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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Jul 05. 2017

계획과 다르게 가는 인생 2편

상사맨으로 변신

 그러니까 총 네 번의 고배를 마신 후에야 아나운서의 꿈을 접었던 것 같다. 비교적 빨리 계획을 수정한 셈이다. 꿈을 내리는 일은 상당히 가슴 아프지만, 그보다 현실의 압박이 거셌기 때문이다.


 학교 취업게시판을 매일 쥐 잡듯이 뒤졌다. 물론 다른 취업사이트들도 자주 들러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2000년 8월에 기자일을 그만두고 아나운서에 도전했던 시간은 지금 생각해 보니 길지 않았다. 왜냐하면 새 직장을 찾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인 것이 그해 11월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던 때였기 때문이다.


 해외영업 & 종합상사


 하는 일의 키워드가 그랬다.


 해외영업이라는 말도 생소했고 종합상사라는 말도 낯설었다. 단지 '해외'라는 단어를 보고 내가 좋아하는 영어를 쓰면서 일할 수 있겠구나 하고 막연히 생각했다.


 서류심사에 통과하자 면접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 혹은 아나운서직에 응시할 때 네다섯 차례에 걸쳐 제법 여러 관문을 통과해야 했던 것과는 달리 비교적 간단한 절차를 거친 것이다.


 드라마 '미생'의 모델이 되었다고 하는 바로 그 종합상사가 있던 빌딩은 서울역 맞은편에 마치 거대한 성냥갑처럼 우뚝 서 있었다. 그 건물은 7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당시 강남이나 여의도에 지어진 새 건물들에 비하면 촌스럽고 낡은 티가 났다.


 서울역이 교통의 요지라 그런지 그 회사를 떠난 이후에도 나는 꽤 자주 그곳을 지나다녔고 그곳에서 약속을 해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회사는 내가 중국 주재원으로 파견되어 나가 있는 동안 바로 건너편 연세세브란스 빌딩으로 이전했고, 지금으로부터 4년 전에 그 회사를 떠나 일본으로 오자 얼마 안 있어 전 회사는 사옥을 송도로 이전했다.


 나는 서울역에 가서 대우센터빌딩, 지금은 서울스퀘어빌딩이라 불리는 그 건물을 바라보며 소회에 젖곤 하지만, 지금 세대의 후배들은 훗날, 송도에 우뚝 솟아 있는 동북아무역센터를 바라보며 비슷한 상념에 젖을까.


 아, 사회생활 18년 차인 내가 서울역 맞은편 건물을 바라보며 이렇게 감상에 젖곤 하는데 그룹이 해체되기 전에 일하셨던 나의 선배들은 그 건물을 바라보는 심정이 어떠할까.


 아무튼 그런 애정을 느끼는 건물에서 면접을 보았는데 면접은 회의실 같은 데도 아니고 직원들이 일을 하고 있던 사무실 현장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그룹이 해체되는 아픔을 겪은 회사는 상당수의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고 법정관리를 받던 상태라 분위기가 썩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바로 업무에 투입될 사람을 뽑고 있었기 때문에 수시 채용 절차를 거쳐 입사하게 된 나는 바로 현업 부서에 배치되어 일을 시작했다.


[금속 1팀]


 이름도 무겁고 딱딱하게 금속1팀. 이 팀은 팀장 밑에 차장 한 명, 그 밑에 과장 세 명, 밑에 대리가 세 명 그리고 사원급은 나를 포함해 여섯 명 정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내에 본부가 여러 개 있었고 각 본부 안에 대략 4~6개 팀을 운영하고 있었다. 금속1팀은 팀원 전체가 14명 정도 되었으니 10명이 안 되는 팀들에 비해 꽤 사이즈가 큰 팀이었다고 하겠다.


 금속1팀의 취급하던 무역 아이템은 크게 빌렛과 봉형강 제품으로 나뉘었다. 빌렛이라는 건 길이가 6~12미터 정도 되는 사각형 단면의 철강 반제품이었다. 이 빌렛에 열을 가해서 길게 늘이는 압연 작업을 통해 건축물에 쓰이는 철근이나 선재 혹은 형강 제품들이 만들어졌다. 우리 팀은 빌렛만 연간 160만 톤 이상 무역 거래를 하는 상당히 큰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다. 종합상사의 특성상 매출의 중요성이 컸기 때문에 금속1팀은 사내에서 비중이 꽤 컸고 매월 평가에서도 수십 개 팀들 가운데 항상 상위 순위에 랭크되곤 했다.


여기가 군대입니까?


 입사한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때의 일로 기억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우리 팀 사람들은 전원 연세빌딩 뒤편의 한 고깃집으로 집합했다. 흔히 있는 팀 회식이었다. 첫 직장에서 술 때문에 무지 곤란을 겪었던 쓰라린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회식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이 느껴졌다. 언론사도 술을 퍼 마시는 조직이지만, 종합상사 역시 더 하면 더 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몇 차례 회식 자리를 통해 분위기는 파악하고 있었다. 술은 약하지만 이제 요령이 좀 생겼다. 테이블에 놓은 물잔이나 음료수잔을 이용하여 받은 술을 조금씩 뱉어내는 식으로 주량을 조절했다. 뱉어내다가 잔에 술과 물이 섞여 가득 차면 테이블 아래로 몰래 숨겨 놓았다. 잔이 없으면 어쩔 때는 물수건에다가 술을 뱉어내기도 했다. 아마 애주가들께서 이런 이야기를 접하시면 화를 내시거나 어이없어하실지 모르겠으나 술이 약한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술자리가 너무나 스트레스고 거의 생존의 문제처럼 절박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사실을 조금은 알아줬으면 싶다.  


 테이블 곳곳에 앉은 대리와 과장 선배들은 신입사원들 옆에 골고루 포진해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이 새도록 무한정 공급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여겨지는 맥주, 소주, 양주를 기계처럼 배합해 테이블 전체에 나르고 있었다. 팀 내 전문가에 의해 정확한 비율로 만들어진 폭탄주가 테이블 전체에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가 돌아 비워져 나갔다. 급하게 마신 탓인지 몇 명은 이미 취기가 올랐고 눈에서 총기가 사라졌다. 잠시 폭탄주 제조가 중지되고 자유롭게 건배하며 마시는 분위기가 되었는데 아무래도 연속 세 잔의 폭탄주 효과 때문인지 진도가 느려졌다.


 그때였다. 신입사원들이 술을 마시는 모습을 매의 눈으로 관찰하고 있던 대리 한 분이 일어서더니 신입사원 모두를 밖으로 불러냈다. 우리들은 손님을 아직 들이지 않은 빈 방 근처로 끌려갔고 두 줄로 도열했다.


" 야! 이 정신 나간 놈들아! 신입들이 하늘 같은 선배님들이 따라주는 술을 그따구로 마셔? 술잔을 째깍째깍 비워야 할 거 아냐!! "


 우리들은 눈빛을 교환하며 대체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인지 감을 잡으려고 애썼다. 이 상황은 흡사 군대에서 느끼던 분위기와 꼭 닮아 있었다. 선배들의 '신입 길들이기 혹은 군기잡기'였던 것이다. 앞에서 듣기 싫은 목소리를 높여 훈계하고 있던 대리는 자신도 이미 취기가 좀 올라 있던 상태였다.


 " 야, 다 엎드려뻗쳐!!! "


  앞줄의 세 명은 잽싸게 엎드려뻗쳐 동작을 취했고, 뒷줄의 세 명은 엎드릴까 말까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 대리님!  여기가 무슨 군댑니까!!! "


  뒷줄에 서 있던 신입 하나가 엎드려뻗쳐 명령을 한 대리의 눈을 똑바로 쏘아보며 큰소리로 외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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