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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바타의 요미야 공원

키타큐슈시의 숨은 보물

by 안드레아

얼마 전 결성된 영어 회화 클래스 첫 모임을 갖기 위해 토바타로 향했다.


일본에 살면서 지역사회를 위해 무언가 기여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가끔 생각만 하곤 했다. 그러다 우리 집 근처 대학원 중심 복합 캠퍼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유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가운데 박사 과정에 있는 한 친구를 알게 되었고 그 친구가 맡고 있는 한국어 클래스에도 초대받아 두 번 참관할 기회도 가졌다. 대부분 캠퍼스 근처에 살고 있는 일본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참가하고 있었는데 분위기기 참 따뜻하고 모두들 우리말 배우기에 열심이었다.


나는 일어가 아직 서툴러 일본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강의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보람 있는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학생들의 호응이 좋았고 참으로 뿌듯한 일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나도 이 다음에 일어가 능숙해지면 한국어 강의를 맡아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당장은 어렵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그나마 자신이 있는 영어 쪽을 맡아서 이 지역의 일본 사람들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으면 어떨까 줄곧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했다.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생각만 몇 년 하다 시간이 흘러버렸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내가 다니는 성당 교우분들 가운데 영어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분을 만나게 되었다.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분께 제안을 했다. 혹시 영어 회화를 공부하고 싶은 분들이 두 사람 이상이 되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도움을 드릴 수 있다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 그분이 자기가 아는 지인 한 사람을 더 찾아서 영어 클래스가 만들어진 것다.


아, 그런데 이게 처음부터 꼬이게 되었다. 몇 주 전에 잘 이야기가 되어 드디어 영어회화 클래스가 하 생긴 것까지는 참 좋았는데 그 사이에 그만 내가 이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근처의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것이라면 모르겠으나 일본이라는 나라를 아예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회화반을 오래 이끌어갈 기회는 사라진 셈이다.



두 학생들께 너무나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도와주겠다고 큰소리쳐 놓고는 이렇게 책임지지 못할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첫 모임은 각자의 퇴근 시간을 고려해 오후 7시로 정했다. 나를 포함해 세 사람이 사는 동네가 각기 달랐는데 사회복지법인에서 일하고 있는 분의 집이 나와 다른 한 분의 집 중간 쯤에 있어서 그 근처의 레스토랑으로 약속을 정했다.


로얄호스트라는 체인 레스토랑인데 토바타를 차로 지나면서 몇 번 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인상에 남았던 이유는 그 근처에 '요미야'라는 공원이 있고 주변의 동네 풍경이 참 이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집에 들렀다 가기에는 방향이 반대였고 또 굳이 들렀다 가야 할 이유가 없어서 퇴근 후 곧장 만날 장소로 향했다. 토바타 로얄호스트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 여섯 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레스토랑 주차장에 차를 대고 2층부터 시작되는 레스토랑 내부를 살짝 훔쳐 본 뒤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신호가 긴 교차로를 가로질러 언덕길로 접어들었다. 동네는 약간 오래 된 느낌이 들면서도 정갈했고 단층이나 이층으로 된 주택과 상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때마침 저무는 태양빛이 또 옆으로 길게 누워 이 모든 풍경을 감싸 주고 있었는데 아, 정말이지 하루의 이 시간대는 만물이 아름답게 변신하는 신비한 시간임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머지 않아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 버릴 이곳. 금요일 일을 마치고 모습이 따스한 햇살이 저물어가는 한적한 동네 공원을 거니는 나.


그런 기분 있지 않은가.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지고 현재 행복함을 진하게 느끼면서도 그 순간이 지나고 난 후에 얼마나 그때의 풍경, 그때의 감상과 느낌 또 그때의 내 모습이 내 마음이 생각나 그리울까 하는.


공원의 오솔길은 아기자기하게 길을 내고 있었다. 이제 막 벚꽃이 떨어지며 연둣빛 새잎이 나기 시작하는 풍경. 바닥에 소복이 쌓여가는 마른 나뭇잎들과 쓸려가는 분홍빛 꽃잎들.


연두초록빛 잎사귀들은 그 뒤로 햇살을 받으면 어찌나 보석처럼 빛나는지. 게다가 파아란 하늘을 바탕으로 뻗쳐 있는 잔가지들과 잎사귀들의 출렁임이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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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풀이 우거진 오솔길을 지나 탁 트인 초록 잔디밭이 펼쳐지고 있었다. 일단의 청년들이 거기서 공놀이를 하고 있었고 그들의 웃음소리가 내 귓전을 울리는데 갑자기 부러운 마음이 움찔 솟아나는 것이었다.


저들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즐기고 있는 이 아름다운 환경을 나는 몇 개월 뒤면 이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거였다.


마치 숨쉬는 공기와 매일 마시는 물처럼 당연하게 내것인 양 생각했던 이곳의 모든 것들이 더이상 내것이 아니게 된다는 자각.


회사에 이미 월말까지 일하고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인지 이곳에서의 삶이 '시한부'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분에 사로잡혀 그 순간의 행복을 망칠 수는 없었다. 일순간 공포의 느낌 비슷한 것이 찾아오는 기분이 들었으나 이내 노련한 조타수인 나는 다시금 배의 키를 단단히 틀어쥐고 방향을 바로 잡았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현실의 축복을 있는 그대로 만끽하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이내 내 마음은 다시 기쁨과 만족감으로 물들었다.



낯선 곳을 거니는 즐거움, 더구나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게다가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홀로 즐길 수 있는 자유. 그것에 깊이 감사함을 느꼈다.


비록 일본을 이제 떠나야 하는 시간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지만 그래서 아쉬움이 남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내가 경험하고 누렸던 모든 것에 감사하며 떠나고자 한다.


새로운 곳으로 가게 되면 또 그곳만의 소중함과 매력을 틀림없이 찾게 될 것이다. 그 설렘을 안고 이 땅을 떠나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나는 또 앞으로 한 걸음 내딛어야 한다.


사실 요즘 하루하루가 싱숭생숭하다. 안정된 생활을 접고 또 새로운 곳에서 전혀 다른 일과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으며 삶의 터전을 일구어야 한다.


낮잠을 자다가 숨이 막히는 것 같아 잠이 깼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애써 누르려 하지만 미지의 미래에 대해 가지는 두려움은 내가 보통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되는 느낌인가.


어찌하다 아들 사는 곳으로 부모님께서 놀러오셨을 때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부모님께서 걱정하실 것 같아 내색하기는 어렵지만 수많은 생각의 소용돌이가 내 안에 휘몰아치는 나날들이다.


내 안의 약한 모습을 부정하지 않겠다. 그런 나를 부정하는 것이 오히려 내 자신을 더 초조하게 만든다. 그냥 있는 그대로 느껴지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자 한다. 초라하고 나약한 모습도 있지만 강하고 자신감 넘치는 나 또한 존재한다는 걸 알기에.


요미야 공원. 키타큐슈를 떠나기 전에 다시 한 번 들려야지.





■ 요미야 공원 주소

1 Chome-1 Yomiya, Tobata-ku, Kitakyūshū-shi, Fukuoka-ken 804-0042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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