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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Dec 21. 2015

여행으론 잘 안 가는
미시간 여행기 (1)

미시간 도착과 오대호의 매킨나 아일랜드

매킨나아일랜드    



▶ 기간: 2015년 9월 19일 오전 10시 반 디트로이트공항 도착   

~ 9월 26일 오후 3시 반 디트로이트 공항 출발    

    

장장 6개월을 기다렸다.    


  미시간에 놀러 가기로 한 것은 아마도 올해 초였을 것이다. 올초에 달력의 쉬는 날을 찾아보니 9월에 집중적으로 쉬는 날들이 있었다. J에게 올초부터 놀러 가겠다고 운을 뗀 후 비행기표를 산 것은 6월 말경이었다.  


  98년 제대 후에 미국을 한 번 놀러 가려고 비자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사정이 생겨 가보지 못했는데 무려 17년 만에 결행에 옮기게 된 것이다.  


인천-서울을 오가는 델타항공

   

디트로이트 공항에서의 해후    


  비행기가 디트로이트 국제공항 활주로에 무사히 착륙하고 움직임을 멈춘 후 휴대폰을 켰다. 카톡으로 도착을 알리자 얼마 후 J가 회신했다. 면허증을 다른 곳에 두고 와서 그걸 가지러 갔다가 오면 조금 늦을 수 있다고. 하지만 정작 우리가 수속을 마치고 나오자 그는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 인증샷! 반갑고 기쁜 마음으로 포옹을 한 후 우리는 함께 사진을 찍었다. 공항을 나서며 보이는 하늘은 약간 흐려 있었다. 하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아마도 J가 우리의 의전을 위해 하늘과 네고한 것 같았다.   

 

디트로이트 공항 내부

 

South Lyon    


  공항에서 J의 집을 향해 가는 길은 아직 우리가 미국이라는 곳에 왔다고 느끼기에는 그다지 큰 반향을 주지 않았다. 다만 길에 보이는 차들이 현대차나 일본차들보다는 GM, Ford 등 덩치가 커다란 미국산 위주라는 데서 짐작을 할 수 있는 정도였다고나 할까. 하지만 시원스럽게 뻗은 고속도로와 길 양옆으로 퍽이나 여유롭게 널찍이 자리잡은 낮은 건물들 그리고 높고 곧게 뻗어 자란 나무들을 보면서 뭔가 다른 곳에 와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삼사십 분 남짓 지나고 마을로 들어섰다. 입구 쪽에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인 집터를 지나 들어선 마을은. 아! 하는 작은 탄성을 내뱉게 하고 있었다.   


미시간 주택가 풍경


  곡선으로 길게 이어지는 메인 도로 양옆으로 대부분 2층으로 지어진 독립 가옥들이 보였다. 마치 사회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 같은 것이 동네 풍경에서 느껴졌다. 눈길 가는 어느 집들에나 초록빛 잔디가 깔려 있었는데 이 즈음 하늘은 맑아져 파아란 하늘빛과 하얀 구름 그리고 초록빛 잔디밭이 그야말로 눈이 시리도록 선명한 빛의 어울림을 발하고 있었다.     



시차 적응   

 

  J는 낮밤이 뒤바뀌는 시차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도착한 첫날 오자마자 가만히 있지 말고 계속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집에서 먼저 점심 식사를 했는데 J의 강력한 주장으로 J의 처, S가 김치찌개를 해주셨다.   


  이미 한국에서 한차례 뵌 적이 있는 S는 일단 170센티가 넘는 늘씬한 키와 서글서글하고 서구적인 얼굴을 한 미인이었다. 이 미인의 손을 거쳐 미국 땅에서 만들어진 김치찌개는 냄새부터 감동이었다.   


  사실 미국에 와서 한식을 먹는 걸 전혀 기대한 바 없었는데 도착하자마자 환대를 받은 것이다. 정말 기대하지 않았지만, 장시간 비행과 느글느글한 식사를 했던 터라 막상 제법 맵싹하고 시원한 국물을 대하니 입이 개운해지고 속이 확실히 풀리는 기분이었다. J의 탁월한 선택 승!    

 


친구네 집은 게스트 하우스    


  차고로 들어와 들어선 집은 그야말로 아방궁이었다. 일층에는 부엌과 응접실이 넓고 기다랗게 위치해 있었는데 응접실 한쪽 벽면에는 벽난로가 있었고 그 옆 위쪽에는 소파에 앉아 볼 수 있는 커다란 평면 텔레비전이 걸려 있었다.  


 싱크대는 커다란 기역자로 되어 있었고, 부엌 왼 편으로는 식탁이 놓여 있는 개방된 형태의 공간이 있었다. 그 바로 옆으로는 피아노가 놓여 있는 또 다른 공간이 뜰로 면한 창문까지 이어져 있었다.   


  부엌과 완전히 반대쪽에는 응접실 한쪽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방이 하나 있었다. 같이 놀러 간 친구 Y와 내가 정말  부러워했던 방이었는데 S가 Man’s Cave라고 부르던 J의 서재였다. 여기서 J는 회사일도 보고 개인적인 용무를 혼자서 방해받지 않고 할 수 있었다.   


  서재의 책상 앞으로는 운전대가 달린 게임기가 놓여 있었는데 이건 드라이빙 시뮬레이션 게임기구였다. 커다란 오락실 같은 데 가면 볼 수 있는 그런 드라이빙 게임기였고 Y와 나는 재미 삼아 한두 번 도전해보았다. 핸들이 민감하여 코너링할 때 컨트롤이 쉽지 않았다.   


  S의 안내로 게스트룸을 배정받았다. Y네 부부는 마치 호텔처럼 샤워부스가 있는 게스트룸을 쓰기로 했고 나는 두 딸의 방 중에서 작은 딸인 A의 방을 빌리기로 했다. 두 딸들의 방은 하나의 욕실을 사이에 두고 있었는데 욕실 양옆으로 문이 달려 양쪽 방에서 다 사용이 가능한 구조였다. A한테 미안했지만 나는 A의 침대에서  며칠 밤을 아주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다.     



실내 체육관 같던 J네 교회 예배당    


  다음 날 오전에 우리는 J네 가족이 다니는 교회에 예배를 보러 갔다. 도착한 곳은 미션스쿨과 이어져 있는 커다란 교회였다. 주차장에 차를 대는데 어디가 끝인지 감이 안 잡히는 커다란 주차장이었다.   


  교회 입구에 들어서자 하얀 사람, 까만 사람, 노란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서 반갑게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치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장면을 입체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카투사 복무 시절 미군 캠프 안에서 축소된 미국 마을과 지역사회의 모습을 경험하긴 했으나 본토 와서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교회 예배당 안으로 들어서자 높다란 천장과 가로 세로로 널찍한 공간이 펼쳐졌다. 예배당 앞쪽에는 단상이 넓고 길게 설치되어 있었고 그 오른편 위쪽에는 사오십 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성가대 단원들이 몸을 자연스럽게 흔들며 찬양을 하고 있었다.   


  내가 만일 미국에 살게 된다면 틀림없이 성가대 활동을 하게 될 것이다. 성가대 단원들이 사오십 명은 족히 되어 보였다. 모두들 여유롭고 흥겨운 몸짓과 표정을 지으며 반주에 맞춰 찬양의 목소리를 맞추고 있었다.      

  

 

매킨나 아일랜드    


  그곳은 파아랗고 하아얬다. 미시간의 9월 날씨가 원래 이런지는 잘 모르겠다. 선글라스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나는 이 낯설고 아름다운 대지에 쏟아지는 눈부시고 찬란한 햇살을 너무도 생생히 목도하고 체감했다.  

 

  아이들처럼 들뜬 모습으로 배에 오른 우리들은 바다와 전혀 다르지 않은 호수의 물결을 헤치고 나아가며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우리들 뒤편에 앉은 맘씨 좋은 아저씨가 J부부, Y부부 그리고 나를 함께 앵글에 담아주었다.  

이십여 분 정도 지났을까. 과연 배가 정박한 곳의 풍경은 우리나라, 일본, 중국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이국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배가 도착하면 보이는 매킨나 아일랜드 입구


  이 섬 둘레에 이어지는 아스팔트 도로에는 차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말과 마차였다. 마치 미 서부영화 세트장을 연상시키는 건물들 사이로 덩치가 커다란 갈색빛과 검은빛 그리고 간혹 하얗고 까만 말들이 마차를 끌고 따박따박 말발굽 소리를 내며 거닐고 있었다.   


  말들이 지나갈 때면 특유의 냄새가 났는데 아마도 말 배설물과 몸냄새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게다가 이 녀석들은 마차를 끌고 나아가면서 동시에 뒷구멍으로 푸덕푸더덕 하며 똥을 한 바가지씩 질러놓고 가는 것이었다. J의 설명에 따르면 하도 자주 싸기 때문에 이 배설물을 치우는 전담 미화원들이 있다고 했다. 길에는 똥을 치우고 남은 자국들이 군데군데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곳은 결코 지저분한 곳이 아니었다. 길거리 상점과 집들은 하나같이 단층 혹은 2층 집들로 높은 건물은 단 한 개도 보이지 않았는데 하얀색 혹은 노란색 또는 베이지색 등으로 깔끔하게 페인트칠 되어 있었고 오밀조밀 가지런히 조화를 이루었다.  


  우리는 자전거를 빌렸다. 나와 J는 일인용을 Y부부는 이인용 자전거를 대여했다. 이토록 멋진 오대호의 파아랗고 하얗고 눈부신 섬에서 우리는 8마일에 달하는 섬 둘레를 자전거로 일주하기로 한 것이다. 친구들의 모습은 말 그대로 들뜬 아이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고 나의 몸과 마음 상태도 한없이 가볍고 즐거움에 가득 차 있었다.   

  섬 둘레 아스팔트 길은 대체로 경사 없이 평평대로로 이어져 있어 자전거 타기엔 안성맞춤이었다. 네 사람이 탄 세 개의 자전거가 바다와 같은 호수가 보이는 도로를 따라 그림같이 달리고 있었고 우리들의 가장 행복한 인생의 한 순간이 그렇게 흐르고 있었다.   


  초록빛 잔디밭이 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곳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 해안도로와 같이 이어져 있는 그곳의 여느 둘레길과 달리 그 잔디 앞의 호숫물은 정말 산중의 호수 같은 느낌을 주었다. 잔잔한 물결이 야트막하게 찰랑이고 있는 호숫가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물가를 바라보았다.  

 

  윤슬이 보였다. 정말 강렬하게 쏟아지는 햇빛에 비치어 반짝반짝 빛나는 잔물결이 감동스레 느껴졌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 친구들이 뒤에서 사진을 찍고 노는 사이 하염없이 윤슬을 바라보았고 사진에 담았다.   

  딸 하은이의 이름을 지을 때 나는 이메일로 친구들 수십 명에게 미리 준비한 예비 이름들을 보내 투표를 받았다. 그때 최종 결선에 오른 이름 중 하나가 윤슬이었다. 두 이름의 인기는 막상막하였는데 마지막에 하느님의 은혜라는 의미의 이름인 하은이로 최종 결정했다. 비록 하은이로 결론이 났지만 아직도 ‘윤슬’이라는 이름에 대해 약간의 미련이 남는다.   


퍼지 아이스크림  


  이곳 매킨나 아일랜드에는 퍼지라는 디저트가 유명했다. 초콜릿 덩어리처럼 생겼는데 맛은 초콜릿보다 훨씬 달았다. 이것만 먹으면 아마 입이 달아서 어떻게 될 것 같았다. 우리는 아이스크림 집으로 들어섰다.   


  키가 크고 조금 덩치가 좋아 보이는 아가씨가 큼지막한 눈을 굴리며 매대 앞에 서있었다. 이 언니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아이스크림을 퍼주고, 혼자 있는 동안에는 연신 뭔가 흥얼대고 있었고 심지어 우리가 가게를 나선 다음에 윈도 안을 보니 가게 안에서 춤을 추며 테이블 정리를 하는 게 아닌가! 하, 이 순수한 젊음이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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