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터키에서의 인터뷰를 마치고 주말에 앨라배마로 넘어왔다. 버밍햄에 도착해서 렌터카로 SUV 니산 Rogue를 하루 50불(인터넷 예약이 확실히 싸다. 현장에서 빌리려고 했더니 100불을 불렀다.)에 빌려서 매켈라(McCalla)로 이동했다. 켄터키에서 몰고 다니던 포드 Focus보다 덩치가 크고 묵직함이 느껴지는 차였다.
다음날 인터뷰할 장소를 미리 가 보고자 차를 몰고 가는데 'Rock Mount Lake'라는 안내 표지판이 보였다. 미국에 와서 호수를 직접 본 것은 2년 전 방문했던 미시간 호수(Lake of Michigan)가 전부였는데 그때의 신선한 충격 때문인지 미국의 호수는 자연의 매력이 담뿍 담긴 멋진 곳일 거라는 선입견이 생겨 있었다.
구글 내비의 안내를 받으며 도착한 지역은 정말 여러 개의 크고 작은 호수들이 야트막한 산지 중간중간에 그림같이 자리하고 있었다.
Rock Mountain Lake 의 여러 호수들 중 하나
강렬하고 눈부신 햇살이 선사해 주는 호숫가 풍경의 하모니
앨라배마 하면 현대차의 생산기지로 미국 남부의 무덥고 볼거리는 별로 없는 주 정도의 인상만 있었다. 그러나 초록색 잔디와 수풀이 보기 좋게 펼쳐져 있는 이곳의 풍경을 만나자 기존의 생각은 금세 바뀌었다. 호수를 끼고 널찍널찍하게 독립 주택들이 들어서 있었는데 그냥 척 보아도 고급스럽고 부러운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지도를 보며 호수 주위를 한 바퀴 드라이브해 보기로 했다. 아스팔트 포장은 잘 되어 있었지만 산길에 포장을 해서인지 제법 가파른 경사로 드라이브 길은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고 있었다. 미국에 와서 빌린 모든 렌터카에는 길도우미(내비게이션)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구글 길도우미를 이용하며 다녔는데 길을 찾아가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길도우미가 보여 주는 화면에는 주변 여러 곳에 호수 표시가 되어 있었고 내 눈은 바깥 풍경과 스마트폰의 지도를 분주히 오가며 낯설고 즐거운 드라이빙을 돕고 있었다.
호수 근처의 오후 기온은 화씨 90도를 조금 넘기고 있었으니 섭씨로 32~33도 정도 되었나 보다. 햇살이 제법 따갑고 틀림없이 무더운 날씨였지만 그토록 강렬하고 선명한 햇볕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호수 위로 비치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더위에 초점이 맞춰지지는 않았다.
사실 이번 일정이 순수히 즐기는 여행은 아니었다. 앞으로 밥벌이를 하기 위해 면접을 보러 온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았다. 이렇게 미리 예정에 없던 발걸음을 하게 만드는 곳이 있고 나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그 순간을 충분히 느끼고 즐길 수 있었다. 행복했다. 그냥 그렇게 정형화되지 않은 기쁨이 좋았다.
이번 미국 방문은 일본 키타큐슈를 출발해 인천을 거쳐 켄터키주, 앨라배마주, 미시간주, 텍사주를 일주일 안에 돌면서 그야말로 강행군을 펼쳤다. 비행기만 국제선과 국내선을 합해 열 번을 탔고 켄터키에서 미시간 사이를 차로 약 12시간가량 왕복해서 달렸다. 체력적으로 부대낄 만한 일정이었고 실제로 피로감을 많이 느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좇는 여행이었고 그 시간 가운데에 친구들이 반겨 주고 있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이 살아 있었고, 보고 싶은 얼굴들을 보면서 특별한 곳에서 특별한 추억을 만드는 여정이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글을 쓰고 싶었으나 숙소에 돌아오면 피로감이 몰려와 글을 쓰다가 말고 또 쓰다가 말고를 반복했다.
오늘 새벽 시차 때문인지 일찍 깨 6시부터 집을 나서 북촌과 창덕궁 근처로 산책을 왔다. 이곳에서 차분히 지난 일주일을 더듬어 보려 한다.