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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Mar 23. 2016

여행으론 잘 안 가는
미시간 여행기 (2)

Sleeping Bear Dune & Lake of Michigan

지난번 미시간 여행기 일편에 이어 씁니다. ^^

                                   *미시간 여행기 1편 링크는 아래편에

                                   https://brunch.co.kr/@ndrew/22




 매킨나 아일랜드를 방문하고 돌아온 저녁에 우리 일행은 이탈리안 식당에서 피자로 저녁을 간단히 먹었다. 미국에 와서 먹은 피자는 우리가 평소에 먹던 피자와는 달리 어마어마어마하게 짰다. 마치 소금통을 실수로 놓쳐 음식 위에 소금을 쏟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친구들과 머나먼 이국땅에서 함께 하는 특별하고 소중한 저녁을 방해하기엔 짠 피자도 역부족이었다.     


 저녁을 먹고 J가 미리 예약해 놓은 호숫가의 한 호텔로 가서 체크인을 하고 짐을 대충 푼 우리는 정말 바닷가와도 같은 호숫가 모래사장으로 나섰다. 해변이 아니니 호변이라 해야 할까? 그러나 몇 번을 둘러보아도 그곳은 바다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Lake of Michigan 전망대
매킨나 아일랜드 가는 선착장 주변 미시간 호숫가 동틀 녘


 모래사장에는 간이침대가 여러 개 놓여 있었다. 미시간 호수의 9월 밤은 바람이 비교적 쌀쌀했다. 하지만 언제 또 우리들이 함께 이런 낭만을 누릴 수 있을까 싶어 시커멓게 파도치는 밤 호수를 바라보며 간이침대에 누웠다. 그날 밤 호변 모래사장에 누운 우리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지금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살갗을 스치는 찬 바람과 광활한 호숫가의 파도 소리, 호수 주변을 따라 늘어서 있는 호텔들에서 희미하게 비치는 불빛 그리고 옆에 누워 있는 친구 둘의 공존감. 이런 느낌들만은 몸이 더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친구 J는 이전에 이 호텔에 묵었던 경험이 있어 시설과 주변 지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호텔의 자쿠지도 J는 이미 알고 있었는데 중년의 남자 셋은 뜨거운 물과 공기방울이 뿜어져 나오는 대형 자쿠지에서 호사를 누렸다. 시간이 이미 꽤 늦어서 그랬는지 가로 약 3m 세로 약 10m 정도 되는 큰 욕조에 몸을 담근 우리는 따뜻한 수온을 온몸으로 누리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나를 포함하여 J와 Y 모두 워낙 남자들 치고 이야기하길 좋아하는 축이라 도대체 욕조에 들어가 얼마나 오래 떠들었는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마치 수학여행 온 고등학생들 마냥 이국적이고 낯선 곳에서의 특별한 분위기에 들떠 있었고 취해 있었던 모양이다. 


자쿠지 옆 수영장

  꽤 오랜 시간 자쿠지 타임을 즐긴 우리는 각자 호텔 방으로 돌아가 쉬었는데 Y 부부가 한 방을 쓰고 J와 내가 다른 한 방을 같이 쓰게 되었다. J와 나는 각자의 침대에 다리를 쭈욱 뻗고 누웠지만 바로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동창인 우리는 졸업 후 20여 년이 지난 뒤에야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만났다. 그 후로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이렇게 미국 땅까지 와서 여행을 함께 하게 되었는데, 이 사실이 못내 믿기지 않는 듯 신기하기도 하고 깨알같이 기쁜 감정에 사로잡히게도 했다. 


  그날 밤 우리는 자쿠지에 이어 수다 속편의 시간을 길게 가졌는데 J가 20대에 미국으로 건너와서 어떻게 대학 생활을 했고 어떻게 미국 사회에서 적응해 가며 지금까지 살아왔는지 구체적이고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음 날 일정이 없었더라면 아마 그날 밤의 이야기는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밤새도록 이어졌을 것 같았다.      


●Sleeping Bear Dune


 J가 매킨나 아일랜드에 이어 회심의 행선지로 안내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위에서 바라보면 마치 겨울잠을 자는 곰의 모양 같이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하늘에서 바라볼 기회가 없어 실제론 어떻게 생겼을지 모르겠다.


  모래 언덕 아래에는 널찍한 주차장이 있었다. 일행 네 명은 모래를 밟기 전에 주차장 옆 모래 언덕이 시작되는 부근의 벤치 옆에 양말과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두었다. 처음엔 신발을 잃어버릴까봐 가지고 가려던 일행은 내가 귀찮아서 두고 간다고 하자 잠시 주춤하다 여기서 누가 신발을 훔쳐가랴 하는 맘으로 함께 신발을 놓아두고 드디어 모래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발이 좀 아플까 하는 걱정이 무색하게 모래알이 부드럽게 발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느낌이 좋았다.  서서히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Y가 자기는 저질 체력이라 이걸 다 올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끌탕을 했다. 하지만 그건 말뿐 어떻게 이 이국적이고 멋들어진 곳을 오르지 않을 수 있으랴.

 

  아래에서부터 보이는 언덕 위로 올라가자 다시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랫길이 하늘길과 맞닿아 왼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미 우리보다 훨씬 앞서 트래킹 코스를 돌고 돌아오던 행인들은 언덕을 올라와서 숨을 헐떡이는 우리를 보며 빙긋이 가진 자의 여유 같은 미소를 보인다. 그리고는 한 마디 휙 던지며 유유히 지나간다.


 "이제 여기서부터 몇 시간 정도 걸려요."


  목도 좀 마르기 시작했고 푹푹 빠지는 발에 생각보다 체력 소모를 많이 느끼던 우리는 행인들의 한결같은 반응에 슬며시 꼬리가 내려갔다. 걍 요기까지만 있다 내려가자. 끝까지 가면 뭐해. ㅋㅋㅋ

  

  마치 해수욕장의 모래를 밟고 걷는 연인들처럼 한 젊은 커플이 손을 꼭 잡고 언덕 아래를 내려간다. 베이지색 모랫빛 바탕에 푸르디푸른 하늘과 흰 구름 그리고 초록빛 나무숲과 사파이어 빛깔 미시간 호수. 그림인지 아닌지 구분이 가질 않는다.

모래언덕을 손 꼭 잡고
모래 언덕을 오르자 길이 계속 이어진다. 먼저 갔다 돌아오는 행인들이 앞으로 한두시간은 더 가야 한다고 겁을 준다.

 언덕 위에 올라가 기어이 그늘을 찾아 쉬는 우리. 그늘 아래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데 등 뒤로 비치는 햇살이 마치 후광처럼 빛난다.  아마도 이 사진들은 우리들의 우정과 함께 수십 년 세월이 흘러도 그 빛을 잃지 않으리라 그 순간 직감했다.


●Lake of Michigan


 아메리카의 오대호는 그 광활한 크기가 바다에 비견할 만하다. 미국 본토를 처음 방문하는 우리들은 매킨나 아일랜드에서부터 이 엄청난 크기와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묘한 자연경관에 매료당했다. Sleeping Bear Dune을 내려와 차를 타고 가다가 Lake of Michigan이라는 팻말이 세워진 곳에 내렸다.


 수풀을 헤치고 나아간 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도대체 여기는 어떤 곳인가. 내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 거야. 이런 느낌들에 사로잡히는 것이었다.  혹시 백두산 천지에 가면 이런 비슷한 충격을 받을 것인가. 난데없는 비교를 하게 된다.



 J가 깎아지르는 듯한 모래 경사지를 보면서 다른 사람의 에피소드를 얘기해 주었다. 보기엔 한 번 내려갔다 올라올 만해 보일는지 몰라도 아는 남자 분 하나가 자신 있게 내려갔다가 바로 올라오질 못해서 한참 고생했다는 거였다. 그 얘기를 듣자 이상하게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은근슬쩍 일행에게 우리 한 번 내려갔다 와볼까 하고 떠보았는데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실은 나 자신도 내려가면 제 발로 바로 올라오는 게 힘들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경사가 심해 보였다.


  우리들은 보이는 곳곳마다 수없이 사진을 찍어댔는데 모두가 핸드폰 카메라뿐이었다. 요새 휴대폰에 장착된 카메라의 성능이 무지 좋아졌기도 하거니와 피사체가 워낙 훌륭하다 보니 대충 찍어도 사진으로 나온 결과는 입이 떡 벌어지게 아름다운 그림이 되었다. 일주일 정도의 여행을 마치고 셋이 폰으로 찍은 사진을 모아보니 그 양이 실로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우리들의 잊지 못할 추억이 담겨 있는 것이기에 어느 하나 지울 수 없었다. 모두 모두 USB에 담아 아름답게 봉인해 버렸다.

 지금도 사진을 보면 그때의 기억들과 에피소드들이 갓 찐 호빵의 수증기처럼 소로로록 피어오르는 것이 여간 소중하고 행복한 느낌에 사로잡히는 게 아니다. 여행을 여러 번 다녀봤지만 외국인들이 그리 많이 찾지 않는다는 이곳 미시간으로의 여행은 무척 특별하고도 뿌듯한 시간이 되었다. 새삼 이런 추억을 만들어 준 친구 J와 J의 아내 S님 그리고 Y부부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아직 여행기를 다 쓰려면 한참 걸리겠다. 오늘은 이만하고 다음에는 미시간 주립대학교와 새그웨이를 즐겼던 J네 옆동네 플리머스 이야기와 쇼핑 에피소드에 대해 남겨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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