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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Jul 12. 2017

일본의 실업급여와 와카토 대교

실업급여 수급 면담을 한 후에 산책을 하며

이 벤치 정말 근사한 위치에 있다.
배가 와카토 대교로 다가서고 있다.
이 부두는 키타큐슈 와카마츠 역 주변에 위치해 있다. 


'헬로워크' 고마워!


 우리나라에서도 받아본 적 없는 실업급여를 일본에서 받게 되었다. 기분이 묘하다.


'헬로워크'라는 일본 후생성에서 운영하는 고용보험운영 및 직업소개 기관에 실업급여를 신청했다. 1) 헬로워크 와카마츠 지점에서 실업급여를 신청한 후 2) 며칠 뒤에 오리엔테이션으로 하루 반나절 정도 강의를 듣고 3) 다시 일주일 후에 헬로워크 담당자와 일대일 면담을 했다.


 오리엔테이션에는 20대 젊은이들부터 60대 혹은 그 이상으로 보이는 노인들까지 수십 명의 무리들이 참가했다. 주차할 자리를 찾느라 5분 정도 늦게 슬그머니 강의장 뒤편으로 들어갔으나 마이크를 든 헬로워크 관계자가 손짓으로 제일 앞자리를 가리켰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앞자리로 나아가 앉았다. 


 약 3시간에 걸쳐 진행된 헬로워크 프로그램은 3명의 강사가 각기 다른 주제로 내용 설명을 해 주었다. 아직도 일본어가 그리 완벽하지 못한 나는 열심히 귀를 기울여도 내용의 30% 이상을 놓치고 있었을 것이다. 중간중간 주변에 앉은 사람들의 분위기나 표정을 살폈다.  


 ' 나도 실업자 신세지만, 저들은 각자 어떤 사정들이 있는 걸까. 

마치 회사에 나온 듯 하얀 와이셔츠에 검은 정장 바지를 조금은 후줄근하게 입고 앉아 있는 중년 남자는 왜 일자리를 찾게 되었을까. 저기 옆자리에 앉아 있는 20대로 보이는 앳된 여자는 여기에 오기 전까지 어떤 일을 했을까. 조금은 지친 듯한 기색에 주름살이 확연히 드러나 보이는 할아버지는 이렇게라도 일자리를 찾아야만 하시는 걸까. 동네 슈퍼마켓에서 마주칠 법한 평범한 긴치마 차림의 아주머니도 나와 함께 이 자리에 계시는구나...'


역시 가로가 긴 사진을 모바일 브런치에서 잘 보려면 이렇게 수직으로 세워 둬야 한다.  

 그렇게 헬로워크가 지정한 의무 수업을 처음 받았고 어떻게 실업급여를 신청해서 어떤 절차에 따라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게 되는지 조금 알게 되었다. 처음엔 신청만 하면 바로 돈을 받게 되는 걸로 생각했지만, 그 정도로 간단한 과정은 아니었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서류 제출에 더하여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는 의지를 증명해야 한다. 보통 한 달에 한 번 정도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헬로워크 담당자를 찾아가서 일대일 면담을 하도록 되어 있다. 재취업을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조언을 해 주기도 하고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이 현재 어떻게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조사한다. 


 그런데 최근 열심히 일자리를 찾고 있는 나의 경우 조금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헬로워크가 제공하는 혜택이 일본 안에서 재취업을 하고자 노력하는 것만 인정한다는 것이다. 내 경우엔 일본 안에서의 재취업뿐 아니라 해외로의 취업도 고려하며 준비하고 있지만, 일본 말고는 안 쳐 준다는 거다. 그동안 일본에서 열심히 일하고 소득세다 주민세다 연금이다 해서 열심히 낸 나로서는 이 부분이 좀 납득이 가질 않았지만 그게 룰이라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실업급여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기관에서 인정하는 방식과 횟수에 맞춰 일본 안에서 일자리를 찾고 면접을 보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이런 규정이 처음에는 좀 답답하고 힘들게 느껴졌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그리고 각종 일본 회사 양식의 서류들을 일본어로 준비해야 하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까짓 거 꼭 해야만 한다면 하겠지만, 개인적으로 일본에서 떠나 다른 나라에서 재취업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일본 취업을 목적으로 한 과정들이 소모적으로 생각되었다. 


 그런데 일대일 면담을 한 번 해 보니까 헬로워크의 요구 조건이 아주 까다로운 것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이나 기타 발로 뛰는 취업활동뿐 아니라, 헬로워크를 방문해서 면담을 받고, 헬로워크 안에 비치된 단말기를 통해 일본 전국의 구인정보를 검색하기만 해도 취업활동으로 인정해 준다는 걸 발견했다. 


 헬로워크 사무실 한쪽에 마련된 여러 대의 단말기에서 구인정보를 검색해 보았다. 키워드나 급여 조건 등을 걸고 일본 전국 각 지역으로부터 올라온 정보를 검색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여러 가지 유용한 일자리 정보가 많이 보였다. 게다가 각 단말기마다 프린터가 연결되어 있어 구직자는 데이터를 바로 인쇄해서 가져갈 수 있게 해 놓았다.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몸으로 체험해 본 바로는 매우 편리하고 유용하게 여겨졌으며, 이런 국가와 관련 기관의 배려가 고마운 생각마저 들었다. 




일본 영화 '새드 버케이션(우울한 휴가)'의 촬영지


 장마철이라 최근 이 주 사이 자주 비가 내렸다. 헬로워크에서 면담을 받는 사이에도 주룩주룩 비가 내렸으나, 면담이 끝나자 고맙게도 비가 그쳤다. 


 평소 회사에 다닐 때 점심을 먹으러 자주 오곤 하는 와카토 다리 근처는 언제 찾아도 근사한 풍경이다. 1시간의 짧은 시간 동안 식사도 해결하고 산책까지 하려면 빠듯하곤 했는데...   이제 출근을 하지 않는 입장이 되니 시간이 여유롭다. 주차장으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 부둣가로 나선다. 


 이곳에서 이따금 동료인 션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곤 했던 생각이 떠 올랐다. 자주는 아니지만 와카마츠 역과 와카토 대교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곤 했다. 이젠 그런 생활 속의 작은 즐거움들이 추억으로 묻히려 하고 있다.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곳을 걷는 일은 언제나 큰 즐거움이었는데, 이날처럼 여유가 있는 때는 그 즐거움이 좀 더 풍요롭고 길게 연장될 수 있어 참 좋다. 


 4년이나 있었는데 수십 번은 왔을 이곳에도 내 발길이 닿지 않은 지점들이 꽤 있었음을 평소 가지 않았던 방향으로 발걸음을 틀자 알 수 있었다. 마치 찾기 힘든 보물을 찾은 것 같은 기분으로 조금은 땀이 나는 한낮의 산책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이제 비행기를 타야 한다. 와카마츠 부두의 추억은 잠시 닫아 두고..

미래를 위해 한 걸음 내딛으러 간다...


배를 다 고치면 이렇게 바다로 보내는가 보다. 녹슬고 타버린 드럼통의 잔해가 이곳 풍경과 제법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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