 외향적인 인간으로 분류될 수는 있어도 내성적인 모습 또한 적지 않게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외향과 내성을 가르는 기준은 무얼까?


 흔히 사람들이 "누구는 아주 외향적인 성격이야."라거나 "누구는 꽤 내성적이야."라고 평가할 때 그 기준은,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는가 아닌가' 혹은 '남에게 먼저 말을 걸고 표현하는 편인가 아닌가'와 같은 데 달려 있는 듯 보인다. 이와 같은 판단 기준도 어느 정도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의 외향적 성격과 내성적 성격의 기준을 이렇게 말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즉, '이 사람은 사람들과의 만남 또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에너지를 얻는 편인가? 아니면 혼자 있으면서 에너지가 보충되는 편인가?'


 물론 극단적으로 어느 한쪽의 조건에서만 에너지를 충전하고 기쁨을 느낀다고 볼 수는 없다. 소위 외향적인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좋아도 너무 많이 만나면 지치게 마련이고,  내성적인 사람이 혼자 있는 게 좋다 해도 그 시간이 너무 많거나 길어지면 외롭고 힘들 수 있는 거니까 말이다.


 확실히 유년 시절부터 청소년기를 거쳐 20대까지의 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여러 사회적 관계를 맺으면서 삶의 희열을 느끼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비중이 높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30대에 들어서면서 결혼과 함께 육아를 하고 경제 활동을 시작하면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즉, 혼자 있는 시간이 좀 더 많이 필요했고 그 시간을 통해 고갈된 에너지가 보충되는 경험이 점점 늘었던 것이다.


 40대에 들어선 지금의 나는 어떤가?


 아마도 나를 안다고 하는 지인들은 대개 아직도 나라는 인간이 매우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평가할 것 같다. 스스로도 그런 면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내성적 면이 조금씩 강해지고 있음을 감지하게 되었다. 어쩌면 나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도 나이 들어감에 따른 인생의 각양각색의 경험을 통해서 변해가는 것이 당연하다 말할 수 있겠지만 사람마다 틀림없이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지니 형님 사시는 와잇스톤 브릿지
 그래도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성적인 모습이 가미가 되었다고 해도 생각해볼 만한 흥미로운 점이 있다. 그것은 혼자 있으면서 에너지를 채우고 다시 활동할 힘을 얻는다 해도 가만히 혼자만의 시간을 들여다보면 완전한 의미의 혼자는 아니라는 점이다. 혼자만의 시간에 나는 책을 보고, 글을 쓰고, 소셜 네트워크 활동(페북, 밴드, 카톡 등등)을 하고 심심찮게 전화를 걸곤 한다. 그런데 이런 행위들이 혼자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책을 통해 저자와 소통을 하고, 글을 통해 독자에게 내 이야기를 전달하고 피드백을 얻으며 공감을 구하고자 한다. 소셜 네트워크 활동은 말할 것도 없다. 그냥 잠을 자고 혼자 운동하는 정도가 정말로 혼자만 하는 활동이 아닐까 싶다.


 직장 생활에 지치고 수많은 관계 속에서 치인 내가 혼자만의 시간을 찾아 고요하게 머무는 시간조차도 나는 대부분 사람과 함께 하는 것임을 생각해 본다.


 누군가 인간(間)이라는 말에 대해 쓴 것이 기억난다. 왜 사람을 사람 인자에 사이 간자를 붙여 '인간'이라고 불렀을까. 인간이란 직역하면 '사람 사이'라는 뜻이 된다. 사람 사이라고 써놓고 그것을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어휘가 탄생하던 시점에서 이미 사람이란 '사람 사이'에서 비로소 그 존재 의미가 있다는 것을 고대의 사람들도 알았다는 것이다.


 외향적이던 내가 나이가 들면서 내성적인 면이 가미가 되었다고 해도 두 가지 나 모두 사람 사이에서 존재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노래를 부르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무언가를 생각하며 지내는 혼자만의 순간에도 나는 완전한 의미의 혼자가 되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걸 원하지도 않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모두가 잠든 집에서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이 글이 완성되고 브런치에 올려진 후 누군가에 의해 읽힐 순간을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 고맙게도 댓글이라도 달아 준다면 기쁜 마음으로 회신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인연'이라는 매거진을 열었는데 예상치도 못하게 수십 명의 작가분들이 짧은 시간 안에 동참해 주셨다. 이미 알고 있던 분들도 계셨지만, 매거진 '인연'을 시작한다고 글을 올린 후에 처음 만나는 분들이 반이 넘는다. 기쁘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요즘 매일매일, 서로 너무나 다른 환경에서 다양하기 그지없는 필체와 내용으로 올라오는 소중한 글들을 읽으며 새로운 관계와 특별한 인연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20대의 삐삐 인사말 멘트처럼 여전히 사람들 속에서 머물고 싶고 나와 관계를 맺는 사람들에게 나를 떠올리면 '참 멋진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내가 사는 일본 와카마츠의 톤다 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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