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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Jul 07. 2017

백수 생활의 놀라움

한일 양쪽에서 줄줄이 새는 돈구멍


 각오는 하고 있었다. 백수가 된 이후의 경제적 불편함 내지는 곤궁함에 대해.


 하지만 막상 매달 들어오던 월급이 끊기자 예상한 것 이상으로 곤란한 상황이 여기저기서 발생했다. 더구나 살고 있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금융계좌를 유지하고 각종 경제활동을 지속해왔기 때문에 돈줄이 막힌 후에 한일 양쪽으로 구멍을 막아야만 했다.


 한국 계좌에서는 가족의 생활비, 집 담보대출 원리금, 생명/연금보험료, 스마트폰 이용료, 각종 기부금, 부모님 용돈, 한국 신용카드 대금, 보험금 담보대출 이자 등등이 매월 어김없이 빠져나갔다. 일본 계좌에서는 자동차 할부금, 자동차 보험료, 전기세/상하수도세, 텔레비전/인터넷 요금, 신용카드 대금, 월세 주차장 요금, 의료비, 식비, 주유비, 외식비 등등 살고 있으니 당연히 발생하는 비용들이 수시로 빠지면서 수치만으로도 매우 효과적으로 나를 압박해왔다.


 일을 하고 급여를 받을 때에는 한국이나 일본 어느 한쪽의 계좌에서만 적색등이 켜졌는데, 백수가 되니 금세 양쪽 계좌 모두에서 '주유'를 하라고 빨간색 등이 동시에 켜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카드사 대금 완납 독촉 전화를 받기도 하고 생활비를 송금해야 하는데 계좌에 잔고가 '제로'로 찍혀 있는 걸 목격하기도 했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 10년 이상 납입한 생명보험료 담보 대출을 시도했다. 연리가 시중 은행 이자보다 몇% 높은 대출이었다. 그러나 신용카드사 론에 비하면 그나마 양반이라 약간은 고마운 마음을 가지기까지 하며 돈을 빌렸다.



시간의 자유를 누리다!


 경제적으로는 이처럼 압박을 제대로 받았지만, 시간적으로는 아! 이게 얼마 만에 누려 보는 자유로움이던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정해진 시간까지 일해야 했던 생활. 그러나 회사를 그만두고 나자 회사에 매어 바쳤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내게로 떨어졌다. 늦잠을 잘 수 있었고, 충동적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또 평소 가고 싶었던 바닷가와 저수지를 한낮에 문득 방문하여 그 한적함을 즐길 수 있었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 자유롭게 약속을 정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일도 비교적 쉽게 이루어졌다.


 한 마디로 돈 생각만 제외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여유롭고 인간다운 삶이 열린 것이다.



 생각과 상상의 폭발
기회와 가능성의 대발견


 이렇게 얻은 시간적 여유는, 회사의 일에 매이고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일상에 얽매어 있을 때와 비교해서 나 자신으로 하여금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생각하게 하고 상상하게 만들었다. 또한 그렇게 보다 자유로워진 나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예상하기 어려웠던 기회와 가능성들에 부지불식간 성큼 다가서고 있음을 실감했다.


 우선 평소 글쓰기를 즐겨하던 나는 드디어 출간을 결심하게 되었다. 직장 생활을 하며 짬짬이 글을 썼지만 책을 내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써둔 글들이 제법 있었지만, 책 한 권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 몇 년간 썼던 글들을 모두 다시 읽으며 편집 방향에 맞는 글을 고르고 일일이 내용을 수정하고 철자나 비문을 교정해야 한다. 또한 틀림없이 전체 흐름에 맞게 새 글도 써야 한다. 출판사를 선택해서 출간에 대한 상의를 해야 하고 비용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표지나 내지 디자인을 고려해야 하고 글씨체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아무튼 책을 낸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정성과 에너지를 요하는 일이기 때문에 직장 생활을 하면서 출간을 준비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 시간적 여유가 생겼고 - 백수도 해야 할 일들은 꽤 많지만 - 이 꿈에 대해 생각하고 상상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늘어난 시간을 이용해 평소 즐기던 산책을 좀 더 자유롭게 많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조금 메말랐던 감성이 자극을 받았고 그로 인해 글 쓰고 싶은 욕구가 마구마구 솟구치는 걸 경험했다. 수필뿐 아니라 소설 집필을 위해서도 이런 여유 안에서의 자극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산하게 했고, 평소 일상의 피곤함으로 단절되던 생각의 꼬리를 이어가며 발전시킬 수 있게 되었다.


 또 기쁜 점 하나는 평소에 연락하고 싶었으나 자주 연락하지 못했던 지인들과 전화 혹은 메신저를 이용해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들과의 즐거운 수다는 그저 수다 자체로도 기쁨이었으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평소 혼자서 생각했던 것들을 나누면서 아이디어나 계획들이 보다 구체적이고 풍부해지는 걸 여실히 느꼈다. 예를 들면, '경제적 독립'이라는 주제를 혼자서 생각하곤 했는데, 이를 가족이나 지인들과 자주 이야기하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으니 혼자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여러 가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고 혼자 반신반의하던 아이디어에 대해 검증하고 실제적인 계획에 접근하게 되었다.



거대한 풍랑이 나를 밀어 벼랑 끝으로 몰아갔다.
그러나..


 잘 지내던 회사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만두면서 수개월 동안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다. 아무리 잘 해 보려고 해도 거대한 인생의 쓰나미는 내가 이 회사에 종전처럼 그대로 안주하도록 놓아두질 않았던 것이다. 잡고 있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힘겹게 바둥거리던 나는 결국 벼랑 끝으로 몰려 끈을 놓아 버리고 만다. 벼랑 끝에서 끈을 놓친 나는 이제 벼랑 끝으로 떨어지는 일만 남았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자포자기'하는 마음인 채로 직장을 떠나기로 했다. 많은 지인들이 다음 갈 곳을 정한 후에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충고해 주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도저히 일본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새로운 직장을 제대로 찾거나 독립을 추진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것이다. 일본에서 잡을 찾는다면 그나마 회사를 다니며 새 일터를 찾는 것이 좀 더 용이할 수 있었겠지만, 나는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벼랑 끝으로 일단 떨어질 것이다 라고 마음먹었던 그때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스토리를 앞으로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지금은 말하기 어렵다.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거대한 힘에 의해 안간힘을 다해 붙잡고 있던 끈을 놓치고, 밀리고 밀려 나락으로 떨어질 줄만 알았던 그 지점에서, 나는 벼랑이 아닌 광활한 벌판과 그 벌판으로 시원하게 뻗은 여러 갈래의 길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직도 내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장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으려고 애쓰다가 진을 빼고 있던 나는 거대한 힘에 이끌려 여기까지 오게 되었고, 내가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마치 예비된 계획이 있었다는 듯 많은 일들이 절묘한 타이밍으로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걸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다. 확신을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 옮기고 있다.


 한 번 보자. 어떤 일이 일어날지...



키타큐슈 서쪽 바다 밑으로 태양이 깊은 잠수를 하고 난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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